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께서 조사가 된 까닭
問 六祖不會經書 何得傳衣爲祖∘秀上座是五百人首座 爲敎授師 講得三十二本經論 云何不傳衣∘
師云 爲他有心 是有爲法所修所證將爲是也 所以五祖付六祖∘六祖當時秖是黙契 得密授如來甚深意 所以付法與他∘汝不見道 法本法無法 無法法亦法 今付無法時 法法何曾法∘若會此意 方名出家兒 方好修行∘若不信 云何明上座走來大庾嶺頭尋六祖∘
배휴가 물었다.
“육조께서는 경서(經書)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하여 의발을 전수받고 조사가 되었으며,
신수상좌는 오백여 대중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으면서 교수사(敎授師 : 스님들을 가르치는 교수스님)로 삼십이본의 경과 론을 강론하였는데 어찌하여 의발을 전해 받지 못했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수스님에게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유위법으로 닦고 증득함을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조 홍인대사께서 육조 혜능스님께 법을 부촉하신 것이다.
육조께서는 당시에 묵묵히 계합하여 은밀히 전해져 내려오는 부처님의 깊고 깊은 뜻을 얻었다. 이런 까닭에 법을 부촉받으신 것이다.
너는 듣지 못했는가?
‘법이란 본래 법 없음(無法)이 법이요. 법 없는 법이 또한 법이다.
지금 법 없음을 부촉하여 법이라 하지만 법에 일찍이 무슨 법이 또 있겠는가?’
라고 하신 것을,
만약 이 뜻을 안다면 출가자라 할 수 있고 수행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지만,
믿지 못한다면, 어찌 혜명상좌(道明上座)가 대유령 꼭대기까지 따라와서 육조대사를 찾았겠는가?
六祖便問 汝來求何事 爲求衣 爲求法∘明上座云 不爲衣來 但爲法來∘六祖云 汝且暫時斂念 善惡都莫思量∘明乃稟語∘六祖云 不思善 不思惡 正當與麽時 還我明上座父母未生時面目來∘明於言下忽然黙契∘便禮拜云 如人飮水 冷煖自知 某甲在五祖會中 枉用三十年工夫 今日方省前非∘
六祖云 如是∘到此之時 方知祖師西來 直指人心 見性成佛 不在言說
육조대사께서 (혜명상좌에게)
“너는 무엇을 구하려 왔느냐? 옷을 구하려 왔느냐? 법을 구하려 왔느냐?”
하고 묻자 혜명이 말하기를
“옷을 구하려 온 것이 아니고 다만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하자, 육조께서
“너는 잠시 생각을 거두어 선도 악도 모두 생각하지 마라.”
고 하니, 혜명은 그 말을 받아들이자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고 바로 이러한 때에 나 혜명의 부모가 낳기 전의 본래 면목이 온 곳을 돌이켜보아라.”
고 하셨는데
혜명이 말이 떨어지자 마자 홀연히 묵묵히 계합하여 예배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물을 마셔보고 스스로 차고 뜨거움을 아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오조 대사님의 문하에서 삼십년을 공부하였으나 오늘에야 비로소 과거의 잘못을 알겠습니다.”
고 하자, 육조께서 말씀하시길
“그렇도다.”
하셨으니
이제야 비로소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마음을 바로 가리키어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함이 언설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豈不見阿難問迦葉云 世尊傳金襴外 別傳何物∘迦葉召阿難 阿難應諾∘迦葉云 倒卻門前刹竿著∘此便是祖師之標榜也∘甚生阿難三十年爲侍者 秖爲多聞智慧被佛訶∘云 汝千日學慧 不如一日學道∘若不學道 滴水難消∘
어찌 듣지 못했는가?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것 외에 따로 어떤 것을 전하였습니까?”
이때 가섭이 아난을 부르니 아난이 대답하였다.
가섭이 말하되
“문 앞의 찰간(刹竿 - 큰 보살이 왔을 때, 문에 세우는 깃발 : 상징적인 것)을 무너뜨려라.”
라고 했으니 이것이 조사의 표방이니라.
(아난이 이름에 매이고 모양에 매이니까 그것을 없애라는 뜻으로 가섭이 찰간을 무너뜨리라고 한 것임)
아난은 삼십년 동안 부처님을 시봉하면서 많이 들은 지혜가 있으나 부처님께로부터
‘너의 천일동안 배운 지혜는 하룻 동안 도를 배운 것보다 못하다’는 꾸지람을 들었으니
만약 도를 배우지 못하면 물 한 방울도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與摩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努力努力∘此門中千人萬人 只得三箇五箇∘若不將爲事 受殃有日在∘故云 著力今生須了卻 誰能累劫受餘殃∘
배휴가 물었다.
“어찌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종일토록 밥을 먹지만 한 알의 쌀도 씹은 적이 없고 종일토록 길을 가지만 한쪽의 땅도 디딘 적이 없는 것과 같아야 인상과 아상 등이 없는 것이니, 종일토록 일체의 일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경계에 미혹하지 않는 것이 자재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때에 어떤 생각에도 일체의 모양을 보지 말고 전후 삼제(前後三際 : 과거, 현재, 미래)를 생각하지 마라,
전제(과거)도 지난 것이 아니고 금제(현재)도 머물지 않으며 후제(미래)는 오지 않나니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흐르는 대로 구속하지 않는 것을 해탈이라 하느니, 노력하고 노력하라.
이 문중에 천인 만인이 있지만 얻은 사람은 겨우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이니 만약 이일을 하지 않으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힘을 다하여 금생에 깨달아야지 누가 누겁의 재앙을 받겠는고?”
라고 하였다.
(식욕, 성욕, 수면욕에 대해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안 먹고 안 자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마치 세 가지 욕망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사께서
‘종일 밥을 먹어도 한 알의 쌀도 씹지 않는 것처럼...’ 하신 것처럼,
밥을 먹어도
‘이 밥을 내가 이렇게 많이 먹으니 아이고 내가 식욕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나는 아직 멀었어..’
라는 생각 없이 그냥 먹으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편안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흐르는 대로 구속하지 마라는 것이다.
나머지 두 가지 욕망도 마찬가지이다.
조사들이 왜 유독 도를 이야기할 때에 밥 먹고 잠자는 것을 비유로 드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밥을 먹고 잠을 잘 때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별 꼬투리를 잡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지가 들어 있고 이해가 들어 있고 욕심이 들어 있는 것에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더 멋지게 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늘 비교하고 판단하고 분별해야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이 나오기라도 하면 자신의 쥐어뜯으며 번뇌를 일으킨다.
그래서,
모든 삶을 밥 먹고 잠자듯이 하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한 비유를 드는 것이다.
사실,
밥 먹고 잠자는 것이나, 온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나 한 터럭의 무게차이가 없다.
그것을 비교하고 거룩하다 비속하다고 하는 것이 바로 분별이요.
그러한 생각이 늘 자신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사께서 배휴에게 말만 하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배휴는 스스로의 자신이 너무 자연스럽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니
늘 어떻게든 다시 자연스럽게 되려고 하면서 물으니,
대사께서는 우리의 존재가 이미 완전하며 자연스럽다는 것을(一乘밖에 없음) 누누이 말씀하시고
존재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이야기 하신 것이 전심법요의 요지이다.
무언가 있다고 하는 순간,
도에서 멀어져 버리고,
무언가 있다고 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이 어색해져 버린다.
그러면 ‘단정하게 앉아서 흐르는 대로 두어 구속하지 않는 삶’을 살지 못한다.
‘단정하게 앉아서’라는 말은 어떤 모습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모양에 매이지 말라고 수없이 말씀하셨듯이...
이것은 어떻게 하려는 그 마음만 내리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해야 안심을 하는 그 헐떡이는 마음을 내려놓은 것을
‘단정하게 앉아서’ 라고 하는 것이다.
헐떡이지 않으니 마음이 번잡하지 않아서 단정한 것이요.
끊임없이 무언가 찾아 하려는 마음이 사라지니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서
앉아 있는 것이다.
단정하게 앉은 것이 바로 좌선(坐禪)이요.
좌선이라는 것은 앉은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헐떡이는 마음을 쉬고,
밖으로 찾아 헤매는 것을 그만 두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출처 http://bein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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