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의 중간상태인 바르도(bardo, 중음계)가 살기에 적당하고 안정된 곳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그곳에 살고 있는 혼령들, 아귀들, 악령들은 갖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곳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진화가 늦어진다. 티벳의 깨달은 스승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행해지는‘혼령 부르는 의식(招魂)’에서처럼 영혼을 불러들일 때마다, 그 혼령은 이승과 접촉하게 되고 저승에 대한 이승의 전통적인 여러 신앙들과 접촉하게 됨으로써 바르도 상태에서도 실질적인 영적 진화가 가능하다는 착각을 더욱 갖게 된다. 그래서 그 혼령은 거기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대개 불려온 혼령은 자기가 살고 있는 착각 속의 영역인 바르도를 묘사할 때 어느 정도는 그가 생전에 갖고 있던 저승에 대한 생각에 따라 묘사를 한다.
사람이 꿈을 꿀 때 주로 평소의 경험을 꿈속에서 재현하듯이 바르도 상태에 있는 혼령도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세상에 있을 때 만들어 갖고 있던 생각(의식)의 내용물에 따라 환각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자(死者)가 목격하는 환영들은 <티벳 사자의 서>에서 수차례 강조하듯이 그가 인간세상으로부터 갖고 간 정신적인 찌꺼기나 카르마의 씨앗에서 나온 생각의 투영물이다. 따라서 아주 예외적인 혼령들만이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바르도 세계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나머지 대부분의 혼령들은 정신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성격도 안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카르마의 노리개가 되어 버린다. 그들은 대개 지각 없는 유령들에 불과하며, 의식체에 의해 버려졌다가 인간 영매에 접촉해 자동인형처럼 활기를 띠는 심령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티벳에서는 몽고나 중국에서처럼 신탁을 받는 능력을 가진 라마승들에 의해서 초혼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달라이 라마 자신도 국정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여기에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불려오는 신들은 대개 ‘집행 신단(티벳어로는 카되 bkahdod 명령을 기다리는 자라는 뜻)’이라고 하는 낮은 부류의 수호신들이며, 최근에 죽은 남녀의 혼령이나 귀신들은 불려오지 않는다. 티벳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이들 집행 신단들 중의 몇 명은 인간세상에 있을 때 흑마술을 자주 사용한 탓으로 영적인 깨달음을 얻지 못했거나 본문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영적 진화의 길에서 벗어난 라마승과 수행자들의 혼령이다.
그들은 많은 경우에 악귀나 악령이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죽자마자 영매에 의해 불려옴으로써 인간세상에 묶이게 되어 그들의 영적 진화가 방해받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들의 악한 카르마 때문이다. 이들 집행 신단은 종종 평범한 사자의 영혼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타나며, 이들은 인간을 괴롭히는 악령들처럼 훈련이 안 된 영매와 손님들에게 심리적으로 큰 피해를 입혀 이들을 미치게 하거나 도덕적으로 문란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런 이유 때문에 라마승들은 심령적인 연구는 신비과학의 대가들만 행해야 하며 무분별하게 스승이 없는 대중들이 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 <티벳 사자의 서> 번역이 행해진 시킴 지방에서는 서양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강신술이 오랜 세월 동안 행해져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시킴의 토착 부족의 후손인 렙차 족들이 아직도 이 지방의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처럼 애미니즘과 비슷한 신앙을 갖고 있다. 죽은 자의 혼령을 부르는 풍습은 시킴의 불교 신도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으며, 그들 중 대부분은 티벳인이거나 렙차 족이다. 마찬가지로 불교국가인 부탄에도 초혼의 풍습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두 나라에서 모두 라마승들이 그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바르도에 묶인 영혼들은 오백 년에서 천 년 동안 진화가 정지되며, 드문 경우에는 수세기동안 진화가 정지된다고 한다. 바르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사자는 극락세계에 들어갈 수도 없으며 인간 세상에 환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결국 자궁에 들어가게 되며, 바르도에서의 삶은 끝이 난다.
- <티벳 사자의 서>
'***풍경소리 > 염화실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은 세 번 울며 날아가네 (0) | 2007.12.14 |
---|---|
동산 양개 / 누가 이 몸의 주인인가 (0) | 2007.12.12 |
여색도 곧 공이더라 (0) | 2007.12.08 |
무소의 뿔 (0) | 2007.12.06 |
참선 (0) | 2007.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