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如如한 날들의 閑談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slowdream 2025. 6. 22. 16:47

그 모든 것의 시작, 처음

 

 

삶은 신비합니다. 이는 곧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고백입니다. 인류 지성사는 이러한 신비의 영역을 벗겨내고, 무지를 깨뜨리기 위한 장엄한 서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천체물리학, 양자역학, 생명과학, 뇌과학, 인공지능, 심리학 등의 학문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고, 또 어제의 업적이 무시될 만큼 환상적인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를 궁금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정신과 물질의 처음, 시작은 어떤 것이었을까? 시간과 공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시작, 처음을 알면 그 과정과 끝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사유와 관찰은 제 1원인에 대한 무한소급의 오류에 빠지거나, ‘부동의 원동자’라는 초월적 혹은 신적 존재, 본질, 실체를 설정하게 되는 덫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현대과학이 이제껏 숱한 업적을 남겼지만 처음과 몇몇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투르고 당혹한 표정을 거두지 못합니다.

 

1. 시간과 공간의 처음이 어땠는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모릅니다.

2. 빅뱅 가설을 인정한다 쳐도, 빅뱅 이전의 상태는? 모릅니다.

3. 정신과 물질의 처음은? 모릅니다.

4. 생명의 처음은? 모릅니다.

5. 우주를 형성하는 물질의 95%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라 하는데, 이는 곧 인간 지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6. 육체적 죽음과 동시에 정신도 소멸하는가? 모릅니다.

7. 시공간 이동, 평행우주, 다중우주는 가능한가? 모릅니다.

8. 물질의 기본단위인 입자는 관측 전에는 왜 중첩상태, 파동함수의 상태에 있는가? 모릅니다. 양자역학의 선구자인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으며, 다만 인정할 따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9. 양자얽힘은 어떻게 가능한가? 모릅니다.

10. 임사체험, 유체이탈은 실재하는 것인가? 모릅니다.

 

이러한 의문은 지금뿐 아니라, 고대에도 여전했습니다. 2600년 전, 붓다께 한 제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스승님,

1. 공간은 유한합니까, 무한합니까? 시간은 영원합니까, 영원하지 않습니까?

2. 정신과 물질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3, 스승님께서는 열반 후에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까?”

 

‘있다,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는 논리적 사고의 유형 4가지를 1번과 3번에 적용하면 12가지이고, 이에 2번의 2가지를 합해서 이를 붓다께서 대답하지 않은 ‘14무기 無記’라 합니다. <화살비유의 경 箭喩經>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이러한 질문에 침묵하신 까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견해를 지닌 사람에게도 태어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슬픔, 비탄, 고통, 고뇌, 좌절이 있으니, 이리하여 이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무슨 까닭에 나는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고, 법에 합당하지 않고, 범행의 근본이 되는 것이 아니며, 지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면 나는 어떤 법을 말하는가? 이것이 고 苦이며, 고의 일어남이며, 고의 소멸이며,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화살비유’는 독화살을 맞은 사람은 독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임에도, 화살과 독의 재질과 상태는 어떤 것인지, 화살을 쏜 사람은 어떤 계급인지, 나이는, 어디 출신인지 등등 아무 의미 없는 망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가르침입니다. ‘처음, 시작’을 갈구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일 수 있겠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요즘 말로 하면 곧 검증할 수 없고 의미 없는 ‘실체적 사유’에 대한 비판입니다. 바깥 대상에 그 속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규정하면 이는 ‘절대적 객관주의’이며, 인식 주체에 그 속성이 부여되어 있다고 규정하면 ‘절대적 주관주의’입니다. 실체를 부정하는 ‘연기적 사유’는 이러한 주체와 객체가 서로 만나면서 그 속성이 부여된다고 규정합니다. 만남 곧 연기 이전에는 그 어떤 정신과 물체도 보편적 속성(무상, 고, 무아)만 지닐 뿐, 개별적 속성은 갖지 않습니다. 또한 서로가 서로의 발생 조건이기에 제1원인은 없습니다.

 

빅뱅을 예로 들어봅니다. 빅뱅은 인식 주체 모두가 공유하는 사건입니다. 그로써 균등하고 동질적인 우리에게 시공간이 펼쳐집니다. 이는 실체론입니다. 연기론에 따르자면, 경험적 개체인 개별자가 태어나는 순간이 빅뱅이며 시공간의 발생입니다. 좀더 좁혀서 얘기하자면, 경험적 주체가 바깥 대상과 만나는 순간순간 빅뱅이, 시공간이 새로이 발생하고 소멸합니다. 한 삶을 단위로 이해하는 것이 좀더 가볍기에, 내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 빅뱅의 발생과 소멸이며, 고유한 시공간의 발생과 소멸입니다.

 

삶이란, 즉 정신과 물체가 상호작용하면서, 연기하면서 빚어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 의미가 괴로움, 불만족이기에 그 과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붓다께서 4성제를 설하신 까닭입니다. 4성제와 3법인, 12연기를 깊이 숙고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붓다의 제자가 아니며 외도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