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불교/백장록(百丈錄)

백장록/ 해제

slowdream 2007. 9. 5. 04:12
 

<百丈錄>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

「조당집(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하였고, 또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 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승입도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위山)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위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즉 5가 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 되었다. 또한 대중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출처는 http://cafe.naver.com/sunzen


'***중국선불교 > 백장록(百丈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장광록 3  (0) 2007.09.05
백장광록 2  (0) 2007.09.05
백장광록 1  (0) 2007.09.05
백장록/상당/천화  (0) 2007.09.05
백장록 /행록  (0) 2007.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