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slowdream 2023. 5. 14. 17:59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붓다께서는 ‘고통, 불만족’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어떤 삶을 꾸려나간다한들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셨죠. 경전에 따르면 ‘고통’은 ‘4고8고’로 정리됩니다.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4가지 고통과, 애별리고 愛別離苦, 원증회고 怨憎會苦, 구불득고 救不得苦, 오취온고 五取蘊苦의 4가지 고통을 모두 합하여 8가지 고통이라 합니다.

 

앞의 4고는 육체적인 고통, 뒤의 4고는 정신적인 불만족을 가리킵니다. 앞의 7가지 고는 8번째 고인 ‘오취온고’에 수렴됩니다. ‘오취온고’는 안팎의 물질과 정신을 ‘내 것’ ‘나’ ‘자아’라고 여기는 탐욕과 무지로 인한 고통, 불만족입니다. 삶은 안팎의 오취온이 상호작용하여 전개되므로 결국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러한 8고는 현상적인 구별이며, 그 속성에 따라서 3고로 나누기도 합니다. 3고는 고고 苦苦, 괴고 壞苦, 행고 行苦입니다. 고고는 육체적 정신적 복합체인 오취온에 수반되는 본질적인 고통, 불만족입니다(8고). 괴고는 형성된 모든 법은 기필코 무너지고 소멸된다는 이치에 따른 고통, 불만족입니다. 물론 괴로움 또한 소멸하고 뒤이어 즐거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러한 즐거움 또한 조건에 따라 형성된 것이기에 필연코 무너지고 맙니다. 행고는 이렇듯 무상한 삶에 저항하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 의지, 의도들 또한 여러 조건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늘 내 뜻대로 상황이 전개되지는 않는다는 데서 오는 고통을 가리킵니다.

 

무릇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 애써 노력해도 의도한 만큼의 결과가 주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행복은 짧고 가볍지만, 불행은 길고 무겁습니다. 행복은 갖은 노력을 기울여도 손에 쥐기 어렵지만, 불행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와 삶을 잠식해 버립니다. 작은 행복 속에 감추어진 큰 불행과 선택의 불확실성은 우리 삶을 압도합니다. 그렇기에 지난 날들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않고, 씁쓸한 회한의 흔적을 남깁니다.

 

또한 행복과 불행은 경전에서도 쌍둥이 자매라 비유하였듯, 동전의 양면과 같고 그림자와 같아서 불행을 결코 배제하고 멀리할 수 없습니다. 욕망의 크기가 더할수록, 고통의 크기도 더해집니다. 10의 크기의 욕망을 성취해서 누리지만, 다음에는 10의 크기의 욕망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한계효용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연기의 이치에 따라 전개되는 삶은 회의적이고 염세적이고 비관적입니다. 불완전하고 불합리하고 불확실하고 부조리하고 무의미합니다. 허무의 느낌 또한  짙게 배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머리에 불 붙은 것처럼 어서 빨리 이 삶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합니다. 돈, 사랑, 권력, 건강, 사회적 지위, 명예...이러한 것들이 삶의 전부이며 삶이 일회적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올인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삶에 몰입하면 할수록 고통과 불만족은 더욱더 우리를 억압할 따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붓다께서는 이러한 고통과 불만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8정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욕계 천상의 존재로서 지극한 복락을 누린다 한들, 인간으로서 부귀와 장수와 명예를 누린다 한들, 선업의 힘이 다하여 다음 생에 지옥, 축생, 아귀라는 악도의 존재로 태어나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될지 범부중생의 어리석음으로는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남도, 바닷가의 무한한 모래알 중에서 손톱에 올려지는 모래 몇 알 정도로 비유하고, 눈 먼 거북이가 천 년에 한번 바다 위로 목을 내미는데 또한 떠다니는 판자에 난 구멍에 눈이 딱 들어맞아 하늘을 바라보는 경우가 천 번에 한 번이라고 비유한 것처럼 참으로 희귀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금생에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게 된 것도 전생에 행한 숱한 공덕의 과보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금생에 깨달음과 해탈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는 발심출가하여 무명과 갈애를 뿌리뽑아 기필코 깨달아 해탈하고 말겠다는 원력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