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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마인드풀니스 동일시 말아야”

slowdream 2010. 2. 9. 13:47

“사티·마인드풀니스 동일시 말아야”
마인드풀니스 & 사띠 논쟁-10
동국대 불교학부 안양규 교수 기고
기사등록일 [2010년 02월 04일 14:01 목요일]
 

사티는 주의, 관찰, 기억 기능 등 포괄
마인드풀니스 의미는 ‘주의하여 지켜봄’

 

서구 불교심리치료의 핵심개념인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및 ‘사띠(sati)’의 번역과 이해를 둘러싸고 동방대학원대 교수이자 한국명상치료학회장인 인경 스님과 김재성 서울대학원대 교수가 열띤 지상논쟁을 벌였다. 이어 자비선 명상센터 지도법사 지운 스님과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가 이번 논쟁과 관련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가운데 이번에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안양규<사진> 교수가 사띠와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기고문을 보내왔다. 안양규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초기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편집자

 


 

영국의 지하철을 이용하다보면 “마인드 더 갭(Mind the gap)”이라는 안내 방송을 듣게 된다. 지하철 객차와 발을 딛는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니 조심하라는 경고성 안내이다. 내딛는 걸음이 간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다. 만약  방송을 무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have in mind)’ 않으면, 즉 기억하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사티(sati)나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가 부족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의도하거나 자각하지도 않은 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행위를 한다. 이런 상태가 바로 자동조정(automatic pilot) 상태이다. 이런 상태의 마음이 되면 기계적인 행동,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반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런 기계적인 자동조정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불교의 사티 수행이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하는 자동조정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외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행이 마인드풀니스라고 정의한다면, 마인드풀니스의 한국어 번역으로 “마음챙김”이라는 역어가 아니면, “알아차림”이라는 역어가 더 적합한 것일까? 아니면 더 나은 제3의 역어가 있을까?

 

필자는 논의의 편의와 정확성을 위해 초기불교 경전에 보이는 사티와 명상치유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를 구분하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이 둘의 모순 관계나 양립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초기경전의 사티의 의미, 기능, 효과 등이 치유프로그램의 마인드풀니스에 100%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컨대 초기불교경전의 사티와 치유프로그램의 마인드풀니스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초기경전의 사티를 간단하게 정의내리기 힘들지만 필자가 파악하건대 사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뚜렷하다. 첫째 사티는 기억이라는 정신 기능을 의미한다. 아울러 기억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사티가 현존하게 되면 관찰 대상을 정확하게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사티(sati)가 가장 뛰어난 붓다의 제자로 아난다가 예시되고 있다. 아난다는 붓다의 말씀을 한 자도 놓치지 아니하고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제자로 칭송되고 있다.

 

사티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 경전의 주석서는 출생한지 5일째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장로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출생한 후 5일째 까마귀가 날아와서 우유죽을 먹으면서 소리를 내는 것을 이 장로는 기억하고 있노라고 회고하고 있다. 『밀린다팡하』에서도 사티를 기억으로 설명하고 있다. 왕의 보배 창고를 지키는 신하가 조석으로 왕에게 보배창고에 어떠한 보배가 얼마만큼 있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일을 두고 사티의 예로 들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즉 기억하도록 반복해서 알리는 일을 사티의 기능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사티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염불(念佛)이라는 수행도 이해할 수 있다. 붓다를 잊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사티의 기억이라는 기능은 사념처 수행 중 신념처, 그 중에서도 시신의 부패에 관한 수행에 들어 있다. 시신 부패의 경과에 관한 수행은 기억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면 성립될 수 없다.

 

사티의 두 번째 의미는 『사념처경』에서 신념처 수행 중 호흡과 관련된 부분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이 경험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기능이다. 현재진행중인 내외적인 경험을 주의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티의 기능은 서구에서 개발되어 임상적용되고 있는 심신치유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억과 관찰이라는 사티의 두 가지 기능은 일견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찰이 정확하면 할수록 기억도 더 지속적이다. 기억이 잘되기 위해선 대상에 대한 관찰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관찰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주의(attention)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주의, 관찰, 기억 이 세 가지 정신적인 기능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 사티인 것이다. 서구의 명상치유프로그램에선 사티의 기능 중 주의, 관찰이라는 요소를 마인드풀니스로 중점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존 카밧진(Jon Kabbat-Zin) 교수는 서구에서 불교명상을 주류 의학계에 성공적으로 도입되도록 한 선구자이다. 그는 1970년대에 ‘명상에 기반을 둔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 MBSR)’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2000년 이후 미국의 주요 의료기관 200곳 이상에 관련 클리닉이 개설되었을 정도로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치료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MBSR은 단지 미국 의료계에서 활용되는데 한정되지 않고 심리학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존 카밧진의 MBSR은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 Therapy)의 제3물결의 형성을 가져왔다. MBSR의 직간접 영향 아래에서 MBCT(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 DAT(Dialectical Acceptance Therapy, 변증법적 수용치유), ACT(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수용과 전념치료) 등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다양한 심신치유프로그램에 활용되고 있는 불교 명상은 대체로 영어로 마인드풀니스로 정착되어 있다. 불교의 명상인 사티에 대한 영역인 마인드풀니스에 대한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의 정의와 이해는 사용자마마 각각 다르다. 비숍(Bishop)은 서구의 심리치료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를 “공들이지 않은(non-elaborative), 비심판적(non-judgmental)이며, 현재 중심의 지각(知覺)으로 주의(注意)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생각, 감정, 또는 감각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비슷한 방식으로 배어(Baer)도 “비심판적으로 일어나는 그대로 자극을 관찰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존 카밧진은 마인드풀니스를 특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특별한 방식으로 주의를 두는 것: 의지적으로, 현재 순간에, 그리고 비심판적으로.” 이상 세 명의 견해에는 세 단어가 주목된다.: “비심판적, 주의, 현재.” 특히 비심판적인 자세는 개방적인·수용 태도를 가능하게 하며, 이 개방적인 수용태도는 성공적인 심리치료에 긴요하다.

 

사티의 영어 번역어인 마인드풀니스는 심리치료자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점에서 동의하고 있다. 마인드풀니스는 현재 순간에 주의를 두거나 지각하는 방식이다. 이런 주의 내지 지각 방식은 개방적(open), 수용적(receptive), 무집착적(dispassionate), 비조작적(non-manipulative)이다. 이상의 공통적인 일치에도 불구하고 마인드풀니스와 마인드풀니스에 부가된 속성을 어떻게 분리해 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가에 대하여 이견이 있다. 존 카밧진은 ‘비심판’이외에 여섯 가지 다른 특성을 주목하고 있다: 인내, 초심(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보려는 의지), (자신에 대한)신뢰, 고투(苦鬪)하지 않기, 수용, 보내기. 이러한 자질들은 상호 고무적이며 성공적인 치료에 토대가 된다고 보고 있다. 반대로 비숍은 마인드풀니스를 일차적으로 호기심(curiosity), 개방성(opneness), 수용(acceptance)의 특징을 지닌다고 보고 있다.

 

인내와 신뢰 등의 자질은 마인드풀니스 수행의 결과이지 마인드풀니스 그 자체의 속성은 아니라고 비숍 등은 보고 있다.(본고에 인용된 출처는 졸고 참조: “비파사나(vipassana) 명상이 심신치유(Psychosomatic Therapy)에 미치는 치유원리” 『불교학보』 2009년 )
마인드풀니스가 서구의 심신명상치유 프로그램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관한 글을 부탁 받았다. 아울러 사티와 함께 쓰이는 삼파잔나(sampajāna)에 대해서도 의견을 개진해 줄 것을 부탁받았다. 요청받은 첫 번째 주제에 답을 간략히 했는데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면서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사티와 삼파잔나가 함께 짝으로 사용될 때 사티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주의하고 관찰하는 것이고, 이러한 주의 관찰된 내용을 지적으로 깊게 통찰하는 것이 삼파잔나이다. 삼파잔나는 지혜와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열반의 증득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삼학에 준거하여 본다면 사티는 정학에 삼파잔나는 혜학에 속한다. 한역 경전에선 사티는 정념(正念)으로, 삼파잔나는 정지(正知)로 번역되고 있다.

 

사티는 이미 한역 경전에선 정념으로 사용되고 있어 번역의 문제는 사실상 없다. 정념을 알기 쉬운 현대어로 바꾸려고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문제는 마인드풀니스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명상치유프로그램에서 사용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의 의미를 종합해보면, “비판 없이 현재 경험에 대한 주의 깊은 관찰”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요약을 담고 있는 말이 무엇일까?


출처 법보신문 1034호 [2010년 02월 04일 1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