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불교와 인문과학

[학자를 말하다]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 교수

slowdream 2010. 8. 7. 13:11

[학자를 말하다] 이화여대 철학과 한자경 교수〈끝〉
동서양 철학 넘나드는 일심〈一心〉의 철학자
기사등록일 [2010년 04월 12일 13:28 월요일]
 

독일서 칸트철학-동국대서 유식학 전공
동서양 철학 정통…무아-다산논쟁 주도

 

‘하나가 전체되어/ 일심이 흩어져 날리면/ 마음은 몸의 피를 타고/ 사람은 고통이 된다. 사랑의 번뇌로 업 짓는 중생/ 업력 따라 육도윤회하고/ 중생 구제로 자비에 찬 보살/ 원력 따라 되돌아온다. 이 땅 위에 운명처럼/ 다시 만나는 중생과 보살/ 중생 사랑의 궁극 아픔도/ 그대를 두고 떠날 수 없음이니/ 번뇌로 물든 사랑의 핵/ 그것은 결국 자비 아닌가?’
-한자경 교수의 『나를 찾아가는 21字의 여정』 중 ‘자(慈)’ 전문

 

이화여대 인문관 4층에 자리 잡은 한자경(51) 교수 연구실은 ‘의외’라는 느낌으로 처음 와 닿았다. 직접 수채화로 그렸다는 풍경들과 유학시절 서양 철학자들을 그린 소묘, 난(蘭) 수묵화와 수려한 붓글씨 등등. 고즈넉한 옛 선비의 서재를 닮은 연구실 풍경에서 동서양 사상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신의 철학을 펼치는 한 교수를 연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어쩌면 ‘무아논쟁’과 ‘다산논쟁’에 대한 강한 인상 때문일는지도 몰랐다.

 

지난 21세기 벽두를 뜨겁게 달구었던 무아논쟁은 울산대 철학과 김진 교수가 『칸트와 불교』(2000)를 펴내면서 비롯됐다. 당시 그는 이 책에서 “무아와 윤회가 양립하기 위해선 칸트가 도덕적인 실천의 강조를 위해 신의 존재를 요청했던 것처럼 ‘참된 자아’를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한 교수는 “김 교수가 칸트의 요청이론을 통해 불교의 무아-윤회설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와 불교에서 인식하는 인간에 대한 차이를 간과한 것”이라며 그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후 무아논쟁은 3년여간 격론이 오가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한 교수는 또 지난 2005년 “다산 정약용은 유학자가 아니라 마테오리치의 동양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인물”이란 다소 충격적인 주장을 펼쳐 강신주 박사와 열띤 다산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다산이 서구적인 틀로 성리학을 봤고 전통적인 종교적 심성을 부정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무아논쟁에서도 그랬듯 제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다산이라기보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이 서구적인 틀로 불교학이나 성리학을 비판하고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는 것이 우월한 것처럼 전제하는 풍토를 지적하려 했던 것입니다.”

 

‘한국인의 사유방식이나 철학 체계에 일관된 흐름을 발견하고 그것을 잇는 것이 철학하는 사람들의 과제’라고 말하는 한 교수에게 ‘일심(一心)’은 한국인의 깊은 사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맥(脈)’이다. 실제 그는 일심사상을 중심으로 무교(巫敎), 불교, 유교, 동학,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상의 흐름을 일관되게 서술하기도 했으며, 그의 저술과 논문에 일관되게 흐르는 학문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한국 사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 한우근 선생의 막내딸인 그가 사학이 아닌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청소년시절부터 운명처럼 따라다니던 물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답을 해결하지 않고선 진정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확신으로 철학과에 입학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의 현상학자인 후설과 일심사상가 원효를 만날 수 있었다.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후설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곧바로 독일유학의 길에 올랐다. 대학원 시절 이미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함께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그가 서양철학을 먼저 시작한 것은 자신이 동양인이고 동양사유가 자신에게 더 깊이 배어 있어 나중에 시작해도 늦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동양의 내재주의 사상과 가장 가깝다는 칸트와 그 이후의 독일관념론에 대해 연구했다.

 

1988년 「존재론으로서의 초월철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귀국 후 계명대 철학과 교수가 됐지만 다음해 동국대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대구와 서울, 교수와 학생의 신분을 오가는 바쁜 나날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칸트와 초월철학』(1992), 『자아의 연구』(1997), 『철학의 원리로서의 자아』(1999) 등 탁월한 저술들을 속속 펴냈다. 특히 『자아의 연구』(1997)는 ‘자아의 이해’란 주제를 놓고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합리론과 경험론, 칸트를 비롯한 독일 관념론, 니체를 거쳐 현상학, 또 푸코와 라캉에 이르는 방대한 흐름을 일관되게 추적함으로써 “철학함의 진면목”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 2000년 한 교수가 10년간의 노력 끝에 완성한 박사학위논문 「성유식론에서의 식과 경의 관계 연구」도 학계로 부터 잇따른 호평을 받았다. 『유식삼십송』에 대한 주석서격인 『성유식론』을 중심으로 유식에 있어서 식(識)과 경(境)이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또 그들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논리적, 철학적 관점에서 치밀하게 규명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한 교수는 『유식무경』(2001), 『불교철학의 전개』(2003) 등 저서를 통해 불교의 심식이론을 체계화하는 한편 『동서양의 인간 이해』(2001), 『일심의 철학』(2002) 등을 통해 자아·주체·마음·인간 등에 관해 동서양 철학의 융합을 모색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시화 산문집인 『나를 찾아가는 21字의 여정』(2006)을 비롯해 동서양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쓴 『불교의 무아론』(2006), 『명상의 철학적 기초』(2008), 『한국철학의 맥』(2008) 등 묵직한 저술을 잇따라 펴내는 등 놀라운 학문 활동을 펼쳤다. 이 모든 저술들은 결국 ‘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에 대한 깊고 다양한 사색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이제 저술보다는 『대승기신론』이나 『섭대승론』 등을 읽기 쉽도록 해설서를 펴내 불교사상으로 철학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하겠다는 각오다. 불교수행자로서 궁극적인 깨달음인 성불에 이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한 교수는 “불교란 규정된 틀을 넘어서 무한으로 나갈 수 있는 자유, 마음 본래의 자유로 돌아갈 수 있는 참다운 자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한자경 교수와의 Q&A

 질문           

답변

이유

 닮고 싶은 학자 

 원효

 이론과 실천 구비

 존경하는 인물

 석가모니

 지혜와 자비의 화신

 읽히고 싶은 책

 명상의 철학적 기초

 철학과 종교를 연결

 한국철학의 맥

 불교의 일심사상으로

 한국철학 흐름 파악

 권하고 싶은 책

 우파니샤드     

 “그게 바로 너이니라.”

 지눌 ‘수심결’

 마음 찾아 가는 길

 늘 새기는 구절

 “중생이 곧 부처다”

 평범한 중생의 삶에도

 의미부여가 되어

 꼭 하고 싶은 일

 성불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불교논전에 대한

 읽기 쉬운 해설서 저술

 불교사상으로 철학을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출처 법보신문 1044호 [2010년 04월 12일 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