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실의 향기] 경남 함양 황대선원 조실 성수스님
-“스스로 자신을 살생마라”-
경남 함양군 안의면 황석산 자락 황대마을. 농월정을 지나온 화림동계곡수 한줄기가 고목 둥구나무를 돌아나가는 곳에 ‘황대선원’이 있다. 조계종단 전계대화상이면서 황대선원 조실인 성수(性壽) 스님(84)의 주석처.
절집이면 있게 마련인 일주문도 전각도 현판도 당호도 없는 6~7채 집들 가운데 가장 높은 곳. 시나대숲에 둘러싸인 농가주택 같은 벽돌집이 조실당인 셈이다. 1994년 스스로 토굴이라 부르는 집 한 채 짓고 들어앉은 노스님은 조실당 옆에 별채로 딸린 단칸 선방 좌복(참선용 방석)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여여부동(如如不動) 참선중이었다.
노장께 ‘한말씀’ 청했더니 대뜸 “주워 담을 그릇은 가지고 왔는가”라고 물어왔다. 머뭇거리는 사이 산비탈 대숲으로 까칠한 바람이 우수수 쏟아져내렸다.
“일일일야에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이야. 하루 밤낮 사이에 일만번 살고 일만번 죽는다는 뜻이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신을 똑바로 볼 때는 살아있는 것이고, 한순간이라도 정신이 어름하면 살아있어도 죽은 거야.”
팔순을 넘긴 세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말에는 힘이 넘치고, 행동은 활달했다. 돋보기 없이 글을 읽을 정도로 눈이 밝고 심신이 정정했다. 스님은 출가 이후 매일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하는 일과를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공양은 한 끼에 딱 다섯 숟가락. 몇년 동안 병원이나 약 신세를 져본 적이 없다.
성수스님은 어떤 법회 초청이든 마다하지 않고, 누구든 찾아오면 격을 두지 않고 만나준다. 매월 3~4차례씩은 법문을 위해 서울로, 부산으로 나들이를 한다. 불자들에게 존경받는 큰스님인데도 시자를 데리고 다니지도 않는다.
스님 스스로 지키고 제자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생활 원칙은 절대 눕지 말 것, 많이 먹지 말 것, 새벽 예불에 반드시 참여할 것, 휴지 한장도 아낄 것, 잡기에 손대지 말 것. 선원의 스님과 불자들은 올해도 겨우 냉기가 가실 정도의 추운 선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젊은 수좌들에게 늘 스승을 물어뜯는 ‘새끼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스님은 자신이 젊은 시절 기세등등한 새끼사자였다. 효봉, 동산, 성철, 한암, 경봉, 탄허, 청담스님 등 당대의 쟁쟁한 선지식들을 찾아다니며 벼락같은 일갈로 한바탕 육박전에 가까운 ‘법거량’(선문답)을 벌였던 일화가 숱하게 남아있다.
그 치열한 탁마(琢磨)의 세월을 지나 어느덧 스님의 눈썹은 하얗게 변했다. 오랜 수행으로 번뇌의 불씨까지 갈무리한 듯한 백전노장의 얼굴에는 이제 인생의 달관이 넘쳐흐른다.
-사람들이 바쁘다보니 참선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생활 속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참선법’을 알고 싶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이 부처를 닮으면 돼. 사람을 만날 때 하심(下心) 하면서 좋은 말로 복을 짓고, 몸을 움직일 때는 태산처럼 무겁게 걸어야 해. 하루에 한번이라도 부처님처럼 당당하게 허리를 세우고 앉아 집중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해. 그러면 건강해져. 사람들의 말이 험하고 자세가 바르지 못하니 개인의 몸과 마음이 아프고, 사회가 병들고, 정치가 어지러운 거야.”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인데 정치지도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지요.
“헛말 하지 말고, 헛일 하지 말고, 헛걸음 하지 마라. 남 탓 하지 말고, 나를 탓하라. 그리고 남을 나처럼 아끼고 위할 때 비로소 국민들이 따르게 돼. 대범하고 당당한, 옹졸하지 않은 안목의 지도자가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애. 정치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活人劍)이 되어야 해.”
성수스님은 한국 불교계에서 남다른 수행가풍을 지켜왔다. 스님은 수행자들에게 ‘이뭣고’ ‘똥막대기’ 같은 전통적인 특정 화두를 들게 하지 않는다. 교리나 화두라고 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죽고 사는’ 근본적인 문제, 그 생사의 도리 자체가 화두이고,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근본 의심을 누구나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님은 항상 자신의 수행경험에서 우러나온 독창적인 법문과 일반인들도 쉽게 선에 눈뜰 수 있는 대중적인 선문답을 펼쳐낸다.
오래 전 부처님의 ‘불살생(不殺生)’ 계율에 대해서도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스님은 “불살생계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뜻보다 ‘죽지 말라’, 즉 ‘생사의 윤회에서 빠져나오라’는 풀이가 부처님의 말씀에 더 가깝다”면서 “사람들이 파리 한마리 죽이는 것은 마음 아파 하면서도 매일 제 목숨 죽는 것을 모른다”고 안타까워 했다.
성수스님이 큰절의 방장스님을 마다하고 홀로 선도량을 일구는 것은 ‘산 새끼사자’를 키우기 위함이다. 1973년부터 서울에 ‘법수선원’을 세웠던 스님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함양땅으로 들어갔다. 2002년에는 산청의 폐교를 인수해 ‘해동선원’을 개원, 지리산을 선불장(選佛場)으로 가꾸고 있다. 해동선원은 원효스님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원효대사 말씀에 ‘올 때는 빈손으로 오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만 진짜 가져가는 것은 내가 일생에 잘못한 업’이라고 했어. 일초도 늦추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자기를 고치는 삶을 실천해야 해. 난 아직도 살아있는 새끼사자를 기다리느라 늙어도 늙은 척도 안하고 살어. 누군가 황적산 괴짜중의 ‘보따리’를 걷어찬다면 끌어앉고 한바탕 덩실덩실 춤을 출 거야.”
스님은 “마음에 부딪치는 모든 것이 진리이고,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모두 고마운 문수보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고통이 정신력을 담금질시켜 마음을 크게 만드는 것은 승(僧)과 속(俗)이 똑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자연은 날 때 나고, 클 때 크고, 꽃필 때 꽃피고, 열매맺을 때 열매맺고, 마침내 익어서 결실을 보는데 우리 인간은 익을 줄 모르기 때문에 늙어 썩어지고 버림받는 것을 깨달아야 해. 눈을 뜨고 보면 발길에 차이는 게 모두 도(道) 아닌 것이 없어. 산과 물, 나무와 돌이 모두 부처이고 나 자신이야.”
노장이 얼굴 가득 넉넉한 웃음을 띠고 한마디 더, 툭 던졌다.
“물 가운데 뜬 달은 만져보기 어렵고, 마음 가운데 자성(自性)도 만나보기 쉽지 않네. 산은 갈수록 높아지고 물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 도리를 아는가.”
〈염화실 sjkim@kyunghyang.com〉
출처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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