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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진각종의 교세 성장요인 분석

slowdream 2007. 10. 10. 00:39
 

원불교와 진각종의 교세 성장요인 분석


정성운

(woon1654@korea.com)



현대불교 편집차장을 거쳐 현재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에 한국불교 기도성지 (공저)가 있다.




1.들어가는 말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가 격동의 시기였던 만큼 종교사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수많은 신흥종교가 부침을 거듭하였다. 20세기 초 우리 나라의 종교 지형에 큰 영향을 끼친 천도교와 대종교는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더불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은 반면, 불교의 한 지파(支派)인 원불교와 진각종은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원불교는 개교 80여 년 만에 교도 130만명을 확보하여 우리 나라에서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 이어 제4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같이 원불교와 진각종이 여타의 신흥종교와 달리 급속하면서도 안정적인 성장을 이룩한 요인은 무엇인가. 본고는 한국 종교의 성장 모델 사례로 꼽히는 원불교와 진각종의 교세 성장 과정과 그 요인을 살펴봄으로써 이후 한국불교 개혁과 발전 방향의 모색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다만 본 논고는 원불교와 진각종의 성장배경을 고찰하는 본격적인 논문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본격적인 연구는 그 부분에 대한 사회적 고찰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 해당 교단 내외에서 자료 및 연구성과가 축적된 다음에야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고는 시론적 연구라는 한계를 안고 있으며, 교세 성장의 배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있다 할 것이다.



2. 원불교와 진각종의 개종(開宗)과 교세현황


숭유억불정책에 의해서 오랫동안 사회와 동떨어져서 존재했던 불교가 사회적으로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개항(開港, 1876)이라는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 개항과 더불어 유입되기 시작한 서양의 문물과 사상은 유교적 국가이념을 붕괴시키고 소외받고 있던 불교가 사회적으로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학(西學)이 전래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체계의 형성에 유교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자 민족적 색채가 강하고 사회적 평등사상을 담고 있는 불교가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 부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한말부터 나타난 개화 의식을 지닌 선각자들이 사회개혁의 이념으로써 불교사상을 선택하게 되었고, 이들의 불교적 활동은 불교계 변화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불교계가 근대사회로의 전환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들 개화사상가에 영향을 받은 일부 승려와 재가자들은 불교계 역시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 아래 불교계의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원불교와 해방 직후에 창종된 진각종은 이같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두 교단의 개종과 교세 현황을 간략히 살펴본다.\


1) 원불교

소태산 박중빈이 1916년 4월 28일 대각(大覺) 후부터 한국불교의 혁신을 주장하면서 전통 한국불교의 한 지파로서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이미지의 종교단체인 ‘불법연구회’를 통해 당시로서는 괄목할 만한 종교적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박중빈은 《금강경(金剛經)》의 내용이 자신이 깨달은 진리와 일치함을 깨닫고 근본 진리를 밝히는 데는 불법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을 선각자로 존숭하는 동시에 불교와의 인연을 스스로 정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펴기 위하여서는 종래의 불교와는 크게 다른 ‘새 불교 새 교단’을 설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물질이 개벽(開闢)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를 내걸었다. 그리고 새 교단 창립과 새 세상 구제(救濟)의 대책을 법어(法語)로 발표하였는데, 그 법문의 요지는 수신(修身)의 요법(要法), 제가(齊家)의 요법, 강자 약자(强者 弱者)의 진화상(進化上)의 요법, 지도인(指導人)으로서 준비할 점 등이었다.


이같은 개교의 기치 아래 최초의 법어를 통해 1916년 새 교단을 열 의사를 표명하자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근에서 40여 명의 교도들이 모였다. 그는 이 가운데서 8명을 선발하고 후에 정산 송규(?山 宋奎, 후에 1대 종법사)를 맞아 모두 9명을 표준제자로 삼았다. 원불교에서는 이 해를 원불교의 연호인 원기(圓紀) 1년으로 삼고 있다.

 

박중빈은 불교의 현대화·생활화를 강조하면서 신앙의 대상을 불상(佛像)이 아닌 법신불(法身佛)의 일원상(一圓相)으로 삼고 시주(施主), 동냥, 불공 등을 폐지하였다. 그 대신에 각자가 정당한 직업에 종사하며 교화사업을 시행한다는 이른바 사회 속에서의 ‘생활불교’를 표방하였다. 그리하여 1917년 저축조합의 조직을 필두로, 1918년에는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시작하여 이듬해 2만 6천 평의 논을 조성했다. 이어 엿공장, 과수원, 농축장, 양잠, 한약방 등을 운영하며 초기 원불교 교단 창립의 물질적 기초를 세우게 되었다.


1924년 마침내 서중안(徐中安) 등이 발기인이 되어 전북 익산에서 불법연구회를 창설하고 박중빈을 총재로 추대하였다. 1938년에는 《불교정전(佛敎正典)》을 간행하여 원불교의 기본 원리인 일원상의 진리를 포명(佈明)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의 탄압이 계속되어 어렵게 교단을 유지해 나갔다. 1943년 교주 박중빈이 입적하자 송규가 종법사(宗法師)가 되어 원불교 교통(敎統)을 계승하였다. 불법연구회는 광복 후 1947년에 교명을 원불교로 개칭하는 한편, 교육·자선·교화의 3대 실천 목표를 세워 포교에 매진하였다.


원불교는 이처럼 교단 초기 때부터 공부와 사업의 병행을 지향해 왔다. 교육·자선·교화의 이념을 바탕으로 낮에는 산업기관에서 근로에 힘쓰고 밤에는 전 대중이 모여 공부와 훈련을 쌓아갔다. 특히 1924년에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으로 익산을 총본부로 정하면서 원불교서 발간, 훈련법, 의제개혁, 체제정비, 산업기관 설립 등으로 새로운 제도와 기관을 일으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생활 속의 대중종교를 지향하는 원불교의 최근 교세를 살펴보면, 국내 교구에 455개 교당, 1만 천여 명의 교직자, 신도 수 138만여 명에 육박하고 있다. 원불교는 역사적으로 천도교·대종교·증산교보다도 훨씬 늦은 시기에 개종하였으나, 교직자와 신도 수에서 보면 불교·개신교·천주교 다음으로 우리 나라 제4의 종교로서 자리잡고 있다.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중앙총부(中央總部)를 정점으로 수위단회(首位團會), 중앙교의회(中央敎議會), 교정위원회(敎政委員會) 및 교정원(敎政院)과 감찰원 등이 있다.


각 교당은 교무(敎務)와 교도로 구성되어 있다. 교도는 10인을 1단으로 하는 교화단(敎化團)을 조직하는데, 원불교만의 독특한 신도조직 구성 방법으로서 원불교의 최말단 교단조직체이다. 원불교 교단 직영의 산업체로 제약회사를 비롯하여 4개의 농원과 정미소·원예원 등이 있으며, 복지기관으로 양한방의 종합병원과 보화당한의원 등이 전국 주요 도시에 있다. 문화사업으로 경전의 출판과 〈원광(圓光)〉, 〈원불교신보(新報)〉 등 정기간행물을 간행하고 있다.


2) 진각종

진각종은 ‘밀교중흥, 생활불교, 현세정화, 심인(心印)의 현현(顯現)’이라는 이념으로 개종되었다. 이 네 가지는 심인의 현현이라는 이념에 포괄되는데, 이는 진각종이 추구하는 근원적인 진리가 심인진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밀교 종파는 신라시대 명랑법사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교리적 역사는 1350년을 넘고 있다. 밀교는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그리고 일제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종단의 맥이 끊어졌으나, 일반 민중들 속에서는 그 신앙의식이 이어져 왔다. 그 후 1947년 6월 14일 회당 손규상 대종사에 의해 진각종이 개종되면서 밀교종단의 성립을 이루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밀교 종단은 진각종 외에도 총지종, 진언종이 있어 모두 3개인데, 그 가운데 한국 밀교의 장자격인 진각종의 교세 성장이 가장 우세하다.


진각종은 기성 불교 교단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교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교리상으로 무등상(無等相, 불상이 없음)을 기본으로 하며 심인의 깨달음을 신행의 본원으로 삼는다. 그리고 육자진언(六字眞言, 옴마니반메훔)의 염송이 신행활동의 중심이 되어 극히 간편한 신행의례를 행한다. 교화활동을 주로 하는 진각종 교역자는 전통 불교처럼 세속을 떠나는 출가형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또한 진각종은 재단법인화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등 현대 사회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진각종의 여러 가지 독자적인 종단운영 방식을 살펴보면 재가 중심의 불교·실천 위주의 불교·깨달음 중심의 불교·무상진리(無相眞理) 중심의 불교·현세정화의 불교·시시불공(時時佛供), 처처불공(處處佛供)의 불교라는 현실적이고 실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신앙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중요한 특색이다.


2002년 현재 진각종은 개종한 지 55년이 지났다. 대한불교진흥원의 종단 통계조사에 의하면, 진각종은 200곳의 심인당과 254명의 교역자, 신도 62만여 명의 규모를 보이고 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등록된 불교 종단들 가운데 기성 종단을 제외한 신생 종단 중에서는 교세로만 가늠할 경우 선두에 위치한다. 진각종은 서울의 총인원을 중심으로 종무행정을 통괄하는 통리원, 각종 법의 제·개정 및 예산을 심의하는 종의회, 교역자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원 등의 기구를 통해 내실 있는 교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상에서 두 교단의 개종과 교세성장의 현황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두 교단은 조직의 구성면에서도 전통 종단과는 다른 점들이 보인다.



3. 교세 성장의 요인


종교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성장은 숫적인 확대의 뜻이 강하다. 더 구체적으로 신도 수, 교당 수, 교역자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이 성장이며, 간혹 숫자의 크기에 따라 서열짓기를 시도하는 모습도 보인다. 종교의 믿음 내용과 행위체계를 내면화한 신도 수의 증가라면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종교를 실용적인 관심, 즉 사업상의 이해 또는 사회적 지위의 정당화와 과시의 수단쯤으로 여겨서 종교의 외피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 수의 증가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의 내면의 변화를 통해 해당 종교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일의 첫번째 조건이다. 그렇다면 교세의 성장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의 가능성이 많아졌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자신들의 역사가 100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원불교와 진각종은 급속한 교세 성장을 이루었다. 두 종단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새 불교운동을 주창하였다. 두 종단 모두 부침을 거듭한 다른 신흥종교와는 달리 교단적·사상적 독자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기성 불교교단과 차별성을 갖는 뚜렷한 개종 이념, 현대적으로 정비된 교리 체계와 의식 등으로 나타난다.


아래에서 교세 성장의 요인으로 주목하고 있는 부분들이 교세 성장과 필연적이고 실증적인 인과관계를 가진다고 확증할 수는 없다. 다만 기성 교단이나 신흥종교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는 부분이자 두 종단에는 공통되는 요소라는 점에서, 교세 성장의 작용 기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 중의 하나가 주된 요인이 되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교세 성장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1) 교역자 양성과 교육 사업

교육은 교단의 유지와 발전을 위한 기틀을 세우는 일이다. 입문자들에게 교육과정을 통해서 사상적 체계와 이념을 전달하고, 교육 성과에 따라 신도로서의 자격과 권한이 주어진다. 원불교와 진각종은 종단을 위하여 복무할 양질의 교역자 양성을 교단의 명운을 담보할 만큼 중요하게 여긴다.


원불교는 자신들의 질적 발전과 교세 성장이 양질의 교역자 양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신도의 교화·교육사업에 달려 있다고 보고 4개의 학교법인을 운영할 정도로 교육사업에 상당한 비중을 둔다. 원불교의 교무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6년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나 영산원불교대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의 예비교무로서의 기본교육을 먼저 이수해야 한다. 이후에는 교화 실무와 전문연구를 위한 2년간의 대학원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교당의 추천과 심사, 두 차례의 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등 매우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원불교는 교역자(전무출신 : 교무·도무·덕무) 양성을 위한 원광대 원불교학과와 영산원불교대학교 이에도 일반사회교육을 위해서 원광대학교를 비롯해 원광고등학교 및 9개의 중·고등학교, 그리고 150여 개의 유아교육기관을 두고 인재 양성과 장학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진각종은 교직자 양성을 위하여 4년제 과정인 진각대학과 교육원 내에 별도의 심학과, 아사리과를 개설해 중견 교역자들을 재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중견교역자들을 위한 재교육 시스템은 진각종 교육사업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진각종은 이 시스템을 통해서 교역자의 질을 유지하는 한편 종단 내의 다양한 견해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부수적인 성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1998년에는 경주에 4년제 종합대학인 위덕대학교를 설립했다. 앞으로 위덕대학교는 진각종의 교직자를 양성하는 주요 통로가 될 전망이며, 정보화·세계화·지방화 시대를 이끌 인재 배출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의 진선여자중·고등학교와 대구의 심인중·고등학교 또한 진각종의 개종 이념에 입각해서 설립되어 인재불사의 장이 되고 있다.


2) 남녀 평등

원불교와 진각종이 남녀를 차별하지 않았던 것은 사명감과 능력을 겸비한 여성들의 참여를 적극 이끌어냈던 주요 요인이다. 이는 교단 발전의 밑거름으로 이어졌다. 기성의 많은 종교는 여성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여성을 ‘잘못 태어난 남성’(토마스 아퀴나스)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가며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종속적 존재로 규정했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상생의 시대에 남녀의 차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원불교와 진각종에서는 교역자에 대한 남녀 차별 없이 누구든 우수한 교역자로서 자질을 갖추면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인재로 키워내는 데 열중하였다. 원불교는 2000여 명의 교무 가운데 여성교무가 1300여 명으로 남성 교무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최고의결기관인 수위단회의 남녀 구성도 남녀가 같은 수로 참여하고 있으며, 교단의 주요 직책에 상당수의 여성 교무들이 봉직하고 있다. 진각종은 최고 지위인 총인에 여성이 추대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특히 원불교는 성립 초기 때부터 교역자의 남녀 차별을 철폐하고 평등한 종단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원불교의 소의경전인 《대종경》 〈부촉품〉 17장에서는 “우리 회상에서는 출가, 재가와 남녀 노소를 물론하고 대각한 도인이 나면 다 여래위(如來位)를 받들 것이요, 생일이나 열반 기념일이나 기타 모든 행사에도 어느 개인을 본위로 할 것이 아니라, 이 회상을 창립한 사람이면 다 같이 한날에 즐겨하고 슬퍼할 일은 슬퍼하게 하여야 하리라”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정신에 따라 원불교에서는 현재에도 남녀 교역자를 차등을 두지 않고 양성하여 교화와 사업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교역자 제도의 남녀평등이 실현되고 있다.


3) 투명한 중앙집권체제

교단의 종무 행정과 재정 운영은 원불교와 진각종 모두 중앙집권적 형태이다. 원불교는 익산에 있는 중앙총부(中央總部)를 정점으로 한 각 기관과 지역단위의 교당에 이르는 조직체계를 구성하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최말단 교단조직체로서 교화단을 두고 있는데, 각 교당의 교도 10명을 1단으로 묶은 것이다. 이처럼 정점의 중앙총부로부터 최말단의 교화단에 이르기까지 조직화된 체계는 교단의 교화·행정사업 및 재정운영에 있어서의 집중 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진각종은 서울의 총인을 중심으로 종무행정을 통괄하는 통리원과 종의회 및 교육원 등의 기구를 두고 지역 단위에 심인당을 주고 있다. 진각종은 조직체계 자체가 집중화되어 있기도 하지만, 일찍부터 종단을 재단법인화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진각종은 종단 자체를 재단법인화 함으로써 종단 행정과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였다.


그 결과 신도들의 적극적인 헌금 납부를 바탕으로 축적된 교단 내의 모든 재정이 교단 중앙의 집중적인 관리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목적한 사업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다. 재정 운영의 투명한 집행과 관리는 신도들의 흔쾌한 헌금 납부로 이어졌다. 시주금이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곳에 쓰이지 않고 교단을 위해 투명하게 쓰여짐을 확신할 때 신도들은 지속적인 교단 운영을 위한 불사에 기꺼이 동참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신앙의 현대화·생활화


(1) 원불교의 경우

원불교의 교리와 사상·제도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원융성과 종합성을 띄고 있다. 원불교에서는 그들의 교리와 사상을 소태산 박중빈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의 불교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불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원불교를 외부에서 살펴보면 교리와 사상이 불교에 기저를 두고 동서고금의 많은 종교사상을 두루 융합하여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을 간과할 수 없다.


의례와 조직에 있어서도 모든 종교의 요소들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는 느낌을 받는다. 혼례·상례·제례 등의 의식을 살펴보면 불교와 유교의 의례 정신에 입각하였으나, 형식에서는 다분히 서구적인 요소가 많이 발견된다. 결혼식·발인식·열반 기념식 등에서 개신교 풍의 성가를 부르는 것 등이 그러하다. 법회의식 역시 서구적인 요소가 많은데, 설교 후 성가로 이어지는 법회 진행 순서는 타종교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원불교에서는 성직자로서의 출가자와 신도로서의 재가자의 차별이 현격하지 않다. 남녀교역자의 평등, 교역자에 대한 결혼의 자유 등은 기성 불교 교단이나 가톨릭 교단의 제도나 관습과 비교하였을 때 대단히 혁신적인 것이다. 교무들에게는 본인 각자의 원(願)에 따르도록 하여 결혼에 대해 자유의사를 부여하고 있다. 기성 불교 종단과 달리 재가와 출가의 차별을 두지 않는 종단 형태는 기존 전통 불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혁신적이고 새로운 불교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만 기성 불교 종단들처럼 음력으로 치르고 나머지는 모두 양력을 기준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원불교 정전을 비롯한 교단 내 의식과 행사의 내용 또한 한글로 진행하고 있으며, 모든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간소화해 신도들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넓혀 놓았다.


(2) 진각종의 경우

진각종은 여타의 불교 종단과는 달리 종교 의식을 간소하게 모두 한글로 진행하는 등 상당히 현대화해 일반인과의 친밀도가 높아져 실생활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각종은 이러한 현대화와 생활화를 자신들의 장점이자 강점으로 내세운다. 진각종에서 내세우는 현대화와 생활화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진각종은 신앙의 대상을 법신불(비로자나불)로 하고 우주를 불격화(佛格化)하여 삼라만상의 모든 변화를 법신불의 당체설법(當體說法), 즉 활동하는 경전, 사실적 경전의 법문으로 깨닫고 수행 실천함으로써 생활불교의 본령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불자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모든 밀교 관련 경전은 어느 누구라도 다 볼 수 있도록 한글로 번역하여 배포하고 있다. 진각종 신도들의 신앙 장소이자 예배 공간인 심인당(心印堂)과 포교소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교도가 많은 곳에 우선하여 개설하고 교도가 없는 곳이라도 필요한 곳에 교역자를 파견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교화활동을 벌인다.


진각종은 내세의 극락관(極樂觀)에 치우치지 않고 바로 현재의 살아 있는 이 몸이 이대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밀교교리를 증득케 한다. 현실생활과 현세정황에 필요한 법을 세워 정신생활과 물질생활을 아울러 조화롭게 영위할 수 있게 하여 사교이상(事敎二相)의 교리를 진각종 신도들이 스스로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진각종에서는 신도들에게 항상 현실생활에서 네 가지 은혜를 강조한다. 즉 부처님의 은혜, 부모님의 은혜, 국가의 은혜, 중생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고 보은행을 실천하게 함으로써 현세의 세상을 정화하고 현실세계가 바로 극락이라는 것을 성취하게 한다.


진각종의 행사와 의식은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실시한다. 모든 관혼상제(冠婚喪祭)를 간소화했으며, 의식에서는 불상 앞에 음식을 올리고 예배하는 것만이 불공이 아니라 자기 허물을 고쳐서 부처님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이 보다 큰 불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음식 공양보다는 일체중생의 복지를 위하여 현금으로 무상희사(無償喜捨)하여 건설적으로 사용하도록 불공의식을 혁신하여 생활과의 밀착도를 높였다.


5) NGO·언론 활동

진각종에선 종조인 회당 대종사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물론 스스로 짓고 닦은 복과 공덕을 일체 중생들에게 회향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개종 초기부터 자선사부라는 기구를 별도로 운영했으며, 최근에는 사회복지법인인 진각복지재단을 설립하였다. 대 사회적인 복지·후생사업과 어린이·노약자 시설 운영은 물론, 네팔·중국·러시아에 진각복지회 지부를 설립해 국제 구호사업도 추진하는 등 종합적인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북한 불교계를 지원하는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는데, 2001년에는 불교종단으로서는 최초로 진각종의 대표인 통리원장이 평양을 방문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 종단 기구로 청정국토가꾸기운동 본부를 발족시켜서 환경 정화·생명 존중·은혜를 알고 갚기 운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원불교는 이미 1992년에 유엔본부 공공정보부(DPI)의 NGO기구로 인정받아 유엔의 각종 기구들과 환경·여성·어린이·인권·보편윤리·종교자유·사회발전·평화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이다. 국내에서는 원불교청운회연합회를 통해 환경 운동 및 부패 추방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은 원불교의 적극적인 대사회 활동은 사회 교화의 정신에서 비롯된다. 사회교화의 일차적 개념은 교당의 울을 벗어나 사회 전체를 교화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사회전체를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은 협의로는 이웃에 대한 관심,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라 할 수 있으며, 적극적이고 광의적인 뜻은 사회전체의 병맥을 진단하고 사회전체의 구조를 살펴서 인간의 가치가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는 사회체제를 모색하고 달성해 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초기부터 사회교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지향한 결과물이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초기의 정신은 다음과 같은 소태산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 사회(社會)와 도량(道場)을 따로 보는 것은 소승(小乘)의 생각이요 독선(獨善)의 소견(小見)이니, 큰 견지로 본다면 사회의 부정이 곧 도량의 부정이요, 도량의 부정이 곧 사회의 부정이라, 도량의 부정만을 제거하여 사회에 옮기고자 하는 것이 어찌 원만한 일이라 하리요. 무릇 불법의 대의는 모든 방편을 다하여 끝까지 사람을 가르쳐서 선으로 인도하자는 것이어늘, 만일 선한 사람만 상대하기로 한다면 그 본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대들은 가르쳐서 곧 화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미리 미워하여 버리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되, 제가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나간다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다 같은 불제자로 함께 성불할 인연을 길이 놓지 말게 할지어다.


또 원불교와 진각종은 각종 학술지를 비롯해 주·월간 기관지를 펴내 교리와 사상을 체계화하고 재해석해 널리 전파하고 있다. 원불교는 원음방송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고, 진각종은 불교방송의 이사로 참여해 방송을 통한 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교세 확장의 결과물인 동시에 미래 포교의 기반을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4. 나오는 말


원불교와 진각종은 성립 초기부터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기성 불교계 상황에 대한 자기 반성과 비판에 기초하여 각각 개종하여 발전하였다. 개종 당시 한국사회의 시대적 상황의 반성이라 함은 박중빈과 손규상이 활동했던 때, 즉 일제시대의 암울한 시기와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의 혼란한 사회의 모순들을 개혁된 불교로 치유하려는 의도를 의미한다. 이는 일제시대 3·1운동의 주역을 담당했으며, 불교유신론을 외친 만해 스님과 대각운동을 펼쳤던 백용성 스님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이들 모두는 불교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겼다.


어느 집단에게나 절대적으로 안정된 시기란 없다. 언제나 과도기이며 변화의 시기이다. 그래서 개종 몇 년이라는 시간은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물론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의 길고 짧음은 부정할 수 없으며,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나온 시간의 무게를 자신들만의 역사적 경험의 축적으로 다듬지 못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인류역사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활용하는 지혜 앞에서 시간의 길고 짧음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원불교와 진각종의 성장 과정과 배경을 훑어보며, 시간과 경험의 의미와 무의미를 곱씹게 된다. ■


출처 http://www.budrevi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