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달마(達磨) 대사
보리달마(菩提達磨,?-528, ?-495, 346-495, ?-536). 중국선종의 초조, 서천 제 28조. 남인도 향지국왕의 제3자, 본명은 菩提多羅. 대개 학자들은 역사상의 인물로는 達摩로, 조사로는 達磨로 표기한다. 처음 般若多羅를 40년 동안 섬기다가 법을 잇고 法化를 떨쳐 당시 성행하던 小乘六種禪觀을 굴복시키다. 뒤에 조카 異見王을 교화하고 배를 타고 중국의 梁 普通 1년(52) 廣州 南海郡에 이르다. 그 해 10월에 金陵에서 梁武帝와 問答하고는 낙양의 嵩山 少林寺에 주하며 9년을 面壁하다. 뒤에 伊落에 있던 神光이 달마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斷臂求法하자 시봉을 허락하다. 북위 永安 1년 10월 天聖寺에서 입적. 熊耳山에 매장하였는데 東魏의 사신 宋雲이 葱領에서 隻屨를 들고 서쪽으로 가는 달마를 만나고는 귀국하여 관을 열어보니 隻屨만 남아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무제가 친히 碑銘을 짓고 唐 代宗은 ‘圓覺大師’라 시호하다. 또 昭明 太子祭文에는 聖冑大師라고 하다.
달마의 전기는 從來로 [傳燈錄]을 근거로 하였으나 近年의 연구는 그 이전의 자료를 중심으로 傳記를 구성하는 경향이다. 그 자료로는 [洛陽伽藍記(547)] [曇林序二種入(600년경)] [續고승전(645)] [傳法寶紀(712경)] [楞伽師資記(713-716년경)] [歷代法寶記(774경)] [寶林傳(80l)] [祖堂集(952)] 등이 있다.
또 양무제가 達摩傳에 등장한 것은 神會의 [南宗定是非論]이 처음이며, 無功德의 문답도 [조당집]에 처음 기술되다. 또 혜가가 스스로 雪中斷臂한 故事도 [능가사자기]에 처음 보인다. [낙양가람기]에서는 달마가 150세 경에 洛陽永寧寺의 가람이 華美함을 讚歎하고 終日 ‘南無’라고 부르며 合掌한 것을 기술하고 있다. 遷化한 해에 대해서 [보림전]은 後魏 孝明帝 丙辰(536) 12월로 쓰고 있다. 달마의 저술과 사상은 [二種入]에 보이는 ‘四如是와 二入四行’이 대표적이다. 二入은 理入과 行入이며, 四行이란 行入을 四分한 것이다. 四如是는 ‘如是安心, 如是發行, 如是順物, 如是方便’ 을 말한다. 그의 禪法의 心要는 [四卷楞伽]에 의하는데 당시의 경론연구태도를 배척하고 ‘空無所得의 실천적인 선사상’을 鼓吹하고 있다. ‘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등의 熟語들은 육조의 제자들에 의해 주장된 것이라 한다.
그 사상의 茗芽는 대개 달마의 시대에 기초한다고 말한다. 公案으로 達摩安心(무문관41, 전등록 3), 達摩廓然無聖(또는 達摩不識)이 있다. (종용록2, 벽암록1) (낙양가람기, 보림전8, 능가사자기, 역대법보기, 전법보기, 神會語錄, 속고승전16, 조당집2, 전등록3, 全唐文998, 神會傳4) 저서:[二種入] [心經頌] [破相論,또는 관심론] [血脈論」[少室六門], 또 돈황출토본으로 [이입사행론] [雜錄][絶觀論]등. {선학대사전 p.S31 c- }
출처 http://cafe.daum.net/yumhwa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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