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1080

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쉬운 불교, 어려운 불교 종교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철학은? 과학은? 얼추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답을 꺼내놓기에는 어려운 대상들입니다. 종교는 학문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으니 일단 젖혀놓고, 학문적 범주인 철학과 과학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 볼까요. 인간과 자연, 곧 주체와 객체가 전개되는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대별하면 철학과 과학입니다. 철학은 정신영역인 형이상학적인 차원, 과학은 물질영역인 형이하학적인 차원으로 구분할 수 있죠. 실험과 관찰을 매개로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 과학이며, 정신적인 분석과 통찰 곧 사유로써 삶을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의 위상은 사실 고대나 현대나 크게 다를 건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 인도의 명상..

욕망의 탄생

욕망의 탄생 한 개인에게 내던져진 삶의 궁극적 목적을 거칠게 뭉뚱그려서 이해하자면, 욕망의 자기화, 실현 아닐까요? 그렇다면 대저 욕망이란 놈은 무엇인지, 욕망하는 나란 놈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망의 주체라고 착각하는 ‘나’ ‘자아’ ‘자기’는 아라한이 되어야 부서지는 실체론적 착각입니다. 수행을 통해서 ‘무아’를 증득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길을 떠나기 전에, 오온의 구성요소 또는 오온의 총체를 ‘나’라고 간주하는 유신견을 먼저 소멸시켜야 합니다. ‘무아’에 비하면 욕망은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욕망은 그 다양한 모습과, 발생과 머묾, 소멸을 직접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탐욕, 간탐, 갈구, 애착, 집착 등의 이름으..

자의식과 언어, 사유

자의식과 언어, 사유 붓다의 가르침인 3법인은 “제행무상, 제행개고, 제법무아”입니다. 열반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보편적 특징이자 성품을 가리키는 것으로, 모든 존재 혹은 작용은 영원하지 않고,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우며, 그러한 상태를 이렇게 저렇게 뜻대로 다룰 수 있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나’라고 할 것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이러한 ‘無我’사상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이 나를 갈음하여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다는 것인지. 붓다께서는 현실적인 ‘나’도 없고,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아. 참나. 진아’마저도 없음을 단호하게 선언하셨지요. 무아를 철저히 깨치는 것이 붓다 가르침의 궁극적 목표라 ..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

일반시스템이론, 인공지능을 낳다 이 책의 주요 키워드는 일반시스템이론, 상호인과율, 그리고 불교의 연기법(緣起法) 이렇게 세 개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사전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 먼저 알아두어야 할 핵심은 시스템이론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탄생시켰다는 점입니다. 이세돌 9단을 이긴 알파고나 IBM의 왓슨, 애플의 시리, 그 밖에 거대 글로벌 IT 회사가 사활을 걸고 만들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모두 이 시스템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일반시스템이론은 모든 시스템이론의 기본 골격 ‘시스템(system)’이란 상호의존하는 각 구성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하나의 집합체를 이룬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며, 주로 컴퓨터 과학과 조직 관리에 응용되는 것으..

붓다의 가르침, 연기법

길을 가득 메운 채 사람들이 뛰어가고 있습니다. 무리의 앞과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기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고개를 돌려보니 한 사내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갛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이죠. “왜 뛰고 있는지 궁금해서...” 나도 그 사내도, 우리 둘 주위에도 많은 사람들이 앞을 바라본 채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대꾸합니다. “그쪽에서 뛰고 있어서 따라 뛰고 있는 겁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 그것들과의 관계맺음, 나를 이루는 육체와 정신, 삶의 궁극적 의미, 세계의 발생과 소멸...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현상을 꿰뚫고 이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치, 원리, 법칙. 그것을 진리라 합니다. 진리는 세 가지..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 3법인 가운데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법을 유위법과 무위법으로 분류하죠. 유위법은 형성된 법(존재, 상태)로, 무위법은 형성되지 않은 법으로 규정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1,700년이라는 장구한 불교역사를 자랑하는 한국불교의 논서와 법문, 설법 어디에서도 유위법과 무위법을 정확히 규정한 곳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법-유위법과 무위법-은 모두 형성된 법입니다. 유위법은 형성작용과 업력, 형성력을 지닌 법이며, 무위법은 업력을 지니지 않은 법입니다. 형성, 연기, 인과, 조건은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동일선상에서 이해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무위법이 열반인 것은 형성되었지만, 더 이상 선법이든 불선법이든 인과를 낳지 않는, 업력이 없는 상태인 까닭에서입니다. 이러한..

3법인에 대한 숙고와 이해

붓다께서 설하신 진리는 연기緣起입니다. 2지연기에서 12지연기까지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예로 12연기를 들 수 있지요. 이는 오온五蘊의 전개 즉 고苦의 발생과 소멸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제행개고 諸行皆苦 제법무아 諸法無我 3법인은 연기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법들의 보편적인 실상, 성품, 속성입니다. 문제는, 제행과 제법의 이해에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속설은, 행을 형성된 유위법 有爲法으로, 무위법無爲法인 열반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탐.진.치가 사라지고 꺼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열반이 형성되지 않은 법일까요? 혹자는 열반은 형성된 법이 아니라, 증득證得된 경지라고 주장하는데, 이치에 닿지 않는 괴변에 지나지 않습니다. 증득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속지 말고 속이지 않고

삼보에 귀의하며, 1. 대승불교와 초기불교에서 규정하는 ‘마음心’에 대해 거칠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心.意.識은 각자 다른 요소이자 역할입니다. 심의식의 동일화 혹은 실체화로 심각한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마음은 오온五蘊에서 감수受와 인지想를 조건으로 형성된 심리로 인식識과 행위行의 토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어려울 게 없어요. 삶은 안의 五蘊이 밖의 五蘊을 대상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고(인식) 심리를 형성해서(마음의 재구성) 의도적인 생각과 언어, 몸짓으로 행위하는(행위) 것이죠. 단순하죠. 마음을 토대로 조건으로 인식하고 행위하는 것, 이게 바로 우리네 삶입니다. 사족이지만, 인식은 과果로서, '보고 듣고'가 아닌 '보이고 들어지고'입니다. 언어와 사유의 습관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