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아름다움과 끔찍함’ 은 짝이다

slowdream 2008. 2. 19. 16:18
 

[천천히 사유하기]‘아름다움과 끔찍함’ 은 짝이다



그림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모티브나 양식의 변화, 구성 방식 등 여러 사항이 있지만,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가장 간단한 것은, 상투적이지만, 그냥 천천히 하나하나씩 세심하게 음미하는 일이다.


그림에서 사람과 사물은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빛은 어디에서 나와 어디를 비추며, 인물의 표정이나 팔다리 그리고 몸의 자세는 어떤가에 사실 많은 것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화가의 기술적 숙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관심이나 성격 그리고 문제의식까지 배어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것에 배어 있는 작가의 흔적-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는 어떻게 이 세상을 표현했고, 어떻게 자기 삶을 살고 갔을까? 예술도 결국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한 방식인 까닭이다.


카라바조(Caravaggio·1571~1610)의 그림은 강렬하다. 정물화건 종교적 묘사건, 일상화(장르화)나 자화상이건 그 모두는 우울과 놀라움, 탄식과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림에서 시선을 돌려도 그 이미지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뇌리에 남아 다시금 느끼게 하고 또 돌아보게 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카라바조의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다. 카라바조란 그가 태어난 이탈리아 북부의 한 마을 이름이다. 서양예술사에서 그는 흔히 ‘빛과 그늘의 혁명가’ ‘회화의 이단아’로 평가받지만 독특함은 그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삶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드라마 같다’는 것은 멋진 표현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좋게 보면 긴장에 차 있지만 나쁘게 보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뜻이 된다. 카라바조의 삶은 사실상 불안정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는 평생 싸우고 체포되고 수감되고 죽이고 도망쳤다. 쫓기고 추방되고 사라졌다가 결국엔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맞닥뜨린 가난과 생활, 관습과 예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술과 싸움, 내기와 살인이 빛과 그림자처럼 그 일상을 엮었고, 이런 혼돈에서 그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했다. 이것은 어느 그림에서나 감지된다. ‘도마뱀에 물린 아이’(1595)는 작은 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나 긴 울림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완벽한 자연주의’ 때문일 것이다. ‘도마뱀에 물린 아이’도 그렇다. 시민문화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라면 카라바조의 불편한 전언을 그 나름으로 소화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한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린 채 앉아있다. 그 앞에는 꽃이 담긴 물병이 세워져 있고, 이 물병 곁에는 버찌와 무화과 같은 열매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그런데 열매 잎사귀 사이에 도마뱀이 한 마리 있다. 머리를 치켜들고 그것은 아이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다. 꽃을 감상하려던 느긋하고 기분 좋은 바로 그 순간에 이 잎사귀처럼 푸른 도마뱀에 물린 것이다. 움찔하며 손가락을 빼는 한 순간을 카라바조는 잘 포착한 듯하다.


‘도마뱀에 물린 아이’에서 초점은 꽃과 도마뱀이다. 그것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의 대비로 번역될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끔찍함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 시인은 쓴 적이 있지만, 미는 혼자 오지 않는다. 아름다움 옆에는 끔찍함이 있고, 그 앞과 뒤에는 추함과 경련과 전율이 있다. 우리는 미와 경악이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깊게 얽혀있다. 비중의 차이가 있을 뿐 그것은 늘 뒤섞인 채 찾아온다. 아름다움과 끔찍함은, 마치 빛과 어둠처럼, 현실에서 짝한다. 단지 이 교차적 운명에서 우리는 헛되이 미를 더 갈구하곤 한다. 그러나 삶은 아름다움과 끔찍함이 어울리는 이 몇 번의 순간 사이에 시작하고 끝나고 만다.


꽃과 도마뱀, 아름다움과 끔찍함의 대비는 카라바조가 창출해낸 명암효과로 더 두드러져 보인다. 왼쪽 위로부터 흘러드는 빛에 드러난 부분들-이마와 뺨과 어깨 그리고 손등을 보라. 그늘진 부분으로 하여 이것은 조각상 같은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어깨의 양감과 잎맥의 질감이 만져질 듯 느껴지지 않는가. 진한 자주색 체리는 또 어떤가?


카라바조의 색채는 하나같이 자연을 닮아 있다. 꽃병에 비친 빛의 묘사는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화병의 왼편 위에서 들어온 빛은 오른쪽 아래로 투과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병 표면에 서너 개의 물방울까지 붙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가가 아니라면 이렇듯 극명한 사실성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거장 미켈란젤로나 라파엘조차도 카라바조에 비하면 어떤 인체는 과장되고 그 명암은 밋밋해 보인다. 유명한 미술사가인 롱기(R. Longhi)가 왜 “카라바조가 없었다면 리베라도, 베르메르나 라 투르나 렘브란트도 없었을 것”이고, “들라크루아나 쿠르베 그리고 마네도 다르게 그렸을 것”이라고 말했는지 이해된다.


카라바조가 스무 살 될 무렵인 1590년쯤은 이른바 매너리즘-르네상스 고전주의를 모방하고 답습하던-에 대한 강력한 반대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카라바조는 기존의 화풍이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과장되었다고 여겼다. 그는 무엇이든 자연스럽기를 원했고, 이 자연스런 표현에 진실이 있다고 믿었다. 인물과 소재를 거리에서 구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자주 등장하는 성인들은 농부의 옷차림을 하고 있고 그 발에는 흙이 묻어있다. 마리아의 모델조차 매춘부라고도 말해진다. 머리에 꽃을 꽂은 ‘도마뱀에 물린 아이’도 그가 어울리던 로마 교외의 빈민가 출신이란 설명도 있다. 이것은 그 당시의 회화규범에서 보면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반역이었고, 교회의 권위를 거스르는 도전이었다. 그가 그린 제단화나 천장화는, 주문받아 제작했음에도, 그래서 자주 거절되었다.


이 그림에서 나는 두 가지 상반된 사실을 본다. 하나는 아름다움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상스럽고 속되며 불량하고 끔찍한 것에 대한 주의(注意)이다. 인간 운명의 사실적 비극성에 카라바조는 눈 밝았던 것일까. 그가 경멸한 것은 비천함이 아니라 진실하지 못함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 끔찍함을 용인하지 못하는 기성문화와 제도교육(아카데미즘)에 대한 노여움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향한 것이다.


오늘의 문제에 말을 걸지 못하는 예술은 예술사에 남지 못한다. ‘도마뱀에 물린 아이’를 보며 나는 우리의 꽃은 어디 있고 도마뱀은 무엇인지 묻는다. 목련 꽃이 뚝뚝 살점처럼 떨어지고 있다. 이번 주가 지나면 내년 봄에야 다시 볼 수 있을 게다.


〈문광훈|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독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