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상윳따니까야 40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경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경 세존께서 손톱 끝으로 흙먼지를 집어들고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의 흙먼지와 내 손톱끝의 흙먼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의 양이 훨씬 많고, 세존의 손톱끝의 흙먼지의 양은 훨씬 적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인간으로 죽어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인간으로 죽어서 축생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뭇삶들은 매우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거룩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이것은..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에 대한 경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에 대한 경 세존께서 손톱 끝으로 흙먼지를 집어들고 수행승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큰 대지의 흙먼지와 내 손톱끝의 흙먼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많은가?” “세존이시여, 이 큰 대지의 양이 훨씬 많고, 세존의 손톱끝의 흙먼지의 양은 훨씬 적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삼가는 뭇삶들은 매우 적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지 않는 뭇삶들은 매우 많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거룩한 진리이다. 그러므로 수행승들..

씽싸빠 경

씽싸빠 경 한때 세존께서는 꼬쌈비 시의 씽싸빠 숲에 계셧다. 그때 세존께서는 적은 양의 씽싸빠 나뭇잎을 손에 집어들고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손으로 집어든 나뭇잎과 저 위 씽싸빠 나뭇잎과 비교하면 어느 것이 더욱 많겠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으로 집어든 적은 양의 나뭇잎보다 저 위 씽싸빠 나뭇잎이 훨씬 많습니다.” “이와 같이, 수행승들이여, 깨달아 알았지만 그대들에게 설하지 않은 것이 훨씬 많고 설한 것은 매우 적다. 수행승들이여, 내가 설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들은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에 적합하지 않고, 싫어하여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라지기 위한 것이 아니고, 소멸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잘 알기 ..

초전법륜 경

초전법륜 경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씨 시의 이씨빠다나에 있는 미가다야 공원에 계셨다. 세존께서 다섯 수행승들에게 말했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두 가지 극단을 섬기지 않는다. 두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탐착을 일삼는 것은 저열하고 비속하고 배우지 못한 일반 사람의 소행으로 성현의 법이 아니며 무익한 것이다. 또한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도 괴로운 것이며, 성현의 법이 아닌 것으로 무익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앎을 생기게 하며, 궁극적인 고요, 곧바른 앎, 올바른 깨달음, 열반으로 이끈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중도를 깨달았다. 이것은 눈을 생기게 하고, ..

잇차낭갈라 경, 출입식념경

잇차낭갈라 경, 출입식념경 한때 세존께서 잇차낭갈라의 잇차낭갈라바나싼다에 계셨다. “수행승들이여, 나는 삼 개월 동안 홀로 머물며 명상하고자 한다. 한 사람이 발우에 음식을 나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곳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그후 세존께서는 삼개월이 경과하여 홀로 머물며 닦던 명상에서 일어나 수행승들에게 일렀다. “수행승들이여, 이교도의 유행자들이 그대들에게 ‘벗들이여, 수행승 고따마는 어떠한 수행을 닦으며 우안거의 기간을 지냈는가?’라고 질문한다고 하자. 이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그대들은 ‘벗들이여, 세존께서는 호흡새김에 대한 집중을 닦으며 우안거의 기간을 지냈다’라고 대답하라.” “수행승들이여, 나는 새김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새김을 확립하여 숨을 내쉰다. 1. 길게 숨을 들이쉴 때는 ..

동쪽으로의 경

동쪽으로의 경 수행승들이여, 네 가지 선정이 있다. 네 가지 선정이란 어떠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이세상에 수행승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서 떠나고, 건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떠나서,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읨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든다.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내적인 고요와 마음의 통일을 갖추고, 사유와 숙고를 뛰어넘고, 삼매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든다. 희열 또한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행복하게 산다’라고 말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든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지고 기쁨과 근심도 사라진 뒤,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으며, 평정을 느끼고, 새김이 있고, 청정..

중병의 경

중병의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존자 아누룻다는 싸밧티 시의 안다 숲에서 병이 들어 괴로워했는데, 목숨이 위태로운 병이었다. 수행승들이 존자 아누룻다에게 말했다. “존자 아누룻다께서는 어떠한 수행을 하면서 지내셨기에 몸에 생겨난 고통의 느낌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까?” “벗들이여, 네 가지 새김의 토대에 마음을 잘 정립하여 익히면, 몸에 생겨난 고통의 느낌들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길의 경

길의 경 수행승들이여, 한때 나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직후,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가에 있는 아자빨라 보리수 아래에 있었다. 수행승들이여, 그때 홀로 명상하는 동안에 내 마음에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뭇삶을 청정케 하고,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고, 고통과 근심을 뛰어넘고, 바른 이치를 얻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하나의 길이 있으니, 그것은 곧 네 가지 새김의 토대이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데싸까 경

데싸까 경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자신을 수호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수호하는가? 살피고 닦고 익히는 것을 통해서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수호함으로써 남을 수호하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남을 수호함으로써 자신을 수호하는가? 인내하고 해치지 않고, 자애롭고 연민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방법으로 남을 수호함으로써 자신을 수호하는 것이다. *번역 출처 전재성 박사

질병의 경

질병의 경 세존께서 안거에 들었을 때 심한 질병이 생겼다...질병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사에서 나와 뒤의 그늘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존자 아난다가 찾아와 인사드리고 말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견디어내셔서 더없이 기쁩니다. 세존께서 병이 드셨을 때 저의 몸은 마치 마비된 것 같았고, 저는 분별을 잃게 되었고, 가르침들도 저에게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저는 ‘세존께서는 수행승들의 승단과 관련하여 어떠한 공표도 없이 궁극의 열반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안심했습니다.” “아난다여, 수행승의 승단이 지금 내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난다여, 나는 안팎의 차별을 두지 않고 가르침을 다 설했다. 아난다여, 여래의 가르침에 감추어진 스승의 주먹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