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꼭 8시 반경이면 우리 공장
담벼락에 자전거를 쉰다.
우즈베키스탄 태생, 무하메드, 27세, 도금공장 노동자.
콧수염이 인상적인 당신은 고향에 세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다 했다.
내가 길모퉁이에 세워둔 자동차로 다가갈 때면
당신은 반갑게 휙 휘파람을 분다.
옆 전자공장은 주야교대라 불빛이 휘황한데
담벼락 밑은 늘 어둡고 침침하다.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쑥 내밀고 옆 공장을 내다보는
당신의 긴 그림자를 볼 때마다
내 명치끝은 찌이 하며 아파온다.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이곳 밤공기는 참 독하다.
눈보라치는 겨울과
오늘 같이 플라타너스 낙엽이 으스스 몰려다니며
온통 거리를 덮어버리는 가을에는
특히 그렇다.
그래도 당신은 거의
담밑에서 기다리기를 거른 적이 없다.
이윽고 일을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당신이 등뒤에 그 ‘귀여운 여인’을 태우는 것을 보며
나 역시 부르릉 시동을 건다.
당신은 내 차 옆을 지나며 억센 입으로
또 한 번 길게 휘리릭 휘파람을 분다.
숨가쁘게 따라오는 당신을 보며
나는 음악을 쿵쾅쿵쾅 울리며 신이 나버린다.
이렇게 나란히 달리는 것은 정말 유쾌하다.
32세, 몽고 여자, 두 아이의 엄마.
댕기머리를 한,
통통하면서도 까무스레한
그 ‘귀여운 여인’이
킥킥거리며 나에게 손을 흔들 때
나는,
한달 월급 90만원 돈으로는 닿을 수 없는,
도금칠로도 덧칠할 수 없는,
사랑이란 저렇게 등을 붙잡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4블록을 지나
검은 물 흐르는 둑길을 지나
안산역으로 꺾어드는 언덕배기를
당신이 까치처럼 뒤꽁무니를 까댁거리며
가볍게 올라채는 것을 보며
사랑이란 저렇게 서로 킥킥거리며 언덕을 올라채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당신들의 등뒤 굴뚝 저편에 늙은 호박처럼 떠 있는
달이,
그 달빛이 히야, 밝구나 하면서
떠오르는 한마디 말은,
아하 나의 사랑은 너무 무거웠구나.
시화의 달 / 조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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