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에 따른 불교교학의 핵심
불교 교리는 방대하고 심오하면서 또한 체계적입니다. 정보화시대이니만큼 책, 인터넷, 유투브 등 온갖 곳의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하고 풍성한 만큼 오히려 길을 헤매기 십상이기도 합니다. 상좌부 계통의 기본지침서는 ‘온(5온), 처(12처), 계(18계), 근(오근), 제(사성제), 연(12연기)’으로 정리해 놓기도 했지만, 교리의 점진적인 이해 측면에서 질서정연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법수에 따른 체계는 묘하게도 교학의 점진적 순환적 이해와도 어울리겠다는 판단에 올려 봅니다.
12-12연기
3-3법인
4-4성제
5-5온, 5취온
6-6내외입처
7-7각지
8-8정도
9차제정과 10정도를 집어넣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교학의 출발은 다른 무엇보다도 12연기입니다. 12연기를 어떻게 어느 정도 이해하느냐는 2,600여 년에 걸친 불교교학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초기불교, 부파불교, 대승불교, 선불교에 속한 수행자와 학자들이 이해하고 설명하는 12연기는 결코 한 목소리가 아닙니다. 각각의 주장을 섭렵하고 붓다의 원음에 가까운 맥락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만, ‘정견’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12연기에 대한 이해가 완전해야 나머지 교리에 대한 이해와 체화가 정확하게 자리잡아 나갑니다. 수행은 교학의 정확한 이해 위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교학은 수행지도이며 나침반입니다. 8정도에서 처음자리가 정견임을 늘 유념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12연기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초기불교의 수행자나 학자들이 왜 대승과 선불교에 대해서 비판의 날을 거두지 않는지 충분히 공감하게 될 겁니다. 중관학과 반야부 경전에 대해서는 그나마 일부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유식학, 화엄이나 천태, 법화, 열반, 선 등의 철학과 사상, 수행법에 대해서는 선뜻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어찌 보면 힌두교나 노장자의 행보와 닮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입니다. 불교 교학의 난맥상과 형이상학화는 어쩌면 부파불교에서 비롯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붓다의 원음에 가장 가까이 자리할 것이라 믿는 니까야 경전마저도 부분적으로 오염되었을지 모르니 무턱대고 수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눈밝은 수행자와 학자들의 ‘파사현정’이 절실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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