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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禪

들뢰즈와 禪  질 들뢰즈는 ‘동일성’을 혐오하는 ‘차이’의 철학자다. 그의 주저인 에서 ‘차이’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거칠게나마 이해해 본다. 그는 존재와 존재가 현실로 드러나기까지의 상태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이념(미분화)-강도(개체화)-반복(분화). 프로이트의 무의식-전의식-표층의식, 라캉의 실재계-상상계-상징계의 구도와 비교해 본다면 이해의 접근이 한결 가뿐해질 듯도 싶다. ‘이념’은 곧 ‘차이’로 존재적 개념이 아니고 존재의 속성인 ‘이치, 원리’이다. ‘강도’는 바깥인 타자와의 만남으로 인해 각인되는 내적 크기, 깊이, 충격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현실의 층에 모습을 드러내는 ‘반복’은 존재의 생성이다. 모든 존재는 ‘차이’를 그 태생적 한계로 지닌다. 말하자면, 동일성을 근거로 하는 똑같은 또..

달마, 조주, 지눌, 숭산

달마, 조주, 지눌, 숭산  양무제가 달마에게 물었다.“내가 불사를 엄청 지었는데 공덕이 어찌합니까?”“없다 無!”또 양무제가 물었다.“당신은 누구요?”“몰라 不識!” 조주 선사에게 제자가 물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데,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없다 無!"  보조국사 지눌의 말씀이다.但知不會 是卽見性다만 몰라를 안다면 곧바로 성품을 깨닫는다 30여년간 해외포교에 나섰던 숭산스님 (1927-2004)은“다만 모를 뿐, 다만 할 뿐!”을 일갈했다. 無와 不識, 不會는 저렇게 이해할 것이 아니다. 내 아무리 선불교에 비판적이긴 하여도, 이러한 해석 앞에서는 비판에 앞서서 무참해질 수밖에 없다. 선불교의 기치는 단연코 ‘不二, 곧 無分別’이다. 그런 까닭에 아직도 한국의 숱한 선승들과 법사들이 ..

보편성에 대한 반론

보편성에 대한 반론  살아가면서 누구나 예외없이 늘 자기 자리를 확인하려 애씁니다. 생명의 맹목적 추구인 ‘방향’에 대한 갈구라고 할 수 있겠죠. 안팎에 대한. ‘생명’이 무엇이냐는 물음은 젖혀놓고 가야 합니다. 어쩔 수 없어요. 사유는 초월적 혹은 초월론적 경계는 허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 일반은 ‘보편, 일반’이라는 추상화된 개념으로 정립합니다. ‘어떻게, 어디로’의 최종적 정립이죠. 역사 이래로 철학이라는 고상한 옷을 입은 모든 사유가 이 경계에 머물러 있고, 좀더 세련되게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이라고 가지쳐 왔습니다. 며칠 전 철학모임에서 ‘不定과 否定’에 대한 깊은 이해의 자리가 주어졌어요. 정말 즐거웠는데, 같이하지 못한 친구들의 자리가 좀 아쉽긴 했습니다. 어쨌든, 의 저자인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