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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③복잡계와 불교사상

slowdream 2008. 4. 30. 17:10
 

[연제홍 박사의 新교상판석]③복잡계와 불교사상


복잡계연구 학계 전반으로 급속 확장

易-無我의 열린 시스템 체계와 유사



근자에 들어와 복잡계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으며, 또한 각 학문분야에서도 복잡계란 말을 붙인 신조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욱이 21세기에 들어 학제 간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남으로서, 가히 복잡계란 용어는 신지식인의 대명사처럼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와 철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히 종교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도 복잡계란 용어의 사용이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과학계에서는 일대 혁명이 일어나, 그동안 데카르트와 뉴턴에 의해서 확립된 기계론과 분해 위주로 치닫던 환원론 등의 전통적인 단순성과학(science of simplicity)에서 전일론(全一論)적인 복잡성과학(science of complexity)으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복잡계과학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산타페 연구소(Santa Fe Institute)의 학제간 연구에 자극을 받아 전 학계로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지만, 이러한 학제간의 연구 확산에도 불구하고 복잡계과학과 불교를 포함한 동양사상의 연계성에 대해서 아직 이렇다 할 본격적인 상호접근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과학의 환원론적 관점이 아닌 전일주의적인 복잡계 관점에서, 전체를 보면서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아내려고 시도하는 점은, 불교 및 동양적 사유체계와 매우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있다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동양사상에서는 자연이 아무리 무질서하게 보여도, 그 안에는 음(陰)과 양(陽)이 교차되어 있고, 모든 사물들은 서로 상생상극으로 연결 고리를 이루고 있으며, 생명의 성장 과정에는 질서가 있다는 것과, 인간이란 자연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을 전체적인 시각으로 관찰하면서 시작된 동양철학은 자기조직화 메커니즘을 담고 있는 음양론(陰陽論)을 이용하여,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象)으로 모델링한 주역(周易)을 성립시키고, 생물들의 상생상극 순환 고리를 하나로 묶은 오행론(五行論)이 형성되었으며, 인체를 하나의 시스템과 네트워크로 해석한 한의학이 등장했다 할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이를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 사상이라 부르며, 이러한 동양의 역(易)사상으로 대표되는 천지인 삼재사상에는 복잡계의 특성인 카오스, 프랙탈, 비평형, 시스템, 네트워크, 창발현상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오늘날의 복잡계과학이 자연과학에서 출발하여 인문, 사회과학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듯이, 동양에서도 자연과학의 한부분이라 할 수 있는 천문(天文)과 지리(地理)에서 출발한 역학(易學)이 사회과학이라 할 수 있는 유교 및 도교에 크나 큰 영향을 미쳐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회자되고 있는 복잡계과학은 단지 과학인에게만 적용되는 학문적 관심분야가 아닌, 세계를 기존의 통념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기존의 사물에 대한 단순분석적인 사고방식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사물을 유기적이고 순환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더불어 복잡계이론 중에서 관계를 중시하는 네트워크이론의 출발점은 만물이 고립된 실체가(closed system) 아닌 상호연기의 관계에 있는 열린 실체(open system)라고 보는 관점이다. 이는 붓다의 교설에서 극명히 그 개념이 드러난다고 보여진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라는 아상(我相) 즉 “내가 고립된 실체”라는 망상을 파해함이 수행의 근본이듯이, 복잡계의 사상도 결국 “나”라는 “고립된 닫힌 시스템”이 아닌 “무아(無我)의 열린 시스템”으로의 인식의 확장을 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편 인간은 경제활동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무아(無我) 즉 열린 시스템적 사고를 바탕으로 경제학적 측면을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하여 복잡계가 시사하고 있는 바처럼 불교사상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여, 기존의 일부 초월적 종교 관념과 현실적 경제관념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다음 호에서는 동양의 복잡계이론인 역학(易學)과 불가(佛家)사상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연제홍 영국 뉴캐슬대학 화공학박사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