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 3년 동안 부지런히 정진했습니다. 행복에 잠겨 있던 순간, 3년 공덕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인지 화가 올라오고 잘 돌이켜지지도 않습니다.
화가 나면 한번 실컷 화를 내보세요. 그러면 그것이 나한테 이로운지 아닌지 알게 됩니다. 마치 마약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화를 벌컥 내버리면 일시적으로는 좋습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따르죠. 시간이 경과되면서 그것이 도로 몸을 해치거든요. 이게 나한테 돌아오는 과보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아서 화가 나도 화를 안 내고 참으면 이것 또한 내가 괴롭죠. 스트레스를 받아서 목이 뻣뻣해지고 눈이 침침해지면서 괴로워집니다.
이렇게 참다가는 화를 더 크게 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화를 내버리면 당장에는 속이 시원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병이 나은 것 같은데 또 과보가 따릅니다. 그 과보가 이번에는 더 큽니다. 그러면 과보가 두려워서 또 참게 됩니다. 참으면 또 자신은 괴롭습니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사람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화가 나면 참게 됩니다. 참는 것이 과보가 덜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는 것도 괴롭기 때문에 왜 나만 참아야 하나 하면서 화를 버럭 내게 됩니다.
이것은 뜨거운 불덩어리를 왼손에 쥐었다가 뜨거워서 오른손으로 옮기고, 그러다 오른손이 뜨거워져서 ‘아이고, 뜨거워라’하고 왼손으로 옮기면 이번엔 왼손이 또 뜨거운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늘 참았다가 터지고, 참았다가 터지고, 이렇게 반복되는 것입니다.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제가 부족합니다. 제가 어리석습니다.” 이 말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려놓아야지’가 아니라 ‘제가 잘못했습니다’가 바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내려놓아야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화가 사라집니다.
수행 좀 하니까 괜찮았다가 수행 안 하니 또 아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 좀 하니까 괜찮았다는 것은 수행을 한 게 아니고 참았다는 말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수행하다가 그만 둔 게 아니라 수행 흉내를 낸 것입니다. 애초에 수행의 관점이 잘못 잡힌 것이고 법문을 잘못 들은 것입니다. 수행은 화가 날 때 화를 내라거나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화가 일어날 때 ‘내가 지금 화가 나고 있구나’하고 화가 일어나는 줄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의 장’에 다녀왔다면, 화는 자신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때 올라온다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화가 일어나는 줄 알게 되면 ‘내가 또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구나’하고 돌이킬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현재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등산이랑 비슷합니다. 산을 오를 때는 힘이 듭니다. 힘이 드니까 더 오르기 싫지요. 그럴 때 그냥 내려와 버리면 몸은 편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산 정상에서 ‘야호’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또 부러워집니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왔는데 내가 쉬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저 앞에 가는 것을 보면 막 쫓아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웬만큼 앞질렀다 싶으면 이제 됐다 싶어서 또 앉아 쉽니다. 그런데 좀 쉬다 보니 또 사람들이 먼저 가는 게 보입니다. 그러면 ‘아이고 또 내가 뒤쳐졌네’라는 생각이 들지요.
이것은 세상의 경쟁과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발걸음을 보면서 주위 산천을 보면서 숨이 차면 약간 쉬었다가 다시 오르고, 피곤해도 그냥 꾸준히 가는 것이 쉬었다 올랐다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몸에 무리도 안 가고 더 많이 갈 수 있어요. 이렇게 꾸준히 가면서 자기 점검을 해야 합니다.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출처 995호 [2009년 04월 20일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