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현각스님 / “부처를 쏴라 … 스승 첫 가르침에 밤새 울어”

slowdream 2009. 3. 5. 06:36

“부처를 쏴라. 그게 숭산 큰스님(1927~2004)의 가르침이죠.”

현각 스님은 3일 “이 인물만 옳다. 다른 종교, 다른 신앙은 옳지 않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래서 불교에선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푸른 눈의 현각 스님이 3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부처를 쏴라』(김영사, 1만5000원)는 책을 들고 나타났다. 도발적인 제목이다. 현각 스님은 “실은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영어로 썼던 석사 논문을 한국말로 옮긴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스승인 숭산 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과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이 절절이 녹아 있다. 논문이라기보다 숭산 스님에 얽힌 일화와 법문, 메시지를 엮은 에세이 형식에 가깝다.

◆논문에 배인 눈물=“하버드대에서 숭산 스님의 어설픈 김치 영어로 법문을 듣고 충격을 받은 뒤 밤마다 울었죠. 세상에 이런 가르침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너무 고마웠어요. 그 마음으로 혼자서 밤새 울었죠.” 그 뒤 그는 대학원에 1년 휴학계를 냈다. 1990년 11월 한국으로 건너와 계룡산 신원사에서 선(禪) 수행을 했다. “그때 출가를 결심했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다. “책 보는 일이 아무런 재미가 없었어요. 대학원 공부는 메뉴판이었죠. 저는 그때 이미 음식을 먹기 시작했거든요.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메뉴판을 보지 않잖아요.” 그래서 현각 스님은 ‘숭산의 가르침’으로 논문을 썼다. 그를 지도했던 저명 불교학자 나가토미 마사토시 교수는 제자의 논문을 미국의 불교 전문출판사에 넘겼고, 2년 전 현지에서 출간됐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김수환 추기경 얘기가 나왔다. 현각 스님은 “예전에 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인행사 참석차 김 추기경이 미국 뉴욕을 찾았을 때였다. “뵙고 싶어서 일부러 찾아갔어요. 한인 성당에서 함께 차를 마셨죠. 정말 불교의 큰스님을 친견할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바지와 스웨터를 입으신 편한 차림,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할아버지 같았죠.”

그는 1시간30분 동안 김 추기경과 대화를 나누었다. “전에 제가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어했던 마음까지도 말씀을 드렸어요.” 김 추기경은 현각 스님과 헤어지면서 “자네 같은 사람이 우리 성당(가톨릭을 뜻함)을 떠나서 아쉽다”고 말했다. 현각 스님은 돌아선 추기경의 등을 향해 말했다. “추기경님, 저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지 않고, 가지 않는 생명입니다.” 그러자 김 추기경이 천천히 돌아서 현각 스님의 얼굴을 찬찬히 봤다고 한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셨죠. 저는 그걸 ‘알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보살의 마음=“제가 하버드 대학원에 다닐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다니고 있었어요. 2년 선배였죠. 물론 서로 모르는 사이였죠. 알았다면 제가 지금 다른 쪽에 가 있을지도 모르죠. 하하.”

현각 스님은 ‘오바마’ 얘길 꺼내며 농담부터 던졌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보살의 마음’이 있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겐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요. 미국 사회에서 그는 혼혈이고, 외부인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그건 머리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절절한 마음이죠.” 현각 스님은 승려든, 재가불자든 수행자의 삶도 그렇게 이해하고 베푸는 마음, 베푸는 삶이어야 한다고 했다.

◆담배와 조깅, 그리고 묵언수행=지난달 9일 현각 스님은 문경 봉암사에서 동안거를 마쳤다. 지금껏 보낸 안거 횟수만 32회쯤 된다고 했다. 석 달 동안 그는 묵언(침묵을 지킴)과 오후불식(오후에 먹지 않음)을 했다. 묵언수행이 처음이었다는 현각 스님은 “담배 피우면서 조깅 하는 것과 담배 피우지 않으면서 조깅하는 것의 차이”라며 “참선은 참 나를 찾아서, 본질을 찾아서, 그 무한한 자리를 찾아서 들어가는 것인데, 잡생각이 들면 들어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말을 하면 잡생각이 따라서 생기고, 말을 끊으면 잡생각이 따라서 끊긴다는 설명이었다.

간담회에서 누군가 물었다.

“책에 실린 법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뭡니까?”

현각 스님은 되려 물었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목소리다. 지금 이 순간이다. 그 목소리를 들을 때, 이 존재가 존재한다.

오직 들을 뿐, 오직 볼 뿐, 오직 모를 뿐이다.”

출처 중앙일보 글·사진=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