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시인 조영관 / 시화의 달

slowdream 2007. 8. 24. 05:42
 

당신은 꼭 8시 반경이면 우리 공장

담벼락에 자전거를 쉰다.



우즈베키스탄 태생, 무하메드, 27세, 도금공장 노동자.



콧수염이 인상적인 당신은 고향에 세 살배기 아들이

하나 있다 했다.



내가 길모퉁이에 세워둔 자동차로 다가갈 때면

당신은 반갑게 휙 휘파람을 분다.

옆 전자공장은 주야교대라 불빛이 휘황한데

담벼락 밑은 늘 어둡고 침침하다.

해바라기처럼 고개를 쑥 내밀고 옆 공장을 내다보는

당신의 긴 그림자를 볼 때마다

내 명치끝은 찌이 하며 아파온다.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이곳 밤공기는 참 독하다.

눈보라치는 겨울과

오늘 같이 플라타너스 낙엽이 으스스 몰려다니며

온통 거리를 덮어버리는 가을에는

특히 그렇다.

그래도 당신은 거의

담밑에서 기다리기를 거른 적이 없다.



이윽고 일을 마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고

당신이 등뒤에 그 ‘귀여운 여인’을 태우는 것을 보며

나 역시 부르릉 시동을 건다.



당신은 내 차 옆을 지나며 억센 입으로

또 한 번 길게 휘리릭 휘파람을 분다.

숨가쁘게 따라오는 당신을 보며

나는 음악을 쿵쾅쿵쾅 울리며 신이 나버린다.



이렇게 나란히 달리는 것은 정말 유쾌하다.



32세, 몽고 여자, 두 아이의 엄마.



댕기머리를 한,

통통하면서도 까무스레한

그 ‘귀여운 여인’이

킥킥거리며 나에게 손을 흔들 때

나는,

한달 월급 90만원 돈으로는 닿을 수 없는,

도금칠로도 덧칠할 수 없는,

사랑이란 저렇게 등을 붙잡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4블록을 지나

검은 물 흐르는 둑길을 지나

안산역으로 꺾어드는 언덕배기를

당신이 까치처럼 뒤꽁무니를 까댁거리며

가볍게 올라채는 것을 보며

사랑이란 저렇게 서로 킥킥거리며 언덕을 올라채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당신들의 등뒤 굴뚝 저편에 늙은 호박처럼 떠 있는

달이,

그 달빛이 히야, 밝구나 하면서



떠오르는 한마디 말은,

아하 나의 사랑은 너무 무거웠구나.



시화의 달 / 조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