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아, 작용 불교는 무아 無我를 주장하는데 자칫 혼란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한 삶을 개체 존속유지의 단위로 하는 정신육체적 복합체 즉 현실적 주체인 ‘나’, 타자와 엄격하게 구별되는 ‘나’는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고정불변의 실체인 자아가 존재하지 않을 따름이다. 또한 존재는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과 더불어 현상적으로 드러난다. 흔히 말하는 ‘정체성 identity'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다양하게 모습을 바꾸며 전개된다. 40세인 나는 회사에서는 부장이라는 존재로, 집에서는 남편, 아빠라는 기능, 작용의 존재로 현현한다. 동창 모임에서는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짠돌이 친구이다. 만원 전철에서는 자칫 성추행범이 될 수도 있다. 축구공은 잔디에서 굴러다니고 발로 걷어찰 때 축구공이 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