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불교와 자연과학

[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 ②주류과학과 신과학

slowdream 2008. 4. 28. 15:27
 

[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 ②주류과학과 신과학


과학 발전사는 신해행증의 다른 표현

신과학은 과학-종교 절충한 퓨전과학


현대는 과학문명의 시대라고 하지만, 기실 무엇이 과학적인지 명확하게 답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과학을 인간이 이성적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본다면, 과학은 다름 아닌 나와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가설이라 할 것이다. 즉 과학이란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3승의 방편론이자, 보이지 않는 실상을 알기 위한 일종의 사다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과학의 발전상에는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타나 있고, 동시에 변화하고 있는 생각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을 방편이자 가설이라고 정리해보면, 결국 이고득락(離苦得樂)하려는 생각의 흐름인 것이다.


우리가 과학은 서양에서 전래되었다는 편견을 벗어던지면, 동양과학과 서양과학으로 대별되기보다는 고대문명의 사유방식과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현대과학으로 구별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서양과학이란 17세기의 아이작 뉴턴으로부터 시작하였으므로, 이를 기점으로 해서 동서양간의 인간과 우주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대문명이라 해서 결코 현대문명에 상대적으로 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인류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전제가 수긍이 안 되면, 어떻게 2500년 전 인간붓다의 말씀이 종교로 발전할 수 있으며, 수천 년간 면면히 동양정신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과학을 논할 때에는 보이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는 실상계에 대한 믿음(信)과 이해(解)를 구별해서 생각하고, 연후에 그 둘을 통합적으로 연결해보는 행(行)과 증(證)의 단계가 필요할 것이다. 즉 사상(四相)을 분석적 및 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과학이란 주류과학(main stream science)을 말하며, 여기에는 아이작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이후로는 양자역학 개발자들이 거론된다.


뉴턴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변하지 않는 시공간에서의 사물의 운동이해 방식을 밝혔고, 이는 현상계의 기존 믿음을 파헤치고 이치를 밝혔다는 점에서 신(信)과 해(解)에 해당될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인슈타인은 현상계의 빛에 대한 관점과 거시적인 우주의 시공간이 변한다는 이론을 밝혔다. 그리고 양자론자들의 결론은 전자나 원자 같은 미시적인 세계에서는 우리의 상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과 양자론 옹호자들의 양자역학은 현상계에 속한 거대세계와 미시세계를 밝힌 확대 해석된 신(信)과 행(行)이라 할 것이다.


기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 보면 아주 작은 것이나 아주 큰 것은 동일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소립자가 움직이는 소리나 아주 큰 천체가 굴러가는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현상계의 두 측면에 대한 연구결과이지, 현상계의 사물이 왜 그렇게 조직되고 스스로 운동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는 포함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몸을 이루는 분자와 원자의 세계에 관한 이론이지, 몸과 더불어 야누스의 두 얼굴을 하고 있는 정신의 측면은 비주류과학인 신과학이란 분야에서 다루고 있다.


즉 정신의 차원과 물질의 차원이 연계되어 있고 상호 연기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과학이란 현상계에 속한 존재의 구조에 대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라 할 것이며, 이는 인간의 구조가 몸과 감정과 정신이라는 다중구조로 되어 있다는 측면을 밝히려는 시도이다. 이런 측면에서 신과학은 과학과 종교의 혼융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절충적인 퓨전(fusion) 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현대과학의 발전사를 보면 불가의 공부법인 신해행증(信解行證)이란 명제가 떠오른다. 불가의 공부법이란 다름 아닌 좁은 나의 생각을 넓혀가는 과정이자 방법론이라고 보면, 앞서 말한 과학의 발전사는 신해행증의 다른 표현에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상식적인 믿음을 살펴보고(信), 숨은 이치를 밝혀서(解),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실행해 보고(行), 마지막으로 진정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證)이야말로, 과학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불교와 과학은 태생적으로 같은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