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잡아함경

애욕의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

slowdream 2009. 5. 22. 05:08

애욕의 늪에 빠지지 않는 방법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아난다도 부처님과 함께 있었다. 어느날 아난다에게 한 비구니가 찾아와 이런 전갈을 하고 갔다.
"지금 어떤 비구니가 병이 들어 앓고 있습니다. 그녀는 내일 존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듣고자 하오니 불쌍히 여겨 한번 방문해 주소서."
아난다는 다음날 아침 발우를 들고 그 비구니를 찾아갔다. 그녀는 멀리서 아난다가 오는 것을 보자 일부러 옷을 풀어헤치고 알몸을 드러낸채 평상위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병이란 사실은 아난다를 연모하는 데서 생긴 병이었다. 이를 알아챈 아난다는 얼른 감관(感官)의 문을 닫고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무안해진 그녀는 얼른 옷을 단정히 고쳐 입고 아난다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었다. 아난다는 그녀를 불쌍히 여겨 이렇게 설법해주었다.
"누이여. 이 몸이란 음식으로 자라났고 교만으로 자라났고 탐애로 자라났고 음욕으로 자라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는 음식을 먹을 때 몸을 보존하고 살기 위해 먹고, 주리고 목마른 병을 고치기 위해, 깨끗한 범행을 닦기 위해 먹어야 합니다. 마치 상인이 수레에 기름을 칠할 때 오직 길을 가기 위해서인 것처럼 분수를 헤아려 집착함이 없어야 합니다.
누이여. 또한 부처님의 제자는 교만한 마음과 애욕과 음욕이 일어날 때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개와 아무개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했다. 그들은 이제 다시 윤회의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왜 아직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마음을 굳건히 하면 마침내 식욕과 교만과 탐애와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난다의 설법을 들은 그녀는 이렇게 참회했다.
"저는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큰 허물을 저질렀습니다.이제 존자님 앞에서 허물을 고백하고 참회하오니 가엾이 여겨주소서."


                                            잡아함 21권 564경 <비구니경(比丘尼經)>

 

 

 

이성에 대한 애욕은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도 이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애욕의 늪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 어렵다. 이는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이 경은 애욕문제를 둘러싼 수행자들의 고민과 극복방법이 그려지고 있어서 특별한 관심과 흥미를 끈다. 특히 이성의 유혹 앞에 아난다가 '감관을 문을 닫는다'는 묘사가 주목된다.
경문(經文)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전후사정을 추측하건대 아난다를 연모하는 어떤 비구니가 아침공양에 초대하여 사랑을 고백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난다는 극도의 훈련된 절제심으로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아난다는 용모가 단정하고 매우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난다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사랑을 느끼고 자주 유혹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사건은 주술사의 딸 마퉁가의 유혹이었다. 그녀는 아난다를 흠모해 주술로써  아난다를 유혹한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은 <마등가경>에 소상히 나온다. 또 대승경전인 <능엄경>은 이 사건을 소재로 전개되고 있다. <마등가경>에 따르면 마퉁가는 아난다를 연모하다가 비구니가 되었다. 앞의 <비구니경>에 등장하는 비구니가 노골적으로 아난다를 유혹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출가한 마퉁가가 아직 애욕을 끊지 못한 때에 있었던 일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아 확인할 길이 없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전후사정보다는 여자의 유혹에 대처하는 아난다의 점잖은 태도다. 아난다는 수행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를 하는 여인에게 엄한게 꾸짓기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아난다의 부드러운 성품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로 인해 계속적으로 여난(女難)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애욕의 본능은 절제를 잃어버릴 때 인간을 타락시키고 망치기 쉽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지퍼를 잘못내렸다가 당한 망신은 좋은 보기다. 속인으로서는 금욕까지 할 필요야 없겠지만 사음(邪淫)은 삼가고 조심할 일이다

 

출처 홍사성의 불교사랑  http://cafe.daum.net/hongsa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