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문학/사학/철학」(제17호)에서 초기경전으로 일컬어지는 아함경과 니카야 또한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붓다의 친설로 볼 수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런 가운데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대승경전이란 붓다의 가르침을 재해석해 불설로 가탁한 것으로 붓다의 친설이 담긴 아함과 대승경전은 전혀 다르다고 비판했다.
이에 권오민 교수는 다시 아함과 니카야 또한 설일체유부 등 부파에 의해 승인할 불설일 뿐이라고 반박했고, 이에 마성 스님이 다시 권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상좌부에 대한 이해부족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권오민 교수가 또다시 마성 스님의 반론을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이를 게재한다. 편집자
정말이지 명색이 학자라는 이가 이런 식의 논쟁에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지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이라는 권위를 빌려 다만 그럴 듯한 말로써 독자를 현혹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성 스님의 반론에 다시 재반론한다.
먼저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점이 있다. 필자는 문제의 논문(「불설과 비불설」, 『문학/역사/철학』 제17호)을 아함과 니카야가 비불설임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불설’이 아니라고 단정한 일도 없다. 필자가 그 논문을 쓰게 된 동기는 불교사에서 사라진 논사인 경량부의 상좌 슈리라타(Śrīlāta)의 학설을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현의 『순정리론』을 통해 재구하는 중에 그가 설일체유부에서 제시한 아함경설에 대해 빈번히 비불설론을 제기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유부 측의 대응을 탐색하던 중에 다양한 문헌적 변천과정을 거쳐 불설의 정의와 4의설(依說)이 생산되고, 이에 근거하여 불설의 취사(取捨) 개폐(開閉)와 더불어 새로운 경전이 찬술되었으며, 나아가 대․소승의 여러 논사들의 불설론의 초석이 되었음을 알게 된데서 비롯되었다.
즉 필자는 평소 “역사적으로는 비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진정한 불설”이라는 우리학계의 대승 불설론의 논거가 너무나 허약하다고 생각하였기에(이를 역으로 말하면 “소승경은 역사적으로는 불설이지만 사상적으로 비불설”이라는 이상한 판단으로 변질될뿐더러 소승에서는 대승의 사상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족(蛇足)’에서 단 한번 “대승경이 친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불설이라면, 오늘 우리가 접하는 아함 또한 친설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비불설이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필자는 계속하여 말하였다. “종파적 입장에 근거한 불설/비불설 논쟁은 맹목의 논쟁일 뿐이다. 그러한 논쟁은 구호나 선전에 근거한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것일뿐더러 폐쇄적 신념에 기초한 것이다. 불설/비불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불교의 개방성에 기인한다. 불교는 결코 교조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열려있었으며, 진실(법성)은 누구에 의해서도 토론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중략)--그들은 결코 ‘역사’에 근거하여 불설/비불설을 논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불설/비불설의 기준은 정리(正理)였고 법성이었다. 아함(āgama, ‘전승되어 온 것’이라는 뜻)은 전통이었지만, 역사적 사실로서의 ‘불설(즉 친설)’은 아니었다. 이는 당시 초기 부파불교에서도 인정한 바였다.”
예컨대 중현은 “상좌 슈리라타는 잡아함 제322경을 [불설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결집에 포함된 것(혹은 聖敎=아함)이라는 사실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거나 “전승한 교법에 따라 서로의 경을 부정하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하리발마는 “어떤 성문의 부파에서 [전승한] 경은 다만 성문이 설하였을 뿐이다”는 물음에 대해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지도 않았으며, “그렇다. 저들의 경은 모두 가짜이다”고 부화뇌동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러한 법의 근본은 다 불타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그들은 모두 불타의 말씀을 전하였을 뿐이다”고 말하고서 비나야 즉 율장을 논거로 제시하였으며, 『대지도론』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 비록 어투에 차이가 있을지라도 현존 팔리율을 비롯한 거의 모든 율장에서 불설에는 불타가 설한 것뿐만 아니라 성문․선인․천․변화인이 설한 것도 있음을 전하고 있다.
헌데 마성 스님은 상좌부의 니카야는 아함을 포함한 저들의 경전과는 위상이 다르다고 말한다. 아니 상좌부는 ‘부파’가 아니라고 말한다. 상좌부는 교단사적으로 정통이기 때문에 성교(Buddha sasana=니카야)가 바로 불설(Buddha vacana)이고, 정법이라고 말한다. 아함과 니카야를 동류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상좌부의 전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테라와다(上座部)는 글자 그대로 ‘장로들의 정교(正敎)’로서 불멸 후 제1결집을 주도했던 500명의 장로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고서 “이들은 스스로 ‘붓다의 적자’임을 자부하고, 2,500년 동안 단절 없이 전통을 계승해왔다”고 단정짓고 있다.
상좌불교의 전도용 팜플렛에나 나옴직한 이 같은 말이 어떤 인도불교사에 기술되어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러한 발언은, “여호와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모두 사교이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부족’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참으로 무례한 발언인가? 비록 댓글이기는 하지만 ‘대승경전을 모아 불지를 것’이라는 극단적이고도 독선적인 발언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
도대체 니카야(nikaya)가 무슨 뜻인가? ‘부파’라는 뜻 아닌가? 부파에서 전승한 경전을 의미하지 않는가? 세친은 『구사론』에서 독자부가 전승한 경전을, 『석궤론』에서 18부파나 부파에 의해 결집된 경전을 ‘니카야’라고 부르고 있다. 니카야는 각각의 부파에 의해 불법(buddha sasana, 교법)으로 승인된 불설(buddha vacana, 말씀)의 모음집으로(팔리어에 대문자 소문자가 있다는 말도 금시초문이다) 각 부파의 그것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어떤 부파든 자신들이 채택한 불설을 정법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혹여 독자들께서는 ‘불설(혹은 불교)’이나 ‘불법’은 다 그게 그것이지 무슨 말장난하고 있느냐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불법은 부파에 의해 규정된 교리나 신조(sasana)이기 때문에 다만 불타의 말씀을 의미하는 ‘불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두 말의 차이를 간과한다면 앞의 중현의 말도, 『대지도론』의 “그대들이 들은 것은 불법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다”고 비난한 비구 복색의 마구니의 말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불법’은 마구니가 채택한 교리이고, ‘불교’는 통상의 불타의 말씀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부파에서 전승한 ‘불설’은 어떤 것인가? 『대반열반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다. “어떤 비구가 어떤 법문(경․율․교법)을 ① 불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② 대다수 박식한 장로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③ 경과 율과 논모(論母, 주석)를 지닌 다수의 비구로부터, ④ 혹은 그러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직접들은 것이라고 말할 경우, 그의 말을 잘 듣고 단어와 문장을 잘 파악한 다음 경에 포함되어 있는지 율에 나타나는지를 검토하여, 만약 그렇지 않다면 비불설로 판단하여 버려야 하고, 그러하다면 불설로 취해야 한다.”(각묵 스님 역, 『디가니까야』2에서 발췌)
이른바 4대교법(大敎法,mahā apadesa)이라 일컬어진 이 법문은 이후 개개인에 의해 수지 전승된 스승의 교법을 불설로 확정짓는 기초가 되지만, 이에 따르는 한 한 명의 비구로부터 들은 것도 경과 율에 부합하면 불설로 취해야 하고, 불타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한 것조차 비불설로 배척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설자(說者)가 아니라 경을 관통하는 정신 즉 ‘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범본 『대반열반경』이나 『유부비나야잡사』에는 이 법문에 앞서 “경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이 설해지며, 마침내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 밖으로 드러난 말에 의지하지 말고 거기에 담긴 뜻에 의지하라, 언어를 매개로 한 상대적 인식(識)에 의지하지 말고 통찰의 직관지(智)에 의지하라, 그 뜻이 애매하거나 부실한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고 요의경에 의지하라”는 4의(依)가 성립한다.
헌대 마성 스님은 상좌부에서는 4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비담마를 승법(勝法,dhammavisesa)으로 이해하는 상좌부에서. 그렇다면 4대교법은 어찌 인정하는가? 불설의 취사선택과 편찬은 부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유부비나야잡사』에는 “[각각이 전승한] 교법에는 진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비바사론』에는 “불멸 후 어떤 이들은 수트라(經) 중에 거짓된 수트라를 안치하였다”고도 하였다.
파승(破僧)에 관한 언급 또한 반론은커녕 자신의 주장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될 수 있다. 최근의 한 연구(佐々木閑, 이자랑 역, 『인도불교의 변천』)에 따르면, 파승의 정의가 어떤 시기 어떤 사건을 계기로 법륜(정법)의 파괴(破法輪僧)에서 갈마의 파괴(破羯磨僧, 동일교구 안에서 2部의 승가가 포살과 갈마를 별도로 시행하는 것)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교리를 달리하는 각각의 부파가 갈마를 함께 시행함으로써 하나의 불교승단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바야흐로 부파불교가 성립할 수 있었고, 대승불교 또한 이 같은 계기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오로지 자신들만이 정통이라 주장하는 상좌부에서의 파승의 정의는 무엇인가?(스님은 ‘승가의 분열’로 정의한다. 咄!) 과연 상좌부에서는 스님의 말처럼 파승으로 떨어져나간 다른 부파를 인정하지 않았던가? 정말 그러하였다면 상좌부는 대단히 고립적이고 독선적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앞의 연구에 의하면 그 반대이다.
헌데 “비유하면 조계종은 상좌부에, 군소종단은 부파교단에, 전통과는 계통이 다른 원불교는 대승교단(보살가나)에 해당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무슨 근거로 그같이 말한 것인지 참으로 신통하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다. 부파(성문)교단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보살가나’라고 하는 것도 히라카와(平川彰)가 제시한 개념으로 생각되는데, 이 또한 앞의 사사키 시즈카를 비롯한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아마도 상좌부가 전승한 니카야만이 불설이고 정법이며, 정통불교라는 맹목의 폐쇄적 신념에 기초하는 한 당시 제 논사들의 불설론도, 필자의 ‘사족’ 한 마디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성 스님의 재반론의 핵심은 “필자의 논의가 상좌부의 정통성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필자는 전도사도 종파주의자도 아니기에 어떤 ‘논리의 함정’에 어떻게 빠졌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님이야말로 새로운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구호’나 ‘선전’은 현실의 불교에서 전도를 위해 응당 필요한 것이겠지만, 그것이 불교학은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근간 『불교학과 불교』에서 누차 강조하였지만, 이와 더불어 불교학도의 글 쓰기 문제점이나 인도불교사에 관한 몇 가지 근원적이고도 강고한 선입견, 사료를 취급하고 획득하는 방법 등 못다 한 이야기는 다른 지면을 통해 밝힐 것이다.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
출처 법보신문 1012호 [2009년 08월 27일 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