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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을까?

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을까? 불교 이론의 핵심인 진리는 연기법이다. 이는 4성제에서 고성제(유전문)와 고멸성제(환멸문)를 가리킨다. 그리고 고집성제는 고성제의 조건으로 무지와 집착을 밝히며, 고멸도성제는 고멸성제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수행론으로 8정도인 바 이것이 곧 선업이다. 그런 즉 인식론적 차원에서의 이해를 떠나 일상에서의 우리 행위는 8정도인 선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마땅하다. 인간의 행위는 세 가지로 나뉜다. 사유, 언어, 몸짓. 언어와 몸짓은 의도적 사유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므로 결국 업은 의도라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업에 대한 우리의 이해이다. 선업은 늘 좋은 과보를 낳아야 하고, 불선업은 늘 나쁜 과보를 낳아야만 하는지?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해도 대체로 결과가 기대에 미..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삶은 신비합니다. 이는 곧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고백입니다. 인류 지성사는 이러한 신비의 영역을 벗겨내고, 무지를 깨뜨리기 위한 장엄한 서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천체물리학, 양자역학, 생명과학, 뇌과학, 인공지능, 심리학 등의 학문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고, 또 어제의 업적이 무시될 만큼 환상적인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궁금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정신과 물질의 처음, 시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시작, 처음을 알면 그 과정과 끝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사유와 관찰은 제 1원인에 대한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거나, ‘부동의 원동자’라는..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붓다께서는 일체(세상)가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일체란 12입처(入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입처는 익히 알다시피 인식주체인 6근과 인식대상인 6경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6외입처와 6내입처를 가리켜 12입처라 합니다. 입처는 6근과 6경에 어떤 자리가 있음을 가리킵니다. 곧 마음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어떤 마음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지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6외입처에 하나님이나 브라만 등의 본질이 자리하면 객관적 실체론, 6내입처에 아트만, 자아, 참나가 자리하면 주관적 유아론의 덫에 걸립니다. 불교는 당연하게도 이 모두를 여윈 연기론입니다. 아공법공(我空法空)입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과 풍경의 속성에 좋은 맛과 멋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