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불교와 인문과학

불교인식론 1. 서론

slowdream 2007. 9. 18. 23:22
 

불교철학과 문헌학, 전통과 혁신 그리고 지성사의 경계

―즈냐나스리미뜨라의 언어철학1)

로렌스 맥크레이(Lawrence Mccrea)·파리말 파틸(Parimal Patil)

                                 성청환 aruna415@hotmail.com




성청환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현재 플로리다대학 종교학과 박사과정에서 불교 인식논리학을 전공 중이다



1. 서론


불교 철학사에서 산스크리트 논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문헌 해석을 위한 주석적 성격이다. 이러한 경향은 하나의 논서에서 이전의 다른 논서들에 대한 명확한 논평으로 나타나지만, 때로는 그 주장들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불분명하고 때로는 모호하기까지 한 이러한 현상들은 특히 근본논서로 역사적으로 존중되어 왔던 논서들에 대한 주석서들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표출된다. 이와 같은 전통에서, 인도불교 철학자들은 자신의 논서를 저술함에 있어서 두 가지 목표를 지향한다.


첫째, 그들의 주장이 철학적으로 논리적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스스로 의존하는 근본논서들의 결론과 상충하지 않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인도철학사에서 두 번째 목적은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혁신적인 철학자일지라도, 그 학파의 전통을 존중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로 논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또한 매우 새롭고 독창적인 사유나 논리를 전개할 경우에도 마치 전통적인 근본논서들에서 동일한 논의가 암묵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서술하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로 인하여 현대의 학자들은 개별 철학자들의 사상을 논의할 경우에도, 대단히 새롭고 혁신적인 측면들을 단순히 광범위한 문헌 주석적인 전통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전반적으로 주석서들과 주석서를 다시 주석한 논서들의 독립성과 중요성을 간과하고, 하나의 독립된 논서로 논의하지 않고 근본논서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불교 인식논리학을 연구하는 현대 학자들에게 두드러진다.


불교언어철학의 핵심 이론인 배제(apoha)이론에 대한 논의에서 현대 학자들은 오직 디그나가(Dign�ga, c.480~540)와 다르마끼르띠(Dharmak�rti, c.600~660)가 저술한 근본논서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결과적으로 학자들은 후기 논사들의 논서들을 단순히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즈냐나스리미뜨라 (J��na-5�r�mitra, c.975)의 논서 중에서 ‘배제에 대한 논의(Apohaprakaran.a)’는 전통주의적 흐름과 혁신적 경향이 잘 융합되어 드러난다.


기존의 학자들이 단순히 전통주의라고 이해하였던 여러 측면들은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혁신주의적 경향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음을 보여 줄 것이다. 지성사적 전통에서, ‘재정비’와 ‘체계화’는 혁신을 통하여 종합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즈냐나스리미뜨라는 다르마끼르띠의 주장을 재정비하고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다르마끼르띠는 주장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결코 동의하지도 않을 것 같은 대단히 혁신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즈냐나스리미뜨라는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제이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결지(adhyavas�ya)’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또한 그는 ‘가탁(vyavasth�)’이론을 제시하여 다르마끼르띠의 이론을 계승하고 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중요한 여러 범주들을 상대화하는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불교인식론에서 전통적으로 근본 원리라고 강조되었던 여러 측면들의 중요성을 일정 부분 상쇄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