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정토회 100일 출가 프로그램을 찾아

slowdream 2007. 10. 16. 03:22
 

<패러다임 변화로 읽는 21세기 종교>


“수행과 일이 다른 게 아니더라”

-정토회 100일 출가 프로그램을 찾아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를 향한 문명전환이 사회 여러 분야에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면서 각 종교 또한 달라지고 있다. 지구화, 정보화, 문화화 등으로 요약되는 문명의 전환이 전면적인 것처럼, 이에 대응하는 종교의 변화 또한 근원적이다.


종교적 영성의 개념과 이를 담아내는 틀에서 선교와 포교의 방식, 이웃 종교를 대하는 시각 등 종교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문명사적 전환이 시작된 뒤 지금까지 불교와 그리스도교, 민족 종교 등 이 땅의 종교에서 진행된 패러다임의 변화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됐으며,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문화일보는 ‘패러다임 변화로 읽는 21세기 종교’ 시리즈를 통해 이 땅의 여러 종교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 중인 변화를 살펴본다.


“불교는 듣고 이해하고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제로 행해 보고 몸과 마음에서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인생이 좀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진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100일은 정진을 해야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00일 동안 정진하면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바꾸는 변화의 시작입니다.”


‘일과 수행이 하나 되는 삶’을 기치로 내건 정토회(지도법사 법륜 스님)가 1000일 결사를 설명하는 말이다. 1993년 3월, 첫 결사에 들어간 이래, 현재 제5차 1000일 결사를 진행중인 정토회가 지난해 10월부터 또 다른 재가자 수행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실무 활동가만 대상으로 하던 100일 출가 프로그램을 일반 재가자들에게로 확대한 것이다. 문화일보는 ‘패러다임 변화로 읽는 21세기 종교’ 첫번째 시리즈로, 정토회 100일 출가 프로그램을 취재하기 위해 전북 장수군 번암면 죽림정사를 찾았다.


새벽 예불부터 불교의 전통 수행법을 따르면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내세운 이 프로그램은 당초 정토회 문경수련원에서 진행됐으나 출가자들은 최근 낙성법회를 봉행했던 죽림정사에서 수행중이었다.


새벽 4시, 아직도 미명. 100일 출가자의 하루는 천지만물을 깨우는 도량석 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청량한 새벽공기 가득한 산사의 새벽이지만, 출가자들의 발걸음은 조용하면서도 부산하다. 이어 법당에서 울려퍼지는 목탁과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과 선지식에게 귀의함)를 외우며 바닥에 엎드리는 행자들의 눈꺼풀이, 입술이 떨린다. 손끝에서 간절함이 묻어난다.


108배 참회 기도정진, 도량 청소, 공양(아침식사 준비), 발우공양, 학습, 400배 정진, 일 수행, 경전 학습, 법회, 나누기, 참선…. 20~60대로 구성된 출가 수행자 20명의 일과는 신병훈련소 못지않게 빡빡하게 이어진다. 매 아침 식사만 해도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아니다. 모든 출가 수행자가 모여 함께 하는 발우공양으로, 한 동작씩 할 때마다 게송을 외워야 하는 법공양이다. 죽비 한번에 각자 상대방을 향해 반 배하고 앉으면, 다시 죽비 한 번에 게송. 또 다시 죽비 한 번에 합장하고 게송을 외우면 죽비 세 번에 발우를 편다.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면 고요한 방안에 달가닥, 달가닥하며 수저 부딪치는 소리뿐. 처음 하는 이들은 그 엄숙함에 체하기 일쑤라니, 이런 수행도 별로 없다.


공양과 설거지를 마치고, 이어지는 것은 학습. 불교의 기초와 근본 교리, 부처님 생애, 불교 역사에 더해 실천적 불교사상을 강조하는 것이 정토회의 특징이다. 2시간 동안 학습을 마친 뒤엔 1시간 동안 다시 400배 정진이 이어진다. 새벽 기도정진 때 이미 108배를 했으니, 하루 500배는 하는 셈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집니다. 슬픔으로, 짜증으로, 미움으로…. 하지만 진정한 공부는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아닐는지요.”


“나를 내려놓고,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야말로 나와의 피 터지는 싸움입니다.”


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100일 출가자들이 넘어야 하는 첫 관문은 입재식을 끝내자마자 3일 동안 해야 하는 1만배다. 워낙 각오를 다지며 왔던 터라 첫 1000배까지는 그럭저럭 넘기지만, 정말 힘든 것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갈수록 몸은 무거워지고, 여기저기서 방석에 쿵쿵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 드물긴 하지만 탈락자가 나오는 것도 이때다. 이런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온갖 번뇌망상들이라니. 먹는 생각, 쉬는 생각, 남자 생각, 여자 생각, 상처 받았던 생각, 칭찬 받았던 생각, 과거 생각, 미래 생각…. 절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탐진치(貪瞋痴)로 가득한 마음을 씻어내기 위한 것이라지만, 어쩌면 1초도 머무름이 없이 들끓는 내 마음을 보며,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출가 뒤 일주일이 지나면서 툭하면 울었습니다. 1만배 하며 탁구공처럼 부어오른 무릎이 아파서 울고, 아침 청소가 하기 싫어서 울고, 고교 2학년 때 재혼을 하고 연락이 끊어진 엄마를 생각하며 또 울고,….”


400배가 끝나고, 점심 공양을 마치면 오후 시간은 일하며 수행하는 일과가 계속된다. 일은 밥 짓기나 설거지, 도량 청소에 그치지 않는다. 낫이라고는 잡아본 일이 없는 여성이 잡초를 베고, 경운기를 끌고, 심지어 분뇨통을 들고 나른다. 출가자들은 일을 하며 농사를 짓고, 잡초를 뽑는 것이 수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일하는 것, 육체노동이야말로 절이나 참선, 위파사나 정진 못지않은 수행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정토회에서 가장 높이 내세우는 것 중의 하나도 ‘일과 수행이 하나되는 삶’인가.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힘들어지는 게 따로 하나 생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 부대껴야 하는 도반들과의 삐걱거림이다. 성별도, 나이도, 경험도 다르다 보니 밥 짓고, 나물 만들고, 청소하고, 일할 때마다 아웅다웅한다. 이렇게 부대끼다 500배를 하거나 일을 하면 불현듯이 다가드는,‘나만 잘났다’고 고개를 치켜든 못난 내 모습. 아, 수행은 일 속에서, 삶 속에서 나를 보는 것이구나. 분별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내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이구나.


“100일 출가는 나를 비워내고 나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간입니다. 부모에 대한 원망과 상처, 미움, 오만, 좌절, 나이, 학벌, 지위, 여자, 남자, 성공, 돈 같은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나를, 사물을 바라보는 데 집중하는 것이지요.”


100일 출가 상임법사이자 정토회 대표인 유수 스님은 “모든 것을 비워내고, 내려놓으면 자신이, 사물이 있는 그대로 오롯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이고, 부처가 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수행자 아니겠느냐며. 정토회는 현재 죽림정사에서 수행중인 제3기 출가자 20명에 앞서, 제1기 18명, 제2기 15명 등 모두 33명이 100일 출가 프로그램을 수료했다고 밝혔다.




출처 문화일보 김종락기자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