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1080

오온과 오취온

오온과 오취온 오온은 나와 세상을 이루는 色受想行識으로 물질적 요소인 색과 정신적 요소인 수상행식입니다. 오취온은 이러한 오온을 나, 자아 또는 내 것이라고 여기는 무지, 착각과 집착이 덧입혀진 망상, 망념입니다. 실재가 아닌 허구적 관념이라는 것이죠. 오취온은 ‘항상하고 즐거움이며 자아가 있다’는 인지 想의 전도, 착각과 오류로 인한 과보입니다. 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무아’라는 지혜가 자리한 인지 想로 인한 과보입니다. 중생인 나는 안의 오취온이며 대상은 밖의 오취온입니다. 깨달은 성자에게 오취온은 없으며 단지 오온일 따름입니다. 그런 까닭에 유전문은 오취온의 연기이며, 환멸문은 오온의 연기입니다. 유전문에서는 무명과 갈애로 인한 업의 작용이 멈추지를 않는 까닭에 생로병사의 윤회가 끝없이 반복됩..

조사선, 간화선의 한계

조사선, 간화선의 한계 중국선이 태동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 볼 때, 도가와 유교의 뿌리가 깊고 그 세력이 여전한 중국의 현실에서, 외래 종교인 불교가 명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왜곡된 인지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하기에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기는 어렵습니다. 문맹이 거의 사라지고 정보공유가 활발한 요즘에도 그러할 진대, 문자와 사유에 익숙한 이들이 드문 1500여년 전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식인 위주의 유교에 비해 도가는 민중적 요소가 강하고 불교의 가르침과 닮은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에 외래종교인 불교가 유교와는 대립하고 노장자 철학사상과는 손을 잡고 뿌리를 내리고자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타당합니다. 선불교의 조사 가운데 나환자도 있고 일자무식도 ..

개념과 실재

개념과 실재 아비담마에서는 개념과 실재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개념을 헛된 것, 실재를 참된 것으로 규정합니다. 선불교에서도 언어적 작용을 끊고 곧바로 마음의 작용을 직관하라고 합니다. 개념은 바깥 대상을 언어화, 표상(이미지)화하는 작용입니다. 감각기관을 통하여 받아들인 대상을 분별하고 이미지화 하고 언어로써 규정하여, 각각의 대상에 고유한 속성을 부여합니다. 이러한 차별화 작업은 존재의 생존전략입니다. 삶이란 존재의 유지, 존속, 확장입니다. 이러한 개념 작용(산냐 想 sanna)은 개체로서의 삶이 지속되는 한 생멸하면서 유지됩니다. 개념과 실재는 존재론적 범주와 인식론적 범주에서 차별화해야 합니다. 존재론적 관점에서 개념은 토끼뿔, 거북털처럼 허구의 존재를 가리키며,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개념은 실재와..

번뇌에 대하여

번뇌에 대하여 번뇌는 어떻게 정의되며 그 기능은 무엇일까요? 빨리어로는 아사와 asava, 한자로는 루 漏, 흘러나와서 삶을 오염시킨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습니다. 탐진치 貪瞋痴 3독을 대표적인 번뇌로 얘기할 수 있겠고, 경우에 따라서 5가지 장애, 7가지 저류 底流, 10가지 족쇄(5하분결, 5상분결) 등으로 구분짓기도 합니다. 12연기에서는 무명 無明의 조건인 번뇌를 욕루 慾漏, 유루 有漏, 무명루 無明漏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욕루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욕계 삶의 번뇌, 유루는 ‘나는 있다’라는 착각을 동력으로 하는 색계, 무색계의 번뇌, 무명루는 3계 5도인 중생계를 유지시키는 삶의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무지 無知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번뇌는 어떠한 조건에서 생성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존재, 자아, 작용

존재, 자아, 작용 불교는 무아 無我를 주장하는데 자칫 혼란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한 삶을 개체 존속유지의 단위로 하는 정신육체적 복합체 즉 현실적 주체인 ‘나’, 타자와 엄격하게 구별되는 ‘나’는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을 따름이다. 또한 존재는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과 더불어 현상적으로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정체성 identity'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며 전개된다. 40세인 나는 회사에서는 부장이라는 존재로, 집에서는 남편, 아빠라는 기능, 작용의 존재로 현현한다. 동창 모임에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짠돌이 친구이다. 만원 전철에서는 자칫 성추행범이 될 수도 있다. 축구공은 잔디에서 굴러다니고 발로 걷어찰 때 축구공이 되며, ..

사띠 sati

사띠 sati 불교 교리와 수행에서 마음 citta과 더불어 중요한 용어를 꼽자면 사띠일 듯싶다. 5근, 5력, 7각지, 8정도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4념처수행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띠는 다양한 용어와 개념으로 번역되어 오히려 큰 혼란을 야기하는 면도 적지 않다. 마음챙김, 새김, 기억, 알아차림, 상기... ‘최상의 기억과 분별을 갖추어 오래전의 일과 언어를 상기하며 사띠를 확립’한다는 경전의 표현에 힘입어 이해하자면, 사띠는 ‘지금. 여기와 관련된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행위로, 일이든 수행이든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놓치지 않고 붙잡는 작용’ ‘계속 알아차림’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다양한 면에서 사띠의 작용은 활발하지만, 특히 사념처 수행에서..

여리작의와 여실지견

여리작의와 여실지견 니까야 경전이나 초기불교 관련 해설서, 법문 등을 대하다 보면 여리작의 如理作意 yonisomanasikara, 여실지견 如實知見 yathabhutananadassana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여실지견은 대체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 ‘형성되는 그대로 알고 봄’으로, 여리작의는 ‘이치에 맞는 정신활동’ ‘근원에 맞는 정신활동’ 등으로 얘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두루뭉실할 뿐 아니라 모호하기 그지 없어서 크게 와닿지 않으며, 여리작의와 여실지견의 차이가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어렵습니다. 여리작의는 한마디로 ‘연기적 사유’를 가리킵니다. 이와 달리, ‘실체적 사유’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감각적 쾌락에의 욕망, ‘나는 있다’라는 착각을 동력으로 하는 존재적 욕망을 바탕으..

두 가지 몸

두 가지 몸 중생계의 뭇삶은 다섯 가지 무더기, 즉 오온五蘊으로 존재합니다. 중생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므로, 무색계를 몸이 없는 정신적 요소들만으로 구성된 존재들의 세계라는 설명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욕계는 밖의 물질을 소유적 대상으로 하는 욕망계이므로, 내 밖의 존재인 타자의 몸을 나와 동일한 하나의 인격체의 구성요소로 대하는 게 아니라 소유의 대상으로 치부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사자나 호랑이에게는 그저 먹잇감인 고깃덩어리인 것과 같은 셈이죠. 색계는 소유를 동력으로 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읜 한층 수승한 세계입니다. 이 몸과 정신적 요소, 즉 오온을 ‘나’라고 착각하는 세계입니다. 아직까지는 즐겁고 괴로운 육체적 느낌을 떨구지 못한 세계이지만, 선정을 성취하지 않고서는 머물지 못하는 세계입..

불교,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불교,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한국은 불교의 성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결이 사뭇 다른 대승불교와 부파불교, 초기불교가 한데 공존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불교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그 흐름을 어떻게 좇아가야 하느냐는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 땅의 불자들이 대개 그렇듯, 저 역시 처음에는 대승 그중에서도 특히 선불교에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이 불교의 참모습이며 전부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불교에 대한 인식은 처음과는 매우 동떨어진 자리에 있습니다. 대승에서 아비담마로, 아비담마에서 초기(근본)불교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니까야경전 위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간화선에서 시작한 수행은 니까야 의 가르침에 따라 ‘4념처’ 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