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1077

업(의도)의 중요성

업(의도)의 중요성  삶에서 희로애락을 젖혀놓는다면 생사가 남습니다. 태어남과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깨우쳐야 할 궁극의 대상입니다. 죽음은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기에, 결국 태어남의 조건을 밝히는 것이 관건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태어남은 존재하고자 하는 갈망을 조건으로 합니다. 12연기에서 10번째 고리인 有(존재)입니다. 존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아직 현재 삶의 연장선에 있을 경우에는 경험적 개체인 존재의 성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현재의 삶이 다한 경우에는 다음 생으로의 윤회 조건으로 전개됩니다. 또한 존재는 집착(取)을 조건으로 형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업은 생각, 말, 몸짓의 3가지 형태로 드러납니다. 붓다께서는 업을 곧 의도(의지)라 말씀하셨는데, 그 ..

진리인 연기법

진리인 연기법 연기는 ‘상호의존적 발생’입니다.연기하는 법(존재)의 속성은 無常, 苦, 無我입니다.무상은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고는 불만족, 불완전, 실존의 한계상황무아는 고정불변의 실체(아트만)는 없다 연기하는 법의 존재형식은 관계 속에서의 인과적 질서이며,인과는 동시성, 중첩성, 다의성의 성질을 갖습니다. 공시적 차원에서는 이해가 어렵지 않습니다. 부부가 좋은 예입니다. 아내와 남편은 동시적으로 발생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원인이자 결과이며, 남편 또한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다른 상황, 가게에서는 손님이며,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며, 자식 앞에서는 부모이며, 친구 앞에서는 친구이며, 직장에서는 각자의 지위로 존재합니다.그러나 통시적 차원, 전후의 시차가 주어지는 차원에서는 인과의 이..

겉옷과 속옷, 분별과 무분별

겉옷과 속옷, 분별과 무분별  존재의 속성은 ‘無常, 苦, 無我’입니다. 세상만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형되고 변화합니다. 그렇기에 존재는 늘 불안정하고 불완전합니다. 당연한 이치의 귀결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제외한 모든 사상과 종교는 여기에서 멈춰 있습니다. 존재가 왜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느냐에 대한 까닭을 밝히지 못한 것이죠. 그 원인은 바로 ‘무아’입니다. 고유의 자기원인, 자기성질, 곧 실체를 갖지 못하고 연기하기에 존재는 불안정하고 변화합니다. 무아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세계를 ‘실체적’으로 인식합니다. 실체적 인식이란 배타적이고 독립적인 모순대립의 관계를 말합니다. 연기적 인식은 상호의존적 대립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실체가 없지만 연기하는 존재로서 실재합니다. 연기를 자칫 잘못 이해하..

Rainy something

Rainy something /   사막에서만 길을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었다책갈피 사이에서도꿈과 꿈 아닌 것들의 사이그대와 나사랑과 사랑 같았던 것들, 그리고 가끔은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망설임의 걸음들과어긋남의 그림자들,깊게 뿌리내려 주름진 슬픔들은어지러이 길을 재촉하고 아닌듯 저편의 어둠이 내리면모든 색깔에 밀물이 든다 옹색한 살림살이와간간이 내뱉는 기침과 탄식낡은 그물처럼 출렁거리는 記憶들,事物의 표면에 흘러내리는시간의 껍질에마저도 그렇게, 못내 그리웠을까이 모든 것들의 안식과그 모든 것들의 바깥에서.

편지 1

제가 ‘최애’하는 E선생님 반갑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철학자들을 거론하면서 아는 척하는 태도 이면에는 아주 못된 심보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철학, 사상, 사유라 일컫는 정신적 행위에 큰 감동이 없습니다. 그 한계가 뚜렷한 까닭입니다. 삶은 ‘생로병사’의 현상적 틀에 갇혀 있지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헌데, 사유라는 행위는 ‘생사’를 외면하거나 혹은 신비적 영역으로 던져놓고서, ‘희로애락’만을 대상으로 합니다. 몇 달 전 모임에서 K선생에게 이런 얘기를 슬쩍 짓궂게 건넨 적이 있습니다. “K선생, 이제까지의 모든 사유, 철학, 사상은 말입지, 붓다의 가르침에 비교하자면 놀이터에서 흙장난 하는 아이들 수준이거든.” 아...그때 K선생의 표정이 아주 오묘했습니다. 뭐, 이녀석 아..

라깡, 하이데거, 헤겔 그리고 붓다

정신분석학자이며 철학자인 자크 라깡에게 세계는 3가지이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상상계는 거울 단계로 이미지화한 자아가 비로소 출현하지만 세계와 자아를 동일시한다. 상징계는 상상계를 벗어나 언어질서와 사회구조에 편입되는 세계이다. 원초적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이 깨지고, 성숙한 자아와 타자인 세계와의 대립적 관계가 펼쳐지는 의미생성의 장이다. 실재계는 언어 곧 의식, 사유로써는 포획할 수 없는 언어와 사유의 바깥, 무의식의 장으로, 상상계와 상징계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균열시키는 근원적 힘이다. 라깡은 이를 ‘대상 a'’로, 좀더 직관적인 ‘구멍’으로 지칭한다. 상상계와 상징계는 실재계의 ‘구멍’으로 인하여 구조적으로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진단이다. 이는 곧 우리 모두 정신질환인 ‘편집증’과 ..

연기적 존재론과 인식론

연기적 존재론과 인식론  2500여년 전 붓다께서 발견한 진리인 연기법은 오랜 세월 전승되면서 윤색되고 변질되고 더 나아가 왜곡된 상태입니다. 부파불교 대승불교를 거치면서 특히 힌두교 사상과 중국의 현학(노장자), 유학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아 그 정도가 심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중관의 공(空) 사상과 화엄의 법계연기 사상으로 인해서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연기법은 쉬운 듯 어렵고, 단순한 듯 복잡하며 심오합니다. 연기법의 정형구는 이렇습니다.“이것이 있음으로써 저것(이것)이 있다. 이것이 발생함으로써 저것(이것)이 발생한다.이것이 없음으로써 저것(이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함으로써 저것(이것)이 소멸한다.” 있음과 없음(有無), 발생과 소멸(生滅)은 가장 중요한 인식의 토대이자 관문입니..

윤회 있는가, 없는가?

윤회 있는가, 없는가?  최근 유투브에 몇몇 불교 출가승들이 윤회는 없다라는 주장을 하는 영상이 적지 않게 떠돌아다닌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과 익산 사자암에 거주하는 향봉스님이 대표적이다. 법륜스님이나 이중표교수도 마찬가지다. 결론인즉, 윤회의 주체 즉 아트만이 없는데 무아윤회라니 가당치 않다라는 얘기다. 윤회라면 당연히 윤회의 주체가 있어야 할 것인데,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無我 아닌가. ‘나’랄 것이 없는데 무슨 윤회를 논하느냐, 이런 논지이겠다. 언뜻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윤회는 존재하며, 윤회의 주체는 ‘나’라고 의심하지 않는 정신과 물질, 몸과 마음이다. 즉 실체적 자아인 오취온이다. 무아는 깨달은 자의 세계이며, 윤회하는 범부중생들의 세계는 ‘나, 내 것, 나의 자아..

고통이 성스러운 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고통이 성스러운 진실일 수밖에 없는 이유 삶은 그 자체로 모순적 행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살기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기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이 참혹한 삶의 아이러니라니. 돈, 사랑, 명예, 건강, 권력 등 모든 것을 쥐었든 일부만을 누렸든 삶은 여지없이 죽음으로 종결됩니다. 죽음을 거부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장치도 무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의 궁극적 의미를 붓다께서는 ‘고통, 불만족’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고따마 붓다께서 전하신 진리는 ‘연기법’이며, 연기하는 법들이 펼쳐지는 현상계의 실상을 ‘4聖諦-4가지 성스러운 진실’로 정리해 주셨습니다. 4성제는 ‘고성제-고집성제-고멸성제-고도성제’입니다. 또한 연기하는 법들의 보편적 성품이 ‘3法印’ 즉 ‘無常, 苦, 無我’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4가지 음식과 알아차림

4가지 음식과 알아차림 존재인 오온을 먹여살리는 4가지 음식이 있다. 단식(團食), 촉식(觸食), 의사식(意思食), 식식(識食). 단식은 육체를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물질적인 음식을 말한다. 촉식, 의사식, 식식은 정신적 요소들인 감성(受), 이성(想), 의도적 형성작용(思行), 의식(識)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음식들을 가리킨다. 단식은 고기와 채소 등 다양한 음식으로 경전에서는 험한 곳에서 길을 잃은 부부가 죽은 아들을 음식삼아 생명을 유지한다는 비유로써 단식에 조심할 것을 가르친다. 촉식은 12연기에서의 ‘촉’으로 3사화합을 말한다. 주관인 6내입처와 객관인 6외입처, 그리고 의식. 주관인 감각기능과 객관인 대상(표상), 의식을 먹여살리는 재료라는 뜻이다. 경전에서는 피부가 벗겨진 소가 거친 벽에 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