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염화실의 향기

학성선원 조실 우룡 스님

slowdream 2007. 9. 23. 02:49
 

“죽지 않은 이, 어찌 도를 말하랴”


학성선원 조실 우 룡 스님


 


불교의 가르침은 귀로 받아들이는 소리가 아니라 눈으로 듣는 소리입니다.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면 되는 것이지요. 요즘 불교계를 살펴보면 무언인가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불교의 근본 목적은 성불입니다. 성불이 목적이라면 성불에 이르기 위한 중간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중간 과정을 한 걸음씩 밟아 가야 하는데, 중간 과정은 끊어뜨린 채 성불, 성불하며 매달려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 불교계의 잘못이라 생각됩니다.


수행없이 입으로만 ‘성불’


제가 농담처럼 하는 말 가운데 ‘살고 싶은 사람은 절에 오지 말라. 살고 싶은 사람은 불교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뒤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살고 싶은 사람’은 불교에 발을 딛지 마십시오. 불교는 죽는 것을 가르칩니다. 나, 이름뿐인 나를 죽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몸을 아무리 해부 해봐도 ‘마음’이라는 덩어리라든지 ‘나’라고 하는 덩어리는 우리 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나’라는 것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어리석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죽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모든 불교 행사는 항상 『반야심경』으로 시작합니다. 『반야심경』의 골자는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입니다. 『반야심경』뿐 아니라 팔만대장경의 골자가 결국은 ‘조견 오온개공’이고 ‘도일체고액’입니다. 이 말이 『반야심경』의 골자인 동시에 곧 불자들이 행하는 모든 일의 골자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 불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조견 오온개공’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까. ‘조견 오온개공’이 없는데 어떻게 ‘도일체고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불자 가운데 ‘성불이 마지막 목표’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불을 목표로 하면서도 ‘조견 오온개공’이 실천되고 있는지, 일상에서 우리는 ‘조견 오온개공’을 얼마나 생각하고 ‘오온개공’을 깨닫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가는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온은 색, 수, 상, 행, 식입니다. (한 쪽 뺨을 손으로 때리며) 이 얼굴 하나만 봐도 오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자체가 물질이니 ‘색’이요, 물질의 부딪힘 속에서 생기는 것이 수, 상, 행, 식이라는 마음 움직임 아니겠습니까. 부딪힘의 처음은 물질하고 물질의 부딪힘입니다. 내외간이 그렇고 부모 자식이 그렇고 형제간이 그렇습니다. 물질하고 물질이 부딪히는 것이지요. 물질하고 물질이 부딪히면서 생겨나는 현상이 받아들임, ‘수’입니다. 이 ‘수’가 부딪힐 때 거기에서 내 마음의 의식인 ‘상’이 생겨납니다. 상이 이뤄진 다음엔 ‘상’이 체험이 되는 방법 즉, ‘행’이 이어집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식’ 하나 때문에 벌어지는데, 이 ‘오온개공’을 조견한다는 것은 어렵게 이야기 하자면 ‘도를 깨쳐야 된다’는 것이고, 이론적으로는 ‘철두철미하게 규명이 되어서 분석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온개공’이 불교의 첫걸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머니가 시장에 다녀오셨는데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아이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어머니가 아들을 꾸짖으며 부딪쳤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큰 소리가 나오겠지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 하는 거냐?’ 하며. 이 과정을 자세히 보면 노래 부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인지해 받아들이는 것이 ‘수’지요. 그 다음에 생기는 것이 ‘상’이라는 감정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공부는 안하고 딴 짓을 하고 있으니 속상해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엄마의 행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왜 그러느냐’하며 야단을 치는 ‘행’이 나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엄마와 아들이라는 두 물질이 처음 부딪힌 데에서 생겨난 파도, 파생이지 않습니까. 결국 이 ‘색, 수, 상, 행’ 여기에서부터 모든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물질이 앞서면 재난 끝없어


요즘은 물질이 가장 먼저 앞장을 서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물질에 휘말려 살고 있습니다. 물질에 끌려 다니며 살면 물질에서 파생되는 재해, 액난에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물질 때문에 파생되는 재난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을 조견해 극복을 하거나 이끌려가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불자로서 매일 『반야심경』을 외우면서도 그 첫 구절에 나오는 부처님의 말씀 하나를 실천하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조견 오온개공’입니다. ‘오온개공’까지 가려면 수행을 해야 됩니다. 열반하신 일타 스님과 혜암 스님 등 일곱 분이 정화불사 직후에 “우리가 지금까지 정화 불사라는 이름으로 비구 대처간의 싸움에 이끌려 업을 지었으니 참회기도를 올리고 본래 있어야 할 선방으로 돌아가서 공부 하자”며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칠일 동안 매일 삼천배를 올리며 참회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일타 스님이 첫 날 삼천배를 하고나서는 두 손을 바짝 들어버렸습니다. “나는 절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러 함께 들어와서 나 혼자 나갈 수는 없으니 스님들은 기도하십시오. 저는 공양주를 하겠습니다”하며 중대 사자암에서 일주일간 공양주 소임을 살며 기도하는 스님들의 공양과 사시마지를 혼자 준비해 올렸습니다.


일타 스님께서는 당신은 절을 못하겠다고 했지만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니까 나름대로 가다듬고 노력을 한 것이지요. 공양주 소임을 수행 삼아 정진하다가 5일째에 이르러 ‘오온공’의 세계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온공을 체험한 일타 스님은 기도 회향 날 그곳에서 『법화경』에 의지해 몸을 없애버리는 소신공양을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그런 일타 스님을 적극적으로 말린 사람이 바로 열반하신 혜암 스님이셨습니다. 같이 기도하러 와서 그럴 수 있느냐고 설득해 결국 손가락 네 개를 연비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지요. 후일 혜암 스님께서 노년에 이르러 “그 때 일타 스님이 소신공양 올린다고 할 때 내가 왜 말렸는지 모르겠다. 그 때 당신 원대로 하도록 둘 걸 내가 왜 말렸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일타 스님이 오온공의 세계를 체험하고 물질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거추장스러운 것이니 소신 연비를 하겠다고 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불교인이라면 제일 첫걸음으로 오온공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체험은 못하더라도 이론이나마 오온이, 물질이라는 것이 필요없는 것, 이 세계를 달관해야 물질로부터 파생되는 고통, 고민, 걱정,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돌아보며 ‘나’ 죽여야


수행을 한다는 것은 오온공의 세계를 깨닫고 그 의미를 철두철미하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생긴 것이고 이 ‘나’를 죽여야 되는 것이 불교입니다. 염불, 주력, 화두 등 모든 기도는 ‘나’를 죽이기 위한 정진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불교는 사는 것을 가르치지 않고 죽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순간적인 착각 때문에 내 가족도 잊어버리고, 가정도 잊어버리고, 사회도 잊어버리고 쓸데없는 욕심 응어리에 빠지진 않았는가를 살펴보십시오. 내가 죽어야 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염불하고 주력하고 화두 잡는 이 모든 것이 나를 죽이기 위해서이며 나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교공부임을 잘 생각하시고 부지런히,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4월 29일 부산 선암사에서 열린 ‘우룡 큰스님 초청 대법회 및 설동근 교육감 신도회장 취임식’에서 울산 학성선원 조실 우룡 스님이 대중들에게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우룡 스님은

1932년 일본에서 출생, 1947년 고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5년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으며, 해인사에서 학봉 노스님으로부터 사집을 수학하고, 고봉 스님 문하에서 대교과를 마쳤다.

1963년 김천 청암사 불교연구원에서의 전강을 시작으로, 화엄사·법주사·범어사 강원의 강사를 역임했다. 수덕사 능인선원·직지사 천불선원·통도사 극락선원 등 제방선방에서 수행했으며 현재 울산 학성선원 조실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출처 http://www.beopbo.com/  854호 [200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