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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깨달음의 하나

- 돈오라는 점에서 내가 어디 부처와 다르겠느냐만, 다생의 습기가 깊어서...바람은 멎었느나 물결은 아직 일렁이고, 진리를 알았지만, 상념과 정념이 여전히 침노한다頓悟踰同佛, 多生習氣深, 風停波尙湧, 理現念猶侵  원효 스님에 감히 견줄 수 있는 경허 선사의 말씀인데요, 후대의 어느 학자가 원문을 이해가 얕은 수준에서 곡해한 사례입니다. 작고하신 한형조 교수(1958-2024)의 저서 (2011)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 책은 무슨무슨 학술상도 받았습니다. 한 교수의 학문적 업적이나 도덕적 품성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사실 관심도 없습니다.  철학, 사유, 형이상학을 뛰어넘은 붓다의 가르침은 심오하기 그지 없습니다. 다만, 속지 않고, 속이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김수영과 이중섭, 혹은 나의 하루를 잠식하는 그 무엇

김수영과 이중섭, 혹은 나의 하루를 잠식하는 그 무엇 /  너는 어떤 일에든 정성을 기울인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거든. 먹거리든 옷가지든 짜증날 정도로 아주 꼼꼼하게 살펴본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런 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아. 손과 눈에 닿는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야. 아주 드물긴 하지만, 깊고 섬세한 그늘을 들춰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잖아. 그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어설픈 것과 진정한 것, 소리를 내는 것과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의 주름 사이를 거닐며 그, 오묘한 몸짓으로 낯선 아름다움을 집어내고는 하지. 너의 하루는 무미한 시간의 덧칠에 지나지 않는 연속일 뿐이야.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맸기라도 한 양 초점은 비틀거리지도, 멀리 뻗지도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