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5. 네놈은 애꾸눈이다(只具一隻眼)
* 네놈은 애꾸눈이다(只具一隻眼)
어느날 臨濟院을 찾아온 보화화상에게 臨濟義玄禪師가 특별히 상을 차려 供養대접을 했다. 보화는 밥은 안 먹고 채소 반찬만 다 먹어 치웠다.
臨濟가 無意識중에 한마디했다.
“꼭 당나귀 같군!”
普和는 곧바로 상에서 물러나 땅에 두 손을 짚고 ‘애해앵’ 하며 당나귀 울음을 울어댔다. 臨濟는 말문이 막힌 채 우두커니 쳐다만 봤다.
마침내 普和가 一喝했다.
“네놈은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애꾸눈 어린애구나(臨濟小廝兒 只具一隻眼)”
普和는 이때 “밝음이 와도 쳐부수고 어둠이 와도 쳐부순다”고 외치면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臨濟의 上佐가 普和한테 가서 물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은 어떻게 합니까?
普和가 답했다.
“來日은 대비원(臨濟院)에서 供養이 있다.”
“내일 臨濟院에 供養이 있다” 는 普和의 對答은 人間에게 오직 確實한 것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는 實存밖에 없음을 뜻한다.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자신있게 對答할 수 없다. 오직 여기 現在의 實存만이 分明할 뿐이다. 普和는 臨濟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애해앵’ 하며 당나귀 흉내를 냈다. 이에 대해 禪師다운 面貌로 對應해야 할 臨濟가 멍하니 쳐다보며 無反應이다. 여기서 普和는 한 대 먹인다.
너는 아직 젖냄새 나는 어린애다. 나를 당나귀로 본 것은 一隻眼(事物의 本體를 꿰뚫는 제3의 눈, 法眼, 智慧眼)을 겨우 갖춘 程度일 뿐이다. 그러니 臨濟, 너는 아직 당나귀나 돌보는 머슴아이 水準밖에 안 된다. 普和의 ‘임제소시아 지구일척안(臨濟小廝兒 只具一隻眼)’ 속에는 ‘臨濟, 너는 本分으로 완전히 돌아간 당나귀가 되려면 풀을 더 뜯어먹고 커야 한다’는 叱咤가 內包되어 있다. 臨濟는 普和가 당나귀 흉내를 낼 때 飛虎같이 달려들어 엉덩이를 짓밟았어야 했다.
禪에서 외눈박이(일척안 : 一隻眼)는 世俗的인 不具의 애꾸눈이 아니다. 人間의 깊숙한 內面을 보기 위해서는 두 개의 눈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 內面을 볼 수 있는 눈은 법안(法眼), 道의 눈, 제3의 눈 하나일 뿐이다. 흔히 심안(心眼)이라 일컫는 智慧眼을 뜻한다. 또 당나귀는 禪에서는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의 本來面目, 또는 智慧를 象徵한다. 시(廝)는 시중드는 어린아이, 곧 몸종이다.
어쨌든 普和는 風光으로 臨濟의 “꼭 당나귀 같다”는 攻擊을 받아 넘겼다. 아니 슬쩍 피해 갔다. 普和에게는 오늘의 供養이 내일, 또는 어제의 食事와 比較되는 單純한 觀念이 아니다. 당나귀(智慧)는 그런 分別을 하지 않는다. 오직 지금 배가 고프기 때문에, 生存이라는 實存을 支撐하기 위해 풀을 먹을 뿐이다. 정말 迫進感 넘치는 드라마요, 한 소식이다. 人間에게 ‘나’라는 實存은 이처럼 緊縛하고 切實한 것이다. 배고픈 당나귀가 풀을 먹어 치우듯이 속진(俗塵)의 煩惱를 없애지 않고는 眞情한 實存이란 있을 수 없다.
普和와 臨濟가 한 信徒집의 供養 招待에 갔다. 밥상을 마주한 臨濟가 입을 열었다.
묻는다 : 한 가닥의 머리털이 큰 바다를 삼키고 한 알의 겨자씨에 수미산을 집어넣는 게 神通인가, 아니면 眞如의 本體인가?
답한다 : (普和는 느닷없이 眞髓盛饌이 차려진 밥상을 발길로 차 엎는다.)
묻는다 : 너무 거칠지 않소?
답한다 : 여기가 어디라고 거칠다느니, 세밀하다느니 떠드는 것이냐?
佛法의 眞理는 그따위 觀念的인 ‘겨자씨 이야기’나 ‘거칠고 細密함’의 區別에 있는 게 아니다. 佛法은 오직 지금 여기 施主者가 차려준 食卓 위에서 살아서 숨쉬고 있다. 이는 四方 일장인 유마의 방이 대소, 趨勢의 差別을 超越한 無限의 絶對空間이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다음날 普和와 臨濟가 함께 臨濟院에서 再供養을 했다.
임제 : 오늘 供養은 어제와 比較해 어떻소?
보화 : (전날과 똑같이 밥상을 뒤집어 엎어버린다.)
임제 : 좋긴 하오마는 너무 거칠군요!
보화 : 이 눈먼 놈아. 불법에 무슨 거칠고 세밀함이 있다고 떠드는 것이냐?
임제 : (급기야 혀를 절래절래 내두른다.)
보화의 言行은 平常人의 意表를 날카롭게 찌른다. 平生 거칠기로 有名했던 臨濟도 어디에서건간에 ‘趨勢’를 區分하는 2분법적인 思考는 容納될 수 없다는 普和의 단호함에는 氣를 못펴고 말았다. 그는 旣成의 老朽한 價値인 2분법을 깨부수는데 佛法의 本質이 있고, 禪이 追求하는 根源的 自由란 것도 바로 이 같은 ‘破壞性‘이라는 소식을 전해 준다. 사람들이 솔깃하는 神通이나, 奇蹟도 普和에게는 한낱 웃기는 잠꼬대에 불과할 뿐이다.
風顚과 괴팍함은 多樣性. 創造性의 源泉이다. 英國의 에딘버러 大學의 위크스 敎授가 10년간 1천명의 괴짜를 硏究한 結果는 아주 興味롭다.
“괴짜들은 勇氣있게 自己個性을 내세우고, 開放的이고 率直하고 樂觀的이다. 그들은 틀에 얽매이기를 拒否하고, 創造的이고 好奇心이 많고 理想主義的이다.”
禪師들이 보여준 風光과 치둔(癡鈍 : 어리석은 체함)은 그 속에 모두 이 같은 괴짜들의 特性을 담고 있다. 괴짜가 없는 社會는 劃一化 되고 만다. 社會의 創造的 活力은 多樣性으로부터 나온다. 多樣性이란 곧 自由다. 禪이 風光을 통해 追求하는 自由도 바로 이 같은 多樣性이다. 禪師들의 風光을 절대로 誤解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결코 精神異常者가 아니다. 오직 旣存의 낡은 틀을 깨부수려는 ‘말썽꾸러기’일 뿐이다.
* 황벽의 불법이 간단명료하구나(黃檗佛法無多字)
묻는다 : 黃檗禪師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가?
답한다 : 佛法의 根源을 세 번이나 물었는데 그때마다 몽둥이로 얻어맞는 警責을 받았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지금까지도 모르겠습니다.
묻는다 : 그것은 네가 모든 執着과 煩惱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려 애쓴 스승으로서의 懇曲한 老婆心이요, 가르침이었는데...... 그런 스승의 親切한 가르침을 모르고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물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답한다 : (臨濟는 이 말에 홀련히 깨닫고) 아!, 스승 黃檗和尙의 佛法이 이처럼 簡單明瞭할 줄이야...
臨濟義玄禪師(? - 866)는 東亞細亞 禪佛敎의 우뚝한 봉우리다. 11世紀 이후 韓.中.日 3국의 禪佛敎는 사실상 臨濟義玄이 開山祖인 臨濟宗 天下로 統一되었다. 禪林은 흔히 이 같은 臨濟禪의 天下 制覇를 “臨濟宗 天下 曹洞宗 한구석(臨天下洞一隅)‘이라는 表現으로 要約된다. 臨濟宗은 馬祖道一大師(709-788)때부터 本格化한 祖師禪의 가장 强力하고 充實한 後繼者라 할수 있다. 臨濟宗의 家風의 特徵으로는 革新性, 人間尊嚴性의 强調, 電光石火, 痛快함, 激烈함 등을 손꼽는다.
‘臨濟의 괭이’ 라는 話頭는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總整理하는 壓縮板이다. 어느날 黃檗方丈 以下 온 대중이 밭갈이 普請에 나섰다. 黃檗이 뒤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은 모두 괭이를 들었는데 臨濟만이 빈손이었다.
묻는다 : 자네는 괭이를 어디에다 두었는가?
답한다 :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갔습니다.
묻는다 : 이리 가까이 오너라. 이 일을 너와 한번 상량(商量)해 봐야겠다.
답한다 : (臨濟가 黃檗옆으로 다가갔다.)
묻는다 : (黃檗이 괭이를 세우더니) 이 괭이는 혼자 섰다. 天下 누구도 이 괭이를 들어 올릴 수 없다.
답한다 : (臨濟는 黃檗이 손에 쥐고 있는 괭이를 빼앗아 세우고는)어째서 지금은 괭이가 제 손 안에 있습니까?
얼핏 보기에는 어린애들 장난 같다. 그러나 이 禪問答은 人間主體性을 强調하는 엄청난 아포리즘(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內包하고 있다. 괭이는 사람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佛性(自性.眞如)을 象徵한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갔다” 에서의 다른 사람은 臨濟가 後日 거듭 力說한 臨濟禪의 核心思想인 참사람(眞人), 즉 깨달음이라는 關門을 通過한 主體的 自我를 말한다. 臨濟의 저 有名한 ‘無位眞人‘ 은 그 基本的 發想이 여기에서부터 나왔다.
君子는 주인의 許諾을 받지 않고는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러나 小人은 그렇지 않다. 자물통이 채워진 倉庫의 物件도 수를 窮理해서 훔쳐내 자기의 손에 넣고 만다. 君子가 중히 여기는 것은 德이고, 小人이 중히 여기는 것은 智慧다. 德을 중히 여기면 自我를 制限하게 된다. 智慧를 중히 여기는 小人은 자신의 必要를 充足시키는 데 온 힘을 쏟는다. 潙山이 말하는 小人과 君子는 道德的 意味의 用語가 아니다. 단지 小人의 智慧 中心的인 思考와 行動이 모든 束縛을 一擧에 걷어버릴 수 있다는 心靈상의 自由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黃檗이 괭이를 세웠을 때 見性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그 行動속에 무슨 深奧한 道理가 있으리라 여긴다. 또 온갖 思慮를 動員해 그 行爲속의 意味를 찾으려고 애쓰기 십상이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黃檗禪師가 “天下에 아무도 이것(괭이,불성)을 들 사람이 없다”고 한 말이 바로 問題의 核心이자 解答이라는 것을 看破한다. 따라서 군더더기에 不過한 모든 생각을 버리고 단숨에 그 괭이를 움켜쥔다. 이것이 곧 黃檗이 내놓은 問題에 대한 簡單 明瞭한 對答이며 問題의 解決 方法이다.
禪은 이같이 知見(知識을 앞세워 事物을 觀察함)과 思慮를 통해 問題를 바라보는 行爲를 徹底히 排擊한다. 바꾸어 말해 禪은 問題를 간단히 그리고 直接的으로 解決하는 簡素化와 單純性을 드러내보이는 行爲다. 禪에서는 事物의 本質을 無視하고 그 外形的인 理解만을 追求하는 方式을 禁忌視한다. 禪은 事物의 本質에 直接 맞닥뜨릴 것을 要求한다.
完璧한 道德的 行爲는 俗世에서는 높은 價値일 수도 있다. 그러나 道德은 어디까지나 慾望에 대한 制限裝置에 不過할 뿐이다. 사람이 絶壁에서 떨어지면서 아무리 自身의 墜落을 늦추려고 해봐도 결국 無爲에 그치고 만다. 이는 道德의 ‘慾望 節制’가 아무 效力이 없음을 比喩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道德을 따르고 그 準則을 위하여 천 번 만 번 思慮를 거듭하는 君子는 眞正한 意味에서 智慧의 貧困에 시달리는 사람이다.
道德은 根本的으로 人類에게 自由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런 意味에서 禪佛敎는 전혀 새로운 角度에서 人間의 自由에 接近하는 一種의 ‘신사회학(新社會學)’이라고 할 수 있다. 禪佛敎가 지니고 있는 非道德主義的 特徵은 慾望의 本質을 徹底히 깨닫고 慾望으로부터 自由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禪은 事物을 直接 對面하고, 또 眞情한 解放과 自由의 境地로 나가게 한다. 臨濟는 스승 黃檗의 괭이를 빼앗음으로써 이 같은 人間解放과 絶大自由를 소리 높여 외친 것이다.
다음은 宋나라 때의 한 比丘尼가 지은 것으로 禪宗寺에서 높은 平價를 받고 있는 禪詩이다. <학림옥로(學林玉露)>라는 宋代 佛書에 收錄되어 있는 이 詩는 大禪智識들의 開悟詩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有名한 오도송(悟道頌)이다. 作家는 身元未詳으로 모니(某尼)라고만 되어있다.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芒鞋踏破隴頭韻(망해답파농두운)
歸來笑拈梅花嗅(귀래소접매화후)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종일토록 봄을 찾아 헤매었으나 봄을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다 닳도록 구름 덮인 농두산 꼭대기까지 헤매었지만
돌아와 뒤뜰의 활짝 핀 매화꽃 향기를 맡으니
봄은 이미 매화나무 가지 위에 십분 무르익어 있더라
부처를 밖에서 구하지 말라. 禪이 누누이 强調하는 말이다. 衆生이 곧 부처고, 내가 곧 부처이니 자신의 內面을 省察해 내면자증(內面自證)하라는 게 禪이 說破하는 佛法과 見性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經典上으로는 華嚴經의 선재동자(善財童子) 이야기가 이 같은 內面自證을 代表한다. 모든 佛法의 出發點과 歸結點은 자신의 ‘內面 省察’로 모아진다. 장황한 華嚴經의 敎說과 禪學의 갖가지 說破를 단 28字의 7言節句로 쉽게 壓縮해 드러내 보인게 이 比丘尼의 偈頌이다. 道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平凡한 日常 속의 예(매화꽃)로 머리에 쏙 들어오게 읊조렸다.
禪師와 비구니의 問答 하나를 더 살펴보자.
묻는다 : 네 이름이 뭐냐?
답한다 : 현기(玄機)라고 합니다.
묻는다 : 그 베틀에서는 하루에 베를 얼마나 짜느냐?
답한다 :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았습니다.
묻는다 : (比丘尼가 절을 올린 후 물러나 세 발짝쯤 걸어갔을때) 袈裟가 땅에 떨어졌구나!
답한다 : (比丘尼가 고개를 돌려 自己의 袈裟자락을 본다)
묻는다 : 그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더니, 그 꼴이 참 좋구나.
玄機라는 比丘尼가 雪峰義存禪師(822-908)를 讖文한 禪問答이다. 話頭로는 “촌사불괘”라 한다. 玄機는 8세기 초(710-711) 대일산으로 出家, 得道한 후 영가진각선사의 弟子가 되어 절강성 온주에 主席한 比丘尼 禪師이다. 雪峰은 ‘남설봉 북조주(南雪峰 北趙州)’ 라는 평을 받으면서 唐末 江南 禪佛敎를 주름잡은 禪杖이다. 복건성 雪峰山 숭선선사에 主席한 雪峰禪師와 하북성 趙州 관음원(현 백림선사)의 趙州禪師는 禪의 黃金時代인 9世紀 禪林을 代表하는 巨木이었다.
禪師들이 흔히 묻는 ‘이름’이나 어디서 왔느냐는 ‘出發地’는 本來의 自己面目, 父母한테서 태어나기도 전의 存在의 根源을 象徵한다. 단순한 世俗的 이름이나 法名, 地名, 절 이름이 아니다. 學人이 慘聞할 때 흔히 걸려드는 첫번째 關門이 바로 이 같은 象徵性을 갖는 ‘이름’ 과 ‘出發地’다.
현기(玄機)란 이름은 글자 그대로 ‘神奇한 베틀’이라는 뜻이다. 대단한 織造機라는 비구니의 이름 ‘玄機’에는 한소식 했다는 自負心과 禪者의 가르침을 消化할 기봉(機鋒)을 갖추고 있다는 能力誇示를 含蓄하고 있다. 雪峰은 그렇다면 그 神技한 베틀은 하루에 얼마나 되는 양의 베를 짜느냐, 즉 煩惱 妄想의 반연(攀緣 : 對象에 이끌리는 마음의 作用)을 얼마나 짜내고 있느냐고 묻는다.
比丘尼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는 베틀이라고 뻐긴다. 一體의 煩惱妄想을 벗어난 解脫의 베틀이요, ‘無心道人’ 이라는 自慢이다. 모든 攀緣을 끊어버린 알몸의 ‘玄機’라고 으시대는 比丘尼.... 雪峰의 단 한마디에 들통이 난다. 比丘尼는 ‘가사가 벗겨져 땅에 떨어졌다’니까 고개를 돌려 이를 確認한다. 眞情으로 ‘無心의 알몸‘ 이라면 옷이 벗겨져 裸體가 되었다는 指摘에 神經을 쓸 필요가 있겠는가.
벌거벗은 몸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실오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기 스스로가 ’裸體‘라고 宣言해 놓고 옷이 벗겨졌다니까 ’裸體‘인지 아닌지를 確認하려 하고, 알몸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矛盾을 보였다. 眞情 알몸이라면 袈裟가 벗겨졌든 속옷이 벗겨졌든 무슨 相關이겠는가. 원래 裸體였고 입은 게 없다는데 말이다.
比丘尼는 袈裟 長衫에 속옷까지 덕지덕지 입은 ‘妄想투성이’로 와서는 觀念的이지만 스스로를 ‘알몸’이라고 내세웠던 것이다. 結局에 단 세 발자국도 못 가서 밑천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것이 雪峰이 一喝한 內用이다. 그래 꼴 좋구나! 걸친 袈裟를 찾고 있는 그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란 말이냐? 진짜 알몸이라면 陰部가 드러났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마음을 비워 自身의 모든 것을 宇宙라는 絶對自由의 空間에 내던진 衲僧의 낙처(落處)인 것이다.
雪峰은 내심 타이른다. 땅바닥에 떨어진 袈裟를 찾는 정도의 ‘알몸’이라면 “큰 방에 들어가 參究나 더 하라”고. 그 따위 觀念的 解脫은 自己欺滿이고 詐欺에 불과하다고. 眞情으로 한 티끌의 속진(俗塵)도 묻지 않은 心身 解脫의 알몸은 ‘네 옷이 벗겨졌다’해도 裸體를 부끄러워하는 世俗的 感情이 있을 수 없다.
臨濟 역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마음의 본바탕인 淸淨性과 絶對自由性을 잃지 말아야 함을 强調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人間 存在의 바탕이다. 臨濟는 마조의 充實한 後繼者로서 祖師禪이 發展시켜온 심지법문(心地法門)을 한층 더 赤裸裸하게 說破했다.
佛家는 傳統的으로 가장 理想的인 마음의 씀씀이를 ‘소’에 비유해 形象化시켰다. 臨濟도 소를 예를 들어 無心의 境地가 어떤 것인가를 說破한다. 다음의 소에 比喩한 禪問答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