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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지성] 20. 칼 야스퍼스

slowdream 2009. 10. 20. 14:18

[불교와 지성] 20. 칼 야스퍼스
불교, 마녀 재판-십자군 없는 유일한 종교
기사등록일 [2009년 10월 19일 15:58 월요일]
 

‘위대한 철학자’서 불타와 용수 다뤄
무아에 공감 … 불교 가르침은 철학
포괄자론 논리, 용수 공 사상과 흡사

 

 
야스퍼스는 유태인인 아내와 이혼하라는 나치의 경고를 거부한 뒤, 오랜 세월 수난의 시절을 보냈다.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독일의 철학자로서 마르틴 하이데거와 함께 현대 실존철학을 대표하는 사상가이다.
야스퍼스는 일찍이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과 심리학의 연구를 거친 후, l921년에 철학교수 자격을 얻어 같은 대학 철학부의 철학담당 정교수로 취임하였다. 야스퍼스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사상을 계승하는 철학자이다.

 

현대 실존철학 대표 사상가

 

그러나 본래 의학과 심리학에 몸담았던 과학자로서 합리적인 사고와 방법론적 학문연구의 훈련을 거친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은 스스로 시인임을 자처하고 이론적 체계적 사고방식을 거부했던 키에르케고르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야스퍼스는 실존의 진리가 체계화를 거부하는 진리임을 체계적 방법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1932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실존철학의 주저 『철학』 3부작을 비롯하여 그의 일생동안의 모든 저술들은 이와 같이 과학의 방법론적 인식과 비학문적 실존적 확신의 진리 사이에서 사색하는 야스퍼스의 사상세계를 역력하게 반영하고 있다.

 

야스퍼스의 인생행로와 그의 후기 실존사상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세계 제2차 대전 직전부터 독일사회 및 유럽전역으로 세력을 펼쳐 나간 히틀러의 나치주의의 태두이다. 유태인인 그의 아내와의 이혼을 거절하였다는 것 때문에 야스퍼스는 1937년에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출판도 금지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교수직에 복직되기까지 그는 그의 일생 중 가장 어려웠던 박해와 수난의 시절을 보내야했다. 야스퍼스는 이 어두운 기간 동안 아내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나치주의자들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맹목적 광신에 의해 저질러지는 무서운 죄악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그의 체험으로 인하여 그의 후기의 철학적 사색의 중심은 개인의 실존적 자기실현의 문제에서 인류세계 전체의 한계상황으로서의 투쟁과 죄책의 문제에로 옮겨졌다. 그의 후기사상의 전개에서 야스퍼스는 범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와 사회의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성과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인류세계 건설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에 주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야스퍼스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역사의 기원과 목표』(1949), 『원자탄 전쟁과 인류의 미래』(1960),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l963)등을 비롯한 다수의 저서들이 있다.

 

야스퍼스는 그의 후기 사상에서 기획하고 있었던 세계철학의 전개의 일환으로 출판된 『위대한 철학자들』제1권(1957)에서 그가 연구의 대상으로 선택한 동서의 위대한 철학자들 가운데 불타와 용수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 두 불교 철학자들에 대한 매우 심도있는 연구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에 실려 있는 야스퍼스의 불타론과 용수론은 불교철학에 대한 야스퍼스의 근본 입장에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게 해주는 제일차적 연구 자료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불타론에서 야스퍼스가 밝히고 있는 바에 의하면, 불교는 그 본래적 의미에서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에 기초하여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의 길을 가르치는 철학적 신앙의 종교이다. 야스퍼스는 이 연구에서 불타의 가르침의 특징을 두 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첫째로, 불타는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가르쳤다. 그리고 기도, 은총, 희생, 제사 등 중에 어느 것도 해탈을 가져오지 못하며, 오직 개인 각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획득되는 지혜만이 해탈을 가져 올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야스퍼스는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며, 불타의 가르침을 자력적 구원을 가르치는 철학으로 이해하고 있다.

야스퍼스는 여기서 실체론적 자아관을 부정하면서, 개인 각자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본래적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 자신의 실존철학의 입장에서, 불타의 무아의 지혜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면서 해탈에 대한 불타의 가르침을 철학이라고 칭하고 있다.

 

나치 죄악 목격하며 인류애 키워

 

더 나아가서, 야스퍼스는 불타는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한 고통의 극복을 가르치는 지혜의 교사였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스스로 “개인을 넘어 선 존재”가 되었고, “개인의식을 수반하지 않는 인격의 힘”을 획득한 사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 “개인을 넘어 선 무아의 존재가 된” 불타의 성불에서 야스퍼스는 실존에 관한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실존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는 실존철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몸소 체현해 보여준 동양적 실존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야스퍼스는 불타의 가르침이 후세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특히 대승불교의 전개에 대해서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는 한편으로는 불타가 가르쳤던 자력적 해탈의 철학이 대승불교에서는 부처의 화신들의 원력에 의지하는 타력적 구원의 종교로 대치되고, 지혜의 교사였던 불타는 예배의 대상으로 신격화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대승불교의 다양한 발전 형태들의 밑바닥에 불타의 가르침에 근원을 둔 정신적인 힘들이 그대로 남아 계승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대승불교의 정신성의 특색을 이루는 중생과 함께하는 ‘연민의 정’ ‘불교적 사랑’, 그리고 비폭력의 태도 등이다.

 

야스퍼스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변치 않고 남아 있는 이와 같은 불교의 관용정신과 비폭력의 태도를 불교 본래의 특성으로 보며, “불교는 폭력도, 이교도의 박해도, 마녀 재판도 십자군 전쟁도 동반하지 않은 유일의 종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그의 「용수론」에서, 야스퍼스는 용수(龍樹, Nagarjuna)보살의 대승불교적 공 철학, 특히 그의 공(空)의 논리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매우 심도 있는 연구를 전개하고 있다. 용수의 중관철학의 근본적 사유 방식인 소위 공의 논리학을 자기 자신의 포괄자 론의 철학적 논리학과 다르지 않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수의 공의 논리학이 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무차별하게 철저히 파괴해 버리는 사유운동의 과정 속에서 사유할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대 공으로서의 만법의 실상을 직관하는 경지에로 이끌어가는 방편이었던 것처럼, 야스퍼스의 포괄자론의 철학적 근본조작으로서의 소위 ‘초월하는 사고’도 또한 사고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언표된 것을 모두 철회해 버리는 자기 지양적 사유운동의 과정 속에서 사유 불가능하고 언표 불가능한 주객미분의 비대상적 포괄자로서의 존재자체를 감득하게 하는 사유의 조작인 것이다.

 

이와 같이 용수의 공의 논리학과 야스퍼스의 철학적 기본 조작의 방법은 사유에 의한 사유의 해소 또는 사유 안에서의 사유의 초월이라는 공통된 기능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스퍼스가 용수의 공 철학, 특히 공의 논리학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야스퍼스는 용수의 공철학에서 용서와 관용 그리고 무제한한 개방성의 경향 등을 읽어내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적 관용과 개방성, 포용과 공존은 바로 이 공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야스퍼스에 의하면, 공철학은 모든 사물을 공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서 차별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매우 폭 넓은 포용성을 허락하며, 세간적인 모든 것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들의 생활방식, 그리고 세계상에 대한 관용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것들과 공존할 수 있는 무제한 한 개방성이 가능한 것이다.

 

원효의 일심-화쟁사상과도 소통

 

야스퍼스는 이와 같은 특성들을 나타내는 용수의 대승불교적 공철학의 사유 방식이 서양에서 말하는 소위 이성(理性)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야스퍼스가 그의 후기사상에서 포괄자의 제 양태의 하나로 포함시키고 있는 이성의 특성들은 용수의 공(空)처럼 무제한한 개방성, 포용적인 교제에의 의지 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서 용수의 공철학과 야스퍼스의 포괄자사상 사이의 매우 친근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용수와 야스퍼스가 각각 동양과 서양에서 시간과 공간의 차이, 종교와 사상적 전통의 차이를 넘어서 그와 같이 친근한 유사성을 나타내는 사유의 길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은 동양인과 서양인 사이의 정신적 소통과 교제의 가능성에 대한 보다 더 적극적인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필자는 원효와 야스퍼스의 비교연구에서 야스퍼스의 포괄자와 이성적 교제의 이념은 한국 불교의 위대한 스승 원효(元曉)의 일심(一心)과 화쟁(和諍)사상에도 매우 가까이 접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효와 야스퍼스는 시대적 종교적 배경이 다르고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것도 아닌데 그들의 사상의 근본 원리들이 놀랄 만큼 서로 일치한다.

원효의 일심사상이나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은 그들의 본질적 경향이 대화적이고 화쟁적이다. 다시 말하면, 원효와 야스퍼스의 사상은 한편으로는 자기 고유의 역사적 근원에 충실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것과 다른 근원들을 인정하고 그들과의 성실한 교제에 들어가고자 하는 심오한 깊이와 폭넓은 개방성을 보여준다. 만일 야스퍼스가 그의 생전에 한국불교의 전통과 원효의 사상에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분명히 그는 불타와 용수보다도 원효에게서 더욱 큰 감동과 공감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야스퍼스의 불교연구는 불교도가 아니지만 불교를 사랑하는 서양의 위대한 철학자의 눈에 비친 불교 신앙의 면모를 보여주며, 동양 전통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고 심화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물론 야스퍼스의 불교 이해가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고, 야스퍼스 자신이 자기의 불교 이해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엄연한 차이와 간격을 명확히 인식하고 존중하면서, 동양을 이해하려고 힘  닿는데까지 노력하는 것이 서양인의 과제임을 다짐하고 있다. 야스퍼스가 촉구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자기의 전통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자기 것과 다른 전통들을 이해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은 오늘의 지구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 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로 여겨진다. 


신옥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신옥희 교수는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해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전공했다. 1966년 캐나다 토론토대 대학원에서 철학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1976년 스위스 바젤대 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 2000년까지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실존ㆍ윤리ㆍ신앙』(한울), 『일심과 실존』(이대출판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이대출판부), 『철학적 신앙』(이대출판부), 『계시에 직면한 철학적 신앙』(분도출판사) 등이 있다.


출처 법보신문 1019호 [2009년 10월 19일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