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slowdream 2025. 6. 15. 22:11

일체(一切)란 무엇인가

 

 

붓다께서는 일체(세상)가 무엇인지 묻는 제자에게 일체란 12입처(入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입처는 익히 알다시피 인식주체인 6근과 인식대상인 6경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6외입처와 6내입처를 가리켜 12입처라 합니다. 입처는 6근과 6경에 어떤 자리가 있음을 가리킵니다. 곧 마음이 들어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어떤 마음이 자리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지와 태도가 달라집니다. 6외입처에 하나님이나 브라만 등의 본질이 자리하면 객관적 실체론, 6내입처에 아트만, 자아, 참나가 자리하면 주관적 유아론의 덫에 걸립니다. 불교는 당연하게도 이 모두를 여윈 연기론입니다. 아공법공(我空法空)입니다.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음식과 풍경의 속성에 좋은 맛과 멋짐이 있는 것일까요. 세상 그 모든 사람이 다들 맛있다 해야 하고, 아름답다 해야 합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지요. 그렇다면 인식주체 고유의 속성일까요. 좀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풍경을 대하면 이전의 감동은 사라집니다.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만사가 귀찮고, 냄새 맡기도 눈길을 던지기도 성가십니다. 대상에 그 불변의 속성이 자리하면 객관주의입니다. 주체에 그 불변의 속성이 자리하면 주관주의입니다. 연기론은 이 둘을 여의고, 사태의 맥락에 따라서 그 의미가 새로이 생성됨을 말해 줍니다.

 

원효스님께서 해설하여 더욱 유명해진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一心二門)은 한마음이 두 가지 문(진여문과 생멸문)으로 펼쳐진다는 뜻인데, 여기에서의 마음은 근본불교에서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불변의 실체로서의 마음입니다. 유식학에서의 8아뢰야식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근본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 가운데 손꼽을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음’에 대한 규정입니다. 이런 까닭에 대승불교가 붓다의 근본 가르침에서 멀리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일체와 12입처가 가리키는 것은 ‘마음’입니다. 근본불교에서의 마음은 ‘느낌과 인지(受想)’로 언어, 기억, 표상, 추론, 판단 등의 작용을 하는 정신기능입니다. 이 또한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대상과의 만남에 따라서 요동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적된 경험과 편견과 선입견으로 뭉친 ‘내 마음’을 단단히 박아놓고서, 인간과 삶에 대한 잣대로 삼기 십상입니다. 실체적 마음으로 삶을 열어갈 것이냐, 연기적 마음으로 삶을 펼쳐나갈 것이냐가 관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