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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논쟁/마성스님 “니까야 부정은 곧 불교사 몰이해”

slowdream 2009. 9. 28. 01:01

“니까야 부정은 곧 불교사 몰이해”
마성 스님, 권오민 교수에 재반론
니까야는 상좌부서 2500년 간 계승한 경전
계율과 교단사 외면해 스스로 모순에 봉착
기사등록일 [2009년 08월 21일 23:13 금요일]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사학/철학」(제17호)에서 초기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아함경과 니까야 또한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본지 1008호 1면) 이런 가운데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이란 붓다의 가르침을 재해석해 불설로 가탁한 것으로 붓다의 친설이 담긴 아함과 대승경전은 전혀 다르다고 비판했다.(본지 1009호 19면) 이에 권오민 교수는 다시 아함과 니까야 또한 설일체유부 등 부파에 의해 승인할 불설일 뿐이라고 반박했다.(본지 1010호 10면) 이에 마성 스님이 다시 권 교수의 주장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필자의 반론문에 대한 권오민 교수님의 성실한 답변에 감사드리며, 평소 학문하는 자세나 열정과 성실함을 잘 알고 있기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려 작성한 논문을 필자가 오독한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문제의 논문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급히 읽고 반론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임을 인정한다.

 

이 논문의 가치는 불설/비불설 혹은 요의/불요의(유부와 대승)의 논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막연히 각 부파간은 물론 대·소승 간에 불설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논문에서 유부의 불설론은 물론 하리발마나 슈리라타 및 무착·세친·청변의 불설론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밝힌 점은 높이 평가한다. 만일 여기서 논문을 끝내고 사족을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필자가 반론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논자는 반론문에서도 이 논문이 ‘종파적 논쟁’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한다. 그러나 논자의 주장 자체가 종파적 논쟁이다. 오늘날 학자들의 논문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불설/비불설을 간택하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온갖 학문적 방법론을 동원해 붓다의 바른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불설/비불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 논문에서 불설/비불설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상, 이 문제는 결국 종파적 신념을 초월할 수 없다.

 

논자는 반론문에서 역사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승단에서는 법맥이 어떻게 전승되었는가에 따라 정통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생명줄과 같다. 현재 상좌불교에서 단절된 비구니 승가를 복구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교단사를 무시한 연구는 철학적으로나 사상사적으로는 중요할지 모르나, 승단의 전승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승단이 단절되면 종교로서의 불교는 소멸되고 말기 때문이다.

 

논자는 “당시 논사들의 증언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이 불설이라고 주장했던 논리적 근거는 타당했는가. 전통을 계승한 상좌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불설의 근거로 삼았던 잣대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두 가지 잣대만 제시하고 있지만, 후술할 세 번째 잣대는 전통성에 대한 기준이 된다.

 
붓다가 다섯 비구에게 최초의 설법을 했던 인도 녹야원.

 


첫째, 불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는 원래의 잣대는 ‘사대교법(Mahāpadesa)’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의(四依)를 추가함으로써 기준이 되는 잣대를 변경시켰다. 그래야 불설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팔리본 『대반열반경』에서는 ‘경에 포함되고 율을 드러내면 불설이다’였지만, 유부 『대반열반경』에서는 ‘경에 포함되고 율을 드러내며 법성에 위배되지 않으면 불설이다’로 잣대를 약간 수정한다. 나중에는 다시 이를 근거로 사의를 추가하게 되었다.

 

둘째, 상좌부를 제외한 제 부파와 대승에서는 ‘불설(佛說)과 성교(聖敎)’를 엄격히 구분했다. 이것도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그래야 이를 근거로 법성과 정리에 합치하기 때문에 불설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좌부에서는 처음부터 ‘불설과 불교’를 구분하지 않았다. 팔리어 ‘붓다와짜나(Buddha-vacana)’는 ‘붓다의 말씀’(佛說, the word of the Buddha)이고, ‘붓다사사나(Buddha-sāsana)’는 ‘붓다의 가르침’(佛敎, the teaching of the Buddha)이다. 즉 불설이 곧 불교라는 뜻이다.

 

그런데 후대에 Buddha-sāsana(佛敎)를 성교(聖敎, Skt. buddha-śāsana)로 변경시키고, 여기에 아함이나 니까야를 포함시킨다. 팔리어 대문자 Buddha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을 뜻하지만, 소문자 buddha는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 그러나 상좌부 전통에 의하면, “붓다 재세시 그의 가르침은 Buddha-vacana, Buddha-sāsana, Satthu-sāsana(스승의 가르침), Sāsana, Dhamma와 같이 여러 가지로 알려져 있었다.” (Walpola Rahula, 『One Vehicle for Peace』 참조) 이와 같이 ‘붓다와짜나’와 ‘붓다사사나’는 원래 같은 의미로 쓰였다. 상좌불교에서는 지금도 불교를 ‘붓다사사나’로 부르고 있다. ‘불설과 성교’를 구분한 자체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의 상좌불교에서는 팔리문헌을 정전(正典)과 비정전(非正典)으로 구분하고 있다. 정전(canon)은 붓다로부터 전승된 정법이라는 뜻이고, 비정전은 불제자들이 불설을 재해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결집과 마찬가지로 정법을 고스란히 전승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단사적으로는 파승(破僧, sanghabheda)의 정의가 잣대가 된다. 파승은 승단의 분열을 말한다. 붓다는 파승을 오역죄에 포함시켰다. 승단의 분열은 정법의 소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의 상좌부를 제외한 다른 부파에서는 교리적 논쟁보다도 오히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분열의 명분 혹은 파승의 정당성을 확보해야만 했다. 첫째와 둘째의 잣대는 불설/비불설 혹은 정법/비법에 관한 논쟁이었다면, 셋째의 파승은 전통/비전통의 논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단사적으로는 세 번째 잣대가 가장 중요하다.

 

‘테라와다(Theravāda, 上座部)’는 글자 그대로 ‘장로들의 정교(正敎)’라는 뜻이다. 즉 불멸 후 제1결집을 주도했던 500명의 장로들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붓다의 적자’임을 자부하고, 2,5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통을 계승해왔다. 그들은 파승으로 떨어져 나간 다른 부파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상좌부가 부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좌부 장로들은 그러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전통을 고수했다. 역사적으로 상좌부의 계맥이 단절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장로를 초빙하여 계단을 복구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소승 논사들은 상좌부를 여러 부파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자기 부파나 대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을 계승한 쪽에서는 이에 대해 전혀 반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반론 자체가 없다.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전통을 고수한 원래의 상좌부만 살아남고, 다른 부파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따라서 니까야의 불설/비불설 논쟁은 상좌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논자는 ‘아가마(Āgama, 阿含)’와 ‘니까야(Nikāya, 部)’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엄격히 말해서 ‘아가마’와 ‘니까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니까야는 상좌부에서 전승한 것이고, 아가마는 유부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 전승한 것이다. 부파 간에 불설/비불설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아가마와 니까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자는 아가마와 니까야를 같은 분류에 놓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 자체가 상좌부의 전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논자는 필자가 대승을 모른다고 혹평하고 있지만, 대승의 근원은 붓다에까지 소급된다. 붓다의 ‘전도선언’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라는 대목은 대승의 이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단사적으로 말하는 대승교단(보살가나)는 부파교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불교였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부파교단 내에서의 불설/비불설의 논쟁과 부파교단과 보살가나와의 논쟁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현재의 조계종은 상좌부에, 군소종단은 부파교단, 전통과는 계통이 다른 원불교는 대승교단(보살가나)에 해당될 것이다.

 

끝으로 논자가 반론문에서 지적했듯이 초기경전의 전승과정에 대해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그리고 대승불교와 대승경전의 성립 과정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논자는 그러한 결론을 단정적으로 내릴 수 있는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현존하는 니까야가 불설이 아니라고 단언적으로 선언한 학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논자 스스로 논리의 함정에 빠진 것 같다.

팔리문헌연구소장


출처 법보신문 1011호 [2009년 08월 21일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