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7)폐허-무너지고 빈 곳에 자유가 있다
10년 전 전주에 간 김에 이웃 고을 김제의 금산사를 찾은 일이 있다. 전각과 불상의 크기가 나를 압도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려 산사의 적요를 기대하기 힘들었다. 휑한 기분으로 차를 몰아 나오는데, 얼핏 맞은편에 ‘귀신사(歸信寺)’라 적혀있는 초라한 표지판이 보였다. 홀린 듯 차를 잡아 돌렸다. 절집은 허름했다. 작은 건물에는 단청도 입히지 않았고, 지붕 위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두엇 스님이 있었는데 두 줄 띠의 이른바 ‘백수 추리닝’ 차림이었다. 대웅전 문지방 아래에는 꽃잔디가 무리지어 피었는데 모두 땅에 낮게 엎드려 있었다.
경내의 객은 우리뿐이었다. 도무지 권위라고는 느껴지지 않아 우리는 느긋하게 이 구석 저 구석을 둘러보았다. 마당 한 구석의 흰둥이의 표정도 심드렁했다. 무심코 아이가 들고 있던 과자를 흰둥이에게 주려는데, 문득 적막을 깨고 걸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자 주지 마쇼, 입맛 버링께!”
돌아보니 아까 그 ‘백수 추리닝’ 차림의 스님인데, 말을 해놓고도 별 관심이 없는 표정이었다. 난 그만 머쓱해져 흰둥이에게 보시하려던 과자를 내 입으로 넣고 말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눈에서 지워지지 않는 귀신사의 풍경을,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무너질수록/ 존재는 진실해진다/ 폐허만이 자유롭게 숨을 쉰다.” 거기서 얻은 건 자유였다. 모든 것은 무너진다. 온 힘을 다해 떠받치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자유가 찾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내가 왜 멀쩡한 귀신사를 폐허라고 생각했는지, 10년이 지난 오늘도 귀신사를 지나는 바람이 그때처럼 자유로운지는 알지 못하겠다.
며칠 전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陳田寺) 터를 다녀왔다. 일연 스님(1206~1289)이 열네 살에 출가하여 스물두 살 승과에 합격하기 전까지 머물던 곳이다. 여기 머무는 동안 그는 원효와 의상이 낙산사로 관음보살을 친견하러 온 이야기, 조신(調信)이 불전에서 태수의 딸과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발원하는 장면, 그리고 견우노인이 수로부인에게 절벽 위의 꽃을 꺾어 바치며 ‘헌화가’를 부른 사연들을 들었고, 이를 뒷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사람도 집도 다 사라진 곳에는, 눈에 둘러싸인 3층 석탑만이 설악산·동해와 묵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길은 무심히 이곳을 지나쳐 그 위에 새로 복원한 절집으로 향한다. 탑 위를 오가는 바람은 800년 전 사미승 시절의 일연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일연과 나 사이에는 세월의 간극이 사라진다.
1455년 윤 6월 세조는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았다. 이듬해 비밀모의가 발각되어 사육신이 처형되었다. 더 이상 폭거의 현실을 견디지 못한 청년 김시습(1435~1493)은 1457년 봄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길을 나섰다. 그의 발길은 개성에서 평양을 거쳐 묘향산으로 이어졌다. 김시습은 왜 하필 평생의 방랑을 이 길에서 시작했을까? 거기에 폐허가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과 평양은 고려와 고구려의 옛 도읍지이다. 발에 차이는 게 역사이고 눈에 걸리는 게 묵은 세월이었다. 어느 것 하나 허물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빛이 아니 바랜 것이 없었다.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주는 데는 황량한 폐허만한 곳이 없다. 그의 눈에 든 개성의 풍경은 이러했다.
정사 보던 궁전 비어 새들만 지저귀고
훈련원 담 무너져 장마비가 줄줄 새네
決策殿空喧鳥雀
動螺墻倒雨霖
봄에 떠난 김시습의 발길은 가을이 되어서야 평양에 이르렀다. 평양의 분위기도 개성과 다르지 않았다. 외려 가을 기운은 고도의 황막감을 더해주었다. ‘금오신화’ 중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는 송도의 홍생이 평양에서 기자(箕子)의 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능력을 인정받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작품의 시간 배경은 김시습이 송도를 거쳐 평양을 지났던 해인 1457년이다. 주인공 홍생은 바로 1457년 봄 세상과 맞서며 길을 떠났던 스물세 살 청년 김시습 자신이었던 것이다. 작품에서 홍생은 평양을 두고 이렇게 읊조린다.
풍류 넘친 사연들 모두가 먼지 되니
적막한 빈 성에는 납가새만 우거졌네
風流勝事成塵土
寂寞空城蔓藜
쓸쓸한 가을의 안개 내리는 밤, 폐허 위에서 홍생은 기자의 딸과 술을 마시며 세상 이치를 말할 수 있었다. 자유야말로 폐허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김시습은 폐허 위에서 비로소 울분으로 갇혀있던 숨을 크게 내쉬었고,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한숨은 시가 되었고, 그 상상의 나래는 기이한 이야기가 되었다. 1930년대 후반 이태준(1904~?)은 평양을 찾아 대동강 물결의 시체 같은 싸늘한 촉감을 느끼며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 서리를 밟으면 곧 두꺼운 얼음이 언다)’를 탄식한다. 소설 ‘패강랭(浿江冷)’의 내용이다. 이 또한 역사의 폐허에서 한줌의 자유를 찾으려 했다는 점에서 김시습의 그것과 상통한다.
모든 존재는 세월이 지나면 동강나고 부스러지고 종국에는 무너지고 만다. 그 위로 바람이 지나고 안개와 비가 내리며 세월이 쌓인다. 동강 난 비석에는 이끼가 끼고, 허물어진 담장 위 아래로 고양이와 족제비가 출입하며, 무너진 집터에는 쑥과 명아주가 자란다. 그중에서도 남다른 감회를 일으키는 곳은 옛 도읍지의 궁궐터와 무너진 성벽, 허물어진 신전(神殿), 그리고 주춧돌과 탑만 덩그러니 남은 절터이다. 거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빈 자리의 크기는 차지하고 있던 것의 크기에 비례하는 법이다.
부도는 풀에 묻혀 길도 이미 없거늘
들판의 농부들은 옛 절터라 전하누나
김생의 비석 글씨 비바람에 닳았는데
애써 이끼 헤치며 옛 글을 찾아보네
草沒浮屠路已迷 野人傳道古招提
金生碑字磨風雨 强拂苔痕檢舊題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이 경주의 옛 분황사 터를 찾아 읊은 것이다. 그는 길도 찾을 수 없는 폐사지를 굳이 찾아, 이끼를 헤쳐가며 비바람에 닳은 비석의 글씨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어보았다. 무너진 절터에서 그가 느낀 것은 자유이고 겸허이다. 몸은 더 낮아진 대신 영혼은 더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귀신사와 진전사 터에서 얻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보르헤스(1899~1986)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은 꿈꾸는 자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똑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세상에서 주인공 ‘그’는 특별하고도 초자연적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의 목표는 꿈속에서 완벽한 인간을 빚어내어 현실에 내놓는 것이다. 이런 ‘그’는 잠자고 꿈꾸기 좋은 곳을 찾아간다. 그곳은 오래전 화재로 폐허가 되어, 이제는 신도 신앙도 사라진 밀림 속의 신전이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가시적인 세계의 가장 최소치였기 때문이었다. - 황병하 옮김
자기만의 꿈을 꾸는 사람이 폐허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채우고(實) 세우기에(立) 여념이 없지만 현자들은 알고 있다. 무너지고 빈 곳에 자유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불타 없어진 숭례문을 찾아간다. 모든 존재는 무너지는 순간 진실해지며, 터만 남은 빈 공간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숭례문은 비로소 자유를 얻은 것이다. 거대하고 존귀한 것은 우리를 억압하고 가두려 한다. 이에 반해 무너지고 사라져 텅 빈 공간은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연민을 불러온다. 어루만지고, 들여다보고, 말을 걸게 한다. 사람들이 폐허가 된 숭례문을 찾는 이유는, 이제야 어루만지고 이야기를 나눌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설이지만 숭례문은 폐허가 되고 나서 우리들 마음속에 들어온 것이다.
개인은 모두 죽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인의 죽음에서 지혜를 배워 자신들의 삶을 영속시켜나간다. 인류가 존속하는 이유이다. 개체는 모두 무너진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자유와 지혜를 주고, 나머지 전체를 건강하게 존속할 수 있게 한다. 폐허가 된 숭례문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 폐허에서, 우리의 전 국토와 미래를 살리는 지혜를 얻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새 정부의 대운하 계획은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 사라지는 것들에 마음을 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결국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문인들은 왜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가?
〈 이승수 | 한양대 강사 〉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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