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식은 4가지 번뇌와 항상 함께 한다.
그것은 아치(我癡),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이다.
이밖에 접촉 등 5가지의 보편적 마음현상과 8가지의 거친 번뇌,
특별한 마음현상 가운데 지혜 등은 제7식과 상응한다.
(四煩惱常俱 謂我癡我見 幷我慢我愛 及餘觸等俱)
이것은 제6송이다. 여기서는 말라식과 상응하는 번뇌와 마음현상을 설명한다. 우리가 자아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은 유식불교에서는 바로 말라식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아치(我癡), 아만(我慢), 아견(我見), 아애(我愛)의 네 가지 번뇌를 파생시킨다.
『성유식론』에 의하면, ‘아치’란 무명(無明)이며, 자아의 상에 어리석고, 자아 없음의 이치에 미혹되어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무명은 ‘밝지 않음’으로 자각, 깨달음의 결여를 말한다. 이렇게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탐욕(貪), 어리석음(癡), 교만9慢), 의심(疑) 등과 같은 일체의 번뇌들이다. 두 번째는 근본적으로 항상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탐욕이나 의심을 일으킬 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탐욕의 대상을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자아는 자기의 상을 만들고 그것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는 은밀한 노력이 있다는 말이다.
‘아견’이란 아집이다. 육체와 정신을 자기라고 집착함을 말한다. 모든 것에 자아가 없어, 인연법임에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견해를 만들어낸다. ‘아만’이란 타인에게 교만하고 오만하여 타인을 경시하고 스스로 지고하다고 마음을 일으킨다. ‘아애’는 자기에 대한 애착이다. 나르시스즘에 해당되는데, 나라고 집착하는 바에 탐착을 일으킨다. 이렇게 제7식은 항상적으로 자아에 집착하므로 이들 네 가지 번뇌(四煩惱)가 늘 함께 한다.
이들 4번뇌는 근본적인 번뇌이다. 이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세친은 무명, 곧 아치가 아견·아만·아애를 순차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본다.
반면에 안혜는 아치가 아견을 만들면, 아견이 다시 아만과 아애를 병렬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본다. 하지만 아치가 근본적인 번뇌의 뿌리라고 하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이런 점에서 간화선에서 ‘무엇이 나인가’라는 질문은 매우 효과적인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을 통해서 자아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제7식과 함께 하는 것은 접촉, 작의, 느낌, 생각, 욕구라는 다섯 가지의 보편적 마음현상(遍行心所)이다. 이들 마음현상을 보편적이다고 한 이유는 이것들은 일차적으로 제8식의 종자와 상응하지만, 늘 제7식과도 함께 하고, 또한 제6식과도 상응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8식에 근거하여 발생하며, 제7식에 의해서 경험된다. 이를테면 느낌은 그 자체로 선악의 문제가 아니지만, 그것을 판단하고 자아의 소유로서 집착함으로써 고통으로 경험하는 것은 바로 제7식에 의한 영향이다.
그밖에 제7식과 관련된 마음현상은 근본번뇌에 뒤따르는 여덟 가지의 번뇌(八大隨煩惱)와 의욕, 뛰어난 이해, 알아차림, 선정, 지혜 등의 특별한 마음현상 가운데 지혜(慧)가 여기에 속한다. 여덟 가지의 번뇌란 삼보에 대한 불신, 정진을 소홀히 하는 해태, 대상에 대한 집중력의 결여인 방일,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여 통찰을 방해하는 혼침, 마음의 평정을 방해하는 흔들림, 알아차림을 놓치는 실념, 바른 이해가 없는 불정지(不正知), 삼매가 없는 산란 등이다. 또 특별한 마음현상은 마음성장을 돕는 5가지로, 이 가운데 7식과 상응하는 ‘지혜’는 관찰의 대상(所觀境)에 대한 분별(簡別)과 그것에 대한 분명한 결정(決擇)의 능력이다. 하지만 이때의 지혜는 출세간의 조건 없는 지혜는 아니다.
인경 스님 동방대학원대 명상치료학 교수
출처 법보신문 967호 [2008년 10월 01일 1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