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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초상화. |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이 죽었다”는 말로 잘 알려진 사상가이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 근처의 작은 마을 뢰켄에서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으나 후일 서양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하며 서양의 사유의 역사 전체를 전복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철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그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독일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
그는 스승 리츨의 소개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5세에 바젤대학의 고전어와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 젊은 나이에 대학에서 쓴 논문을 통해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유럽의 지성사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전문헌학적 연구보다는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안티크리스트』 등의 저서가 보여주고 있듯이 주로 서양의 형이상학이나 정신사, 시대 및 문명비판, 근대성비판, 그리스도교 비판 등을 다루며 철학적 작업을 수행했다.
이러한 그의 철학적 작업은 이후 삶의 철학이나 실존철학, 비판이론, 해석학, 포스트모더니즘/해체주의 등 현대 철학의 다양한 흐름이 탄생하는데 기여했고, 또한 이사도라 던컨, 라빈, 뷔그만, 커닝엄 등의 현대무용, 슈트라우스, 말러, 베베른, 쇤베르크 등의 현대음악, 유겐트스틸, 다다이즘, 큐비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플럭서스 운동의 현대미술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 정치, 정신분석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현대가 성립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제공했다.
니체는 서양의 형이상학, 도덕, 종교 문제 등을 많이 다루었는데, 특히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비판은 근대성의 문제와 연관된 중요한 테제였다. 종교, 이성, 도덕, 근대성과 같은 문제들은 서로 착종된 문제였고, 그는 이러한 문제를 다루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정신이나 자기극복의 실현가능성을 추구했다.
그의 사상에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불교적인 세계가 깊이 삼투되어 있다. 특히 그는 유럽이 진보했을지라도 자기구원의 가능성을 가르치는 불교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신을 배제하며 허무의 한 가운데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완성을 찾아나가는 부처의 사유는 그에게 유럽이 따라가야 할 문화적 사유모델이었다. 그에게 불교적 사유는 허무주의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지만, 동시에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미래철학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사유의 저수지이기도 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칼 샤르슈미트, 칼 프리드리히 쾨펜, 오토 뵈틀링크, 바커나겔, 올덴베르크, 도이센 등을 통해 불교에 접근해 들어갔다. 특히 도이센은 그의 절친한 친구로서 『베단타 체계』(1883), 『베단타 경전들』 (1887) 등의 역저를 출판한 인도철학의 최고전문가였으며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도이센에 의해 번역된 『브리하드아란야까 우파니샤드』를 인용하는 등 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니체의 인도에 대한 관심은 우파니샤드뿐만 아니라 불교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평생 지속되었다. 이는 그의 주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의 제1장과 제3장에서 주인공 차라투스트라가 활동하던 주무대인 ‘얼룩소(die bunte Kuh)’라는 도시는 부처가 방문하여 활동한 도시 ‘칼마사달미야(Kalmasadalmya, 팔리어로는 캄마수다맘 Kammasuddamam)’를 독일어식으로 의미 번역하여 사용한 것이었다. 불교를 ‘선악의 저편’에 서 있는 종교로 이해하며,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주석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는 자신의 저서명을 『선악의 저편』으로 삼은 것도 니체가 불교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을 보여준다.
신학 공부했으나 기독교 비판
니체의 불교에 대한 평가는 서양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시대적 진단과 능동적 허무주의의 가능성으로서 불교 자체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 그는 먼저 불교를 서양의 자기 정체성의 이해라는 시대적 역사적 지평 위에서 언급한다.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유럽사회에서는 탈종교화와 반교권주의의 움직임이 일어나는데, 이는 카톨릭과 불교 등 서양과 동양의 두 종교를 비교하게 만들었고 불교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은 신의 죽음, 소멸, 무의 공포 등을 불교에 투사했고, 쇼펜하우어는 ‘불교적 염세주의’라는 용어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묘사했는데, 니체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불교를 허무주의 종교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는 불교가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나 몸에 대해 적대적이며 금욕적이고 근본적으로는 허무주의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수동적 허무주의’의 ‘가장 유명한 형식’이 ‘불교’라고 말하면서 이를 문화적 병리상태로서의 데카당스와 연관시킨다. 그는 유럽의 문화적 피로증세를 수동적 허무주의로 파악하면서 이를 현실도피 혹은 현실부정의 운동으로서 유럽적 불교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니체의 불교에 대한 언급은 반드시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는 달리 오히려 불교에 대해서 어느 면에서는 호의적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래적 사유의 가능성을 불교적 사유에서 탐색하기도 한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그리스도교보다 백배나 더 실제적이고” “객관적이고 냉정한 문제제기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는 호의를 표한다. 그에 따르면 불교는 신 개념을 폐기한 진실한 무신론을 대변하며, 도덕의 자기기만적 성격을 간파하고 선악의 저편에 서 있으며, 삶의 현상에 충실하면서도 삶의 고통을 벗어나는 정신섭생의 방법을 알려주는 실증적이면서도 진실로 객관적인 종교인 것이다. 불교가 자아(atman)나 브라만의 형이상학적 실체를 부정하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현상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기에 능동적 허무주의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를 허무주의 종교로 인식
니체의 또 하나의 불교이해는 위생학적인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교가 원한감정에서 탄생을 했다면, 불교는 원한감정이나 복수에 대한 반대운동에서 탄생했다고 보았다. 불교는 그리스도교처럼 ‘죄’개념을 이용하지도 ‘죄와의 싸움’을 선언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고통과의 싸움’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고자 했고, 이를 위해 정신섭생의 구체적인 길을 찾는 위생학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다.
불교는 고통과 죄를 연결시키지 않았으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초월적인 존재인 신을 설정하지 않았고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 가능성을 자기 안에서 찾는 ‘자기구원의 종교’였던 것이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원한의식으로부터의 해방에 있다고 보며,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생성 소멸하는 현실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 우리 삶의 정신적인 섭생의 길을 올바로 찾아 실천하는데 있다고 여겼다.
그는 『법구경』의 한 구절인 “적대는 적대에 의해 끝나지 않는다. 적대는 자비에 의해 끝난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이를 불교의 핵심내용으로 이해했다. 우리가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긍정적 삶의 태도와 원한감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정신적 섭생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불교가 “명랑과 평정과 무욕을 최고의 목표”로 하고 있기에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교적 정신섭생의 방법으로서 위생학은 바로 현실의 긍정에 있으며, 몸의 단련을 통한 정신의 내적 평화와 삶의 명랑성의 회복에 있다고 보았다.
니체는 불교의 위생학적 정신섭생요법이 삶의 고통과 허무를 느끼는 인간들에게 치료적 기능을 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에게 심오한 생리학자인 부처는 삶의 고통과 허무를 능동적으로 치료하는 의사였다. 불교의 실천적 방법이 위생학에 기초해 고통과 원한감정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정신적 자유인이 되는데 있다면, 니체의 사유 역시 몸의 치료로서 자기 치료를 통해 항상 깨어있는 자유정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양자 사이에는 친화성이 있다.
니체가 높이 평가한 것은 현실에서 도피한 채 명상을 통해 세계를 관조하는 수동적인 세계관의 불교가 아니라, 삶과 현실을 긍정하며 구체적인 삶의 현실 속에서 건강하게 살아 움직이는 능동적인 세계관의 불교였다.
삶과 현실, 인간의 육체와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억압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저편세계 속에 도피하게 만들고 초월적인 세계에서 영혼의 구원을 갈구하게 했던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혹독한 비판이 오히려 오늘날 그리스도교에 건강한 종교적 항체를 제공해준 것처럼 니체의 불교 비판 역시 삶과 현실의 모든 것이 덧없다 식의 허무주의에 안주하며 현실도피적인 은둔을 즐기는 불교에 건강한 종교정신을 형성시키는 성찰적 항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불교적 사유는 나에 대한 집착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항상 깨어있는 삶이야말로 진정 인간의 인간다움을 각성시킬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경전 중 ‘법구경’ 경구 자주 인용
삶의 집착과 편견에서 벗어나 정신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인간 가운데 진정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만남이 성숙된 정신이 있을 때 가능하듯이 세계와의 진정한 만남은 우리의 깨어있는 정신이 있을 때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자기구원 가능성을 깨어있음에서 찾고 있는 니체의 사유는 나와 너, 서양과 동양, 문명과 야만 등 이분법적 대립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론적 위생학적 치료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원광대 김정현교수
김정현 교수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에서 철학, 사회학, 종교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비판적 니체전집』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원광대 인문학부(철학) 교수 및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해외파견교수로 있다.
주요저서로 『니체의 몸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등과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외 다수의 역서가 있다.
출처 법보신문 986호 [2009년 02월 16일 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