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과 이중섭, 혹은 나의 하루를 잠식하는 그 무엇 /
너는 어떤 일에든 정성을 기울인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거든. 먹거리든 옷가지든 짜증날 정도로 아주 꼼꼼하게 살펴본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런 것이 아님을 모르지 않아. 손과 눈에 닿는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한 것이야. 아주 드물긴 하지만, 깊고 섬세한 그늘을 들춰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잖아. 그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어설픈 것과 진정한 것, 소리를 내는 것과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등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의 주름 사이를 거닐며 그, 오묘한 몸짓으로 낯선 아름다움을 집어내고는 하지.
너의 하루는 무미한 시간의 덧칠에 지나지 않는 연속일 뿐이야.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맸기라도 한 양 초점은 비틀거리지도, 멀리 뻗지도 않거든. 네 얼굴에서는 혼란이나 모순의 상흔을 읽을 수가 없어. 이데올로기적 실천의 배경이 자명성自明性이듯, 너의 사고나 실천의 논리 또한 빛깔이 바래지지 않아. 단 하나 바람이 있다면, 가시권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을 수 있도록 삶의 속도를 조율할 수 있는 힘이겠지. 그럼에도 너를 불안케 하는 것이 있다면, 끝내 저버릴 수 없는 안락한 시간과 공간의 균열, 부재일 터이고 말이야. 그런 까닭에 너는 자주 눈알을 씻고, 비웃음을 내흘리며, 어딜 가든 동일한 공간과 시간을 재현해 내면서, 수시로 자신의 현전을 확인하더라구. 너의 속물성은 참으로 속물적이어서 윤리적 판단의 개입을 원천봉쇄하는데, 그렇게, 또한 아름답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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