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사제가 아니다
‘사제(司祭)’란 종교에서 신관(神官)의 역할을 하는 특정의 직업인을 가리키는 용어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에서 사제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고 소통해온 존재였다.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는 족장이 곧 사제의 역할을 대신했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통치하거나 지배했다. 중세의 가톨릭교 사제가 그 예다. 오늘날 민속종교에서의 무당은 정치권력이 빠져나가고 종교적인 역할만 남은 경우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제의 신분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인간이면서 신의 일을 대리하는, 그렇다고 신과 같은 전능한 존재가 아닌 사람이 사제의 위치다. 그런 뜻에서 사제는 반인반신(半人半神)과 같은 존재라 해도 무방하다.
사제의 기원은 유신종교(有神宗敎)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위력과 재해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속수무책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만나면 무엇인가에 의지하여 구원을 요청하고 싶어진다. 이때 인간은 신이라는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 신과 인간을 매개하고 소통하는 존재로서 사제를 만들어냈다.
가톨릭의 경우 사제는 전도, 신도의 지도, 의식의 집전을 위하여 남자에게 특별한 자격을 부여한다. 이들은 일반신자와는 다른 신분을 가지며 특정한 집단을 이루면서 교회를 이끌어간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직급에 따라 '주교(主敎)' '사제(司祭)' '부제(副祭)' 등이 있다. 만인사제설(萬人司祭說)을 주장하는 개신교에서는 가톨릭과 같은 성격은 아니지만, 목사나 전도사 등을 성직자로 부른다. 일본의 신도(神道)는 신관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두어 제사와 기도 같은 의식을 책임지게 한고 있다. 또 민속종교의 사제인 무당도 여전히 신과 인간을 소통하는 제사의 집전자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사제가 이렇게 유신종교와 관련이 있는 직책이라면 불교의 스님은 당연히 이와 무관하다. 불교는 그 종교적 출발이 절대적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이성적 자각을 목표로 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의 승려에게는 사제의 권위나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만약 불교에서 사제를 인정하고 역할을 맡기려 한다면 무엇보다 절대적 권능을 갖는 신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 부처님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관할 초월적이며 전능한 권능을 지닌 신이 아니다.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해탈의 언덕에 도달할 이상적 인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기분을 살피며 은총을 빌기 위해 제사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일만을 맡아서 하는 사제적 기능을 갖는 존재도 필요하지 않다. 이런 이유로 불교에서는 초기교단시대부터 사제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
불교에서 스님은 사제가 아니라 ‘수행자이자 스승’으로서 역할 하는 존재다. 대승불교의 이상을 표현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에는 스님의 이상상과 역할이 잘 나타나 있다. 즉 불교에서 스님의 역할은 불교적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수련을 하는 수행자다. 동시에 아직 어리석음에서 헤매는 중생에게 바른 삶을 이끌어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결코 유신종교의 사제나 민속종교의 무당과 같은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현실불교에서는 본래의 의미와 역할이 많이 왜곡돼 있다. 언제부터인가 스님들은 유신종교의 사제처럼 절대자화한 부처님에게 공양을 올리고 복을 비는 의식을 집전하는 역할에 충실하는 모습이다. 신도들도 스님들이 유신종교의 사제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다보니 바른 진리를 추구하는 수행자로서의 역할, 중생을 구제하는 스승으로서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스님이 사제노릇을 하다보면 교리가 왜곡되고 불교의 본질이 손상되기 쉽다. 그것은 곧 불법의 쇠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이 일을 강 건너 불 보듯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불교의 진리성을 현실적이고 직접적으로 표상하는 스님들의 종교적 정체성 확보야말로 정법을 바로세우는 첩경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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