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펴 낸 정일우 신부 청계천, 양평동, 상계동 등 철거민과 함께 하다 공동체 꾸려 193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살에 예수회에 입회했다. 세인트루이스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25살이던 1960년 9월부터 3년간 서강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을 공부한 뒤 사제서품을 받고 66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예수회 부수련장, 수련장으로 영성신학을 지도했지만 복음을 입으로만 전하고 있다는 강한 의심이 들어 1973년 청계천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미 1969년 홀로 박정희대통령의 3선개헌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할 만큼 약자들과 함께해 왔다. 그로 인해 몇 번이나 강제추방될 뻔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그는 “정든 한국과 벗들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았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그가 정들었고 사랑했던 한국은 가난한 사람들이 몸 한 칸 누일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 그는 갈 곳 없이 정부의 철거정책에 내몰리는 철거민들과 함께 청계천, 양평동, 상계동 등에서 늘 함께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철거민들을 도운 게 아니라 그들이 자신에게 축복을 주었다고 했다. 이날 기념 미사엔 그가 좀 더 건강했을 때 녹화했던 영상이 상영됐다. “나는 판자촌에 들어가 처음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보았다. 판자촌 주민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지킬 것이 없다. 주민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나는 이렇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주민들의 이런 모습을 통해 나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니 나는 감출 것이 많았다. 지킬 것이 많았다. 그에 비해서 판자촌 주민들은 지킬 게 없으니까 그냥 닥치는 대로 산다. 그 전에 나는 학교에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과 면담하느라 바빴다. 나는 닥치는 대로 못살았다. 여유가 없어서.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진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데 판자촌 주민들은 이미 벌써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판자촌 사람들의 말을 예수의 말로 들었다. 그는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비결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상대방을 존경하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는 늘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에게 밤새 귀를 열어주며 함께 부대꼈다. “거슬리는 사람도 한 번도 꾸짖지 않고 큰 신뢰 품어” 이날 정 신부에게 책을 바치러 나온 제정구 선생의 부인 신명자 복음자리 이사장은 “제 남편 제정구도 개구쟁이었지만, 정 신부님은 더 개구쟁이었다”며 “언젠가는 육교에서 50원씩에 파는 병아리 10마리를 사갖고 와 그 좁은 방에서 병아리 10마리와 함께 살았다”고 소개했다. 책엔 정 신부와 함께 살았던 이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공동체 식구들은 “평상시엔 하느님의 존재를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정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거나 기도 모임을 할 때는 정말 성령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강론이 없어도 뭔가 움직이는 느낌, 어디서 오는 힘인지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공동체 식구들은 아무런 가식 없이 청년들과 술을 함께 마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대해주는 정 신부를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대하다, 바로 그 점이야말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내공이라는 점을 깨닫고, 그를 우리 곁에 온 예수처럼 반겼다. 그를 ‘사부’로 존경하는 유시찬 신부(서강대 이사장)는 “내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인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 번도 꾸짖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큰 신뢰를 품고 계셨다. 사람인 우리 모두는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며 옳게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으며, 종국엔 스스로가 알아서 자기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며 변화되어 가고 성장해가는 것임을 깊은 차원에서 확신하고 계시는 듯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곧 예수요,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고 여겼던 정 신부가 있기에 가난한 이들도, 철거민들도 ‘버림 받은 인간’이 아니라 ‘축복받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 한겨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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