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엄이 처음에 백장 선사를 섬겼는데, 그가 총명하고 영리했다.
수년 동안 직접 시봉하였으나 그 뜻을 얻지 못함이려니,
백장이 위산에게 보내어 수행케 하니, 위산이 이르되
“듣자하니 네가 백장에게 있을 때 하나를 물으면 열 가지를 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 가지를 답했다 하나, 이것은 너의 의식으로 하는 바라.
다만 생사의 근본이 되므로
부모가 널 낳아주기 이전의 일을 한번 넌지시 간(看)하라”
하니, 향엄이 위산의 질문을 받고는 문득 어리벙벙하였다.
다시 대중처소에 돌아가 혼자 생각하되
‘날마다 문자를 연구해 추심하였지만 한 글귀도 가히 대적할 수 없었다.
끝내 아무런 소득이 없음이라’
하고는 이에 스스로 탄식하여 이르되
“그림의 떡으로는 배부를 수 없음이라”
하고, 재차 위산에게 설파를 구걸하니, 위산이 이르시길
“내가 만약 너를 위해 설파한다면
네가 깨닫고 난 뒤에 반드시 나를 꾸짖을 것이다”
하시고 끝내 설파하지 않았다.
향엄이 아무리 노력해도 얻지 못하고는
드디어 문자를 잡아 불로써 소각하며 이르되
“쉬고 쉬리라! 이 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하면, 다시 한낱
죽, 밥이나 만드는 중이 되어서 신심의 수고로움이나 면하리라”
하고 곧바로 남양 충국사의 처소에 머물다가 돌아와 한 암자에 이르렀다.
하루는 쑥, 풀 따위를 베다가 기왓쪽을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혀 소리가 나는 찰나 자기도 모르는 결에
‘부모가 낳아주기 이전의 소식[父母未生前本來面目]’을 깨달으니,
마치 어둠속에서 등을 만난 것 같고 어린애가 부모를 찾은 것 같았다.
드디어 목욕하고 향을 사르며,
멀리 계시는 위산을 향하여 감탄하면서 이르되
“화상의 대비는 부모의 은혜보다도 귀중함이라,
당시에 만약 나에게 설파함이런들 어찌 오늘이 있었으리요?”
<경덕전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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