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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식론 3. 결지(決智)에 대한 다르마끼르띠의 이론

slowdream 2007. 9. 18. 23:24
 

3. 결지(決智)에 대한 다르마끼르띠의 이론


다르마끼르띠는 불교인식론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결지(決智, adhyavas�ya)’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다. 그는 결지는 추론이나 언어적 활동에서 형성되는 보편에 근거하여, 개별적 대상에 대해서 행위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디그나가와 동일하게 다르마끼르띠는 올바른 인식의 수단으로 지각과 추론 두 종류만을 인정한다. 지각은 개별상을, 추론은 보편상을 대상으로 취한다.


다르마끼르띠의 정의에서 인식의 정당성의 기준은 ‘대상에 대한 목적 성취’(arthakriy�)에 근거한다. 구체적으로 특정한 행위가 원칙적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기대치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할 수 있는 한 그 인식은 정당하다(pram�n.a). 다시 말하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유도하는 대상에 대한 기대치의 범위 내에서 가능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저 멀리에 있는 항아리의 ‘물’을 보고, 목마름을 해소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치로 그 항아리에 접근하게 되는 경우를 가정해 보자. 우리는 어떤 장애물로 인하여 그 항아리에 접근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비록 항아리의 ‘물’에 접근하지 못할지라도, ‘물’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물’이 담겨 있는 항아리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그 항아리에 접근하였을 때 오직 ‘물’이 아니라 모래만을 발견하게 된다면 ‘물’에 대한 그 인식은 정당하지 않다.


인식의 정당성은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우리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의 기대치가 구체적인 실례에 부합하는가는 관계없다. 그 이유는 오직 개별상만이 실질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인식자가 개별적인 대상들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할 경우에만 인식의 정당성은 가능하다. 따라서 지각과 추론 두 경우 모두 다 이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러나 추론은 오직 보편상만이 그 대상이다.


그렇다면 다르마끼르띠는 ‘어떻게 추론에 대한 인식이 실질적인 효과를 가진 개별상으로 인식자를 유도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결지’의 과정이라고 대답한다. 곧 추론의 과정은 인식에 현현하는 대상과 인식행위가 의존하는 대상 사이에 시간적 간극이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그곳에 ‘불이 현재 존재한다’고 추론할 경우 그 ‘불’은 인식에 현전하는 실질적인 효력을 가진 개별적인 실재가 아니라, 개념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불’에 대한 인식이 인식자로 하여금 직접적으로 산으로 가게 할 수 있고, 구체적인 ‘불’을 발견하게 할 수도 있다. 다르마끼르띠는 이 과정을 ‘체계화된 오류의 동일화’라고 이름한다. 실질적인 효력을 위한 추론은 오류인 ‘불’의 개념을 형성하고, 그에 따라서 행위하는 과정이다. 다르마끼르띠는 추론이 오류이면서도 어떻게 인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비록 오류일지라도 대상과 관련된 속성인 경우에 그 속성에서 일탈하지 않으므로 정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속성의 현현이 실재하는 대상이 아닌 경우에도 그 대상의 결지로부터 인식의 정당성이 있기 때문이다.2)


다르마끼르띠는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예시를 제시한다.

‘황금의 빛’을 보고 황금이라고 생각하고, ‘등불의 빛’을 보고 황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두 경우 모두 사유의 오류라고 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효력에 있어서는 구분이 있다. 이와 같이 추론과 오류의 형태가 대상과 상응하지 않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실질적인 효력과의 부합에 있어서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당성이 있다.3)


인식자는 ‘보석의 빛’을 보고 ‘보석’을 얻기 위해서, 그 빛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정확히 ‘보석’을 본 것이 아니라, 단지 보석이나 등불 주변에 반영되는 ‘불빛’을 보았을 뿐이다. 두 경우 모두 실질적으로 보석을 본 것이 아니므로, ‘보석’에 대한 인식은 오류이다.


그러나 만약 간접적인 ‘불빛’이 실제로 ‘보석’으로부터 발생한 경우라면, 그 인식자는 결국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록 최초에 보석의 빛을 보고 보석이라고 추론한 인식은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으로 인식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한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시킨다. 이와 같이 추론은 대상이 실재하지 않을지라도, 인식자가 그 기대치에 부합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실질적인 효력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실재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추론의 과정을 다르마끼르띠는 ‘결지’라고 이름한다.


다르마끼르띠가 ‘결지’를 설명할 때, 그 본질적 성격은 어디까지나 오류임을 강조한다. 언어는 단일성이 결여된 대상에 통일된 형상을 부여하기 위한 오류적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록 오류의 형태이고, 구체적으로 효력을 발생시킬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대한 효력을 발생시키기 위한 ‘단일한 형상’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오류의 인식은 실재하는 개별적 사물의 본성과는 다르게 대상들을 결지할 수 있다. 비록 언어가 대상의 개별적 실재가 아닌 대상을 취할지라도, 실재하는 대상과 완전히 구별되는 별개 대상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인식자로 하여금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불교인식론에서 개별상들은 유일하며, 다른 어떤 것들과도 공통된 속성들을 공유하지 않으므로, 개별적 사물들 사이에 실재적인 유사성은 없다. 그러나 ‘소’라고 지칭하는 경우와 같이, 언어는 개별상들과는 구분되는 임의로 부과된 단일하고 보편적인 ‘소’라는 형상을 구성한다. 우리는 ‘소’라는 단어를 듣게 되면, 마치 하나의 구체적 대상으로서 ‘소’가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일반화된 소의 형상을 생각한다.


‘소’라는 보편적 개념이 개별적인 실재의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따라서 추론은 완전히 구분되는 특수성에 실재하는 유사성을 부가하는 과정이 반드시 개입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오류이다. 여기에서 ‘결지’는 인식에 내면적으로 일반화된 형상의 ‘소’를 개별적 ‘소’의 존재와 동일하게 간주하는 ‘잘못된 동일화’의 과정이다. 따라서 다르마끼르띠는 오직 ‘소’의 속성이 아닌 모든 것들을 제외하는 ‘타의 배제’(他의 排除, anyavy�vr.tti)만이 언어가 대상을 지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다르마끼르띠는 단순히 분별(分別, vikalpa)을 언급하기 위하여 ‘결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대상을 분별한 형상은 ‘오류적으로 동일화’되는 과정임을 설명하기 위하여 ‘결지’를 도입한다. 비록 결지는 오류의 과정이지만 보석의 불빛과 같이 직접적인 인식은 아닐지라도, 인식자로 하여금 실재하는 사물에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인식은 오직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효력을 발생시키는 경우에만 정당하기 때문에 분별의 정당성은 결지의 과정에서 밝혀진다. 추론이 다른 모든 분별들과 동일하게 본질적으로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결지의 과정을 통하여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실재하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타당한 인식 방법으로 인정된다. 결지의 과정에서 실재하는 구체적인 대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분별은 인식으로서 타당하며, 그렇지 못한 분별은 바른 인식이 아니다.


바른 인식의 기준은 실질적인 효력을 성취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구분에 근거한다. 보편상은 개별상에 대한 이해 이후에 발생하는 분별에 의해서만 파악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없다. 다르마끼르띠의 정의에서, 인식의 정당성은 곧 ‘실질적인 효력’을 의미하며, 오직 개별적인 대상만이 그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개별상은 인식이 이전에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대상이어야만 한다. 따라서 기억은 배제에 의해서 분류된 동일한 대상과 같이 대상에 대한 지각의 다음 찰나에 발생하므로 새로운 개별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며, 인식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없다.


다르마끼르띠는 지각의 다음 찰나에 발생하는 ‘분별’과 실질적인 효력을 초래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이해로서 ‘추론’을 구분한다. 올바른 인식의 유일한 근거인 정당성은 ‘실질적인 효력’을 발생할 수 있는 실재하는 개별 사물에 근거해서 행위할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리고 인식의 정당성은 인식자로 하여금 그러한 대상들과 관계하도록 한다. 지각은 실재하는 개별상이 현전(現前)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재하는 개별상이 현전하지 않는 분별은 결지를 통하여 실재하는 개별 사물들과 간접적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분별을 추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별 중에서도 인식자가 실재하는 사물과 관계하지 않는 것들은 인식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따라서 다르마끼르띠는 지각의 바로 다음 찰나에 발생하는 분별은 인식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한다. 이 분별은 바로 전 찰나에 이미 지각에 의해서 파악된 대상에 대한 분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식자가 개별적 사물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는 사물과 접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당한 인식이다. 지각과 추론은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결과를 초래한다. 인식자가 실재하는 개별 사물과 접촉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별은 인식자가 실재하는 사물을 결지의 과정을 통하여 오직 간접적으로만 관계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결지’의 의미는 보다 정확하게 ‘지각으로는 관계할 수 없는 대상’을 분별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형상을 구성하는 ‘잘못된 동일화’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