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과 무분별
깨달음을 궁극적 경지로 여기는 선가에서는 ‘분별’을 끔찍하게 혐오합니다. 분별이 참나를 깨닫고 확인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 봅니다. 분별을 떠난 경지인 참나는 언어와 사유로써는 닿을 수 없는, 어쩔수없이 언어와 몸짓이라는 방편을 활용하여 드러내자면 다만 알 수 없는 ‘무엇’이며 ‘그것’일 따름입니다. 손가락을 퉁기거나 세우고, 손뼉을 치고, 주장자를 휘두르면서, ‘그것, 그것!’을 외칩니다. 그러나 분별하지 않음이 또한 분별인 것을 그들은 외면합니다.
주관과 객관, 세상과 나, 번뇌와 깨달음,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그것’에서 모든 법이 일어나고 생멸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법입니다. 법이라면 당연히 무상하고, 고이며, 무아인 성품을 지니고 있기 마련입니다.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그 모든 법의 제 1원인이자 초월적 실체인 ‘그것’은 망상이며 혼란, 착각입니다.
언어와 개념, 인식과 사유는 분별을 그 속성으로 합니다. 주관과 객관이 마주하며 연기합니다. 주관이자 정신적 요소인 감수와 인지, 인식, 의도는 객관인 대상 없이 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 없이, 인식과 사유 없이, 우리는 세상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이해하지 못합니다. 돌과 나무가 붓다일 순 없는 노릇입니다. 붓다께서는 ‘바르게 분별하라’ 하셨지, ‘분별하지 말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선가의 고승들이나 선지식들이 강조한 ‘무분별’이 ‘무(번뇌)분별’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뜻이 변질되고 왜곡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번뇌로써 분별하는 것이 바로 ‘비여리작의 非如理作意’이며, 지혜로써 분별하는 것이 ‘여리작의 如理作意’입니다. ‘상.락.아.정.’의 번뇌로 물든 마음의 인식과 사유가 비여리작의이며, ‘무상.고.무아.부정.’의 지혜로 청정해진 마음의 인식과 사유가 여리작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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