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증일아함경

48 고행은 무익한 짓이다

slowdream 2009. 7. 9. 06:57

48 고행은 무익한 짓이다

 

 


부처님이 베살리 교외 숲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부처님은 과거 정각을 이루기 전 고행을 하던 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정각을 이루기전 대외산(大畏山)에 머물고 있었다. 낮이면 햇볕으로 대지가 달구어져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바깥에 나왔다가 밤이 되면 숲으로 들어갔다. 또 몹시 추운 밤에는 바람과 눈을 맞으며 바깥에 나갔다가 낮에는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무덤 사이로 가서 죽은 사람의 옷을 주워 몸을 가렸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나무를 꺾어 때리거나 귓구멍이나 콧구멍을 찌르기도 했다. 나를 향해 침을 뱉거나 흙을 뿌리거나 오줌을 깔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모욕을 받고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나는 배가 고프면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 똥이나 소똥을 집어먹고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연명이 어려움을 알고 다음부터는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 먹었다. 몸은 쇠약해져 뼈는 서로  맞붙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겨 가죽과 살이 절로 떨어졌다. 눈은 깊은 우물 속에 별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내 몸은 낡은 수레가 부서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엉덩이는 낙타 다리 드러났다. 손으로 배를 만지면 곧 등뼈가 잡혔고, 등뼈를 만지면 뱃가죽이 손에 닿았다. 용변을 보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면 곧 쓰러졌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죽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제대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몸을 괴롭히는 수행을 했다. 가시나 널판자 위 쇠못위에 눕기도 하고, 두 다리를 위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두기도 했다. 다리를 꼬아 걸터앉고 수염과 머리를 길러 깎지 않기도 했다. 한겨울에 얼음 물속에 들어가 앉기도 했다. 때로는 옷을 벗고 때로는 헤어진 옷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행은 끝내 아무런 이익도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근본이 되지 못한다. 반드시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출가하기 전 나무 밑에 앉아 음욕과 욕심이 없이 선정에 들었을 때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던 것을 기억해내고 그 길이 옳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얼마만큼은 기력이 있어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약간의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러자 같이 수행하던 다섯 사람은 나를 가리켜 ‘참법을 잃고 삿된 길로 들어선 타락한 수행자’라며 떠나갔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길상이라는 범지가 부드러운 풀을 베고 있었다. 나는 그 풀을 얻어 나무 밑에 깔고 앉아 알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운 성현의 계율과, 지혜와, 해탈과, 삼매를 얻기 위해 명상에 잠겼다. 그렇게 수행을 하는 동안 탐욕이 사라지고 온갖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감각기관은 편안해졌다. 선정은 깊어졌고 마음은 깨끗해져서 모든 번뇌와 두려움이 사라졌다. 나는 드디어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얻고, 위없는 진리를 깨달아 참된 도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열심히 수행하여 참다운 도를 이루도록 하라.”

부처님이 이렇게 말하자 제자들은 기뻐하며 그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였다.

                                               

                                                  -증일아함 제23권 증상품(增上品) 제8경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가보면 이 경전에서 묘사한 부처님의 고행상(苦行像)이 있다. 그것을 보면 부처님이 누누이 ‘고행의 무익함’에 대해 말씀했음에도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저런 진지함과 치열함이 없었으면 과연 정각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묵언(黙言)과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훌륭한 수행이라고 여기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행이 곧 치열함은 아니다. 이것을 모르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