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발원의 종교다
불교는 스스로 다짐한 것을 이뤄가는 발원의 종교다.
소원을 비는 기원의 종교가 아니다. 발원이란 어떤 일을 스스로 해내겠다는 다짐의 불교적 표현이다.
이에 비해 기원은 절대자에게 빌어서 소원을 이루려고 한다. 이는 유신교적 발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교는 기원을 인정하지 않는다. 팔만대장경 어디에도 절대자에게 소원을 비는 기도와 기원의 가르침은 찾아볼 수 없다. 불교의 수많은 경전에는 스스로 세운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굳은 맹세와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칠 뿐이다.
불교에서 발원의 철학은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불본행집경> 27권 향보리수품은 부처님이 수행자시절 보리수 아래 금강보좌를 마련하고 스스로 이렇게 다짐했다고 전한다.
"모든 번뇌를 다 제거하고 정각을 얻지 못한다면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이 발원의 힘으로 부처님은 무상정등각을 성취했다.
부처님은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중아함 26권 <원경(願經)>에서 모든 불교수행자는 반드시 서원을 세우고 수행할 것을 강조했다. 바른 수행을 해서 정각을 성취하고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발원해야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면 ‘서원의 철학’으로 정립된다. 서원(誓願)이란 어떤 일을 하겠다는 다짐이고 발원(發願)은 그러한 다짐을 지속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절대자의 힘을 빌리려는 유신교적 기원(祈願)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대승불교의 서원사상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은 사홍서원이다. '한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노라. 한없는 번뇌를 다 끊겠노라.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노라. 위없는 불도를 다 이루겠노라'는 다짐은 모든 불보살의 서원에 공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를 해서 총원(總願)이라고 한다. 수행자들은 사홍서원의 정신을 보다 구체화해서 개개인의 맹세인 별원(別願)을 세운다. 아미타불이 법장이란 이름의 수행자였을 때 이 세상을 극락으로 만들기 위해 48가지의 서원을 세우고(아미타경), 약사여래가 질병 없는 세상을 위해 12가지를 서원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행하며(약사본원경), 보현보살이 불도를 성취하는 그날까지 10가지 행원을 실천해 나갈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화엄경 보현행원품), 승만부인이 정법을 배우고 보호하기 위해 3가지 다짐과 10가지 원을 세운 일(승만경) 등이 그것이다.
대승경전에 나타나는 서원의 사상은 수행자들의 발원문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신라의 의상대사는 '백화도량발원문'을 지으면서 스스로 관세음보살이 되어 십원육향(十願六向)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으로 귀의하니...'로 시작되는, 운허스님의 번역으로 더 유명한 이산교연(怡山皎然)선사의 발원문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는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리라'는 나옹혜근(懶翁慧勤)화상의 발원문은 읽는 사람들을 전율케 하는 감동을 준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세운 서원은 이렇게 한결같이 깊고 넓고 크고 높은 자비의 마음을 담고 있다. 역대조사와 수많은 스승들은 이 고귀한 발원을 실천하기 위해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수행했다. 이를 서원행(誓願行) 또는 원행(願行)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에서 불교의 종교적 위대성이 발견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이상과 서원을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가. 처음 세운 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불교 본래의 이상에서 벗어나는 외도신앙의 길로 가고 있다. 불자들이 행하는 종교의식에서 불교적 발원은 찾아보기 어렵다. 절마다 내걸린 현수막은 절대자에게 매달려 무엇인가를 비는 기독교적인 기도와 기원뿐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불교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가. 기원을 발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부처님의 뜻에 맞는 정법이 널리 선양될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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