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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석학들이 벌이는 '神의 전쟁'

slowdream 2008. 1. 31. 15:39
 

옥스퍼드 석학들이 벌이는 '神의 전쟁'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vs 알리스터 맥그라스 `도킨스의 망상`



프리드리히 니체가 19세기 말 '신은 죽었다'고 외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서점가에서 '神의 전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21세기 초 신의 전쟁에 나선 대리인들은 리처드 도킨스와 알리스터 맥그라스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옥스퍼드대학 교수이자 세계적인 석학이다.


'만들어진 신'(김영사)이라는 책으로 먼저 포문을 연 도킨스는 생물학 교수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움직인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발표해 과학계에 사회생물학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다.


'도킨스의 망상'(살림)을 펴내면서 대응에 나선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신학 교수로 대표적인 복음주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두 석학이 주장하는 신에 관한 이론은 정확하게 대척점에 서 있다.

 

 


도킨스는 창조론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신의 부재를 주장한다. 가장 진화된 지성은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어느 날 우주를 창조했다는 건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


도킨스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도 비판을 칼날을 댄다. 그동안 종교가 강자에게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약자에게는 삶의 위로이자 희망 역할을 하는 이중적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도킨스는 신이 사라진 이후의 시대가 오히려 더 이성적이고 희망적일 것이라고 역설한다. 근거는 이렇다. 여러 가지 실험에서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램화 됐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신이 없어도 충분히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답게 도킨스는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 주장하는 전지전능한 신을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는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반기를 든 맥그라스는 "도킨스는 종교가 유아적이어서 사라져야 할 망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도킨스의 그 생각이 바로 망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맥그라스는 "도킨스가 왜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후반에 신을 발견하게 되는지, 사람들이 나이 들어 신을 만나는 게 과연 후퇴ㆍ타락ㆍ퇴화를 의미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맥그라스는 도킨스의 무신론적 주장이 사회주의의 종교 부정 논리와 너무나 비슷하다는 의문도 제기한다. "과학적으로 신을 증명할 수 없다는 논리는 과거 옛 소련의 반종교 프로그램의 내용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이다.


도킨스의 책이 품절사태가 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여기에 반박하는 맥그라스의 책이 출간되자 두 사람의 전쟁은 세계적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트브로 확전됐다.


도킨스가 동영상을 통해 자신과 같이 과학을 전공했던 학자가 어떻게 종교 근본주의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자 맥그라스는 신앙이란 가장 최선의 대답을 찾기 위한 이성적 토대 위에 있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신앙은 그 자체로 이미 과학적 증거를 뛰어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도킨스가 다시 "맹목적 신앙은 위험하다"고 공격하자 맥그라스는 "맹목적 무신론은 더 위험하다"고 응수했다. "자연현상을 봐도 신의 존재는 개연성이 없다"는 도킨스의 주장에 대해서는 "신은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닌 자연질서 전체를 조명한다"고 논박했다.


두 석학의 논쟁은 그 자체로도 관심을 끈다.


같은 대학에서 같은 분자생물학을 공부했지만 한 사람은 무신론의 대표자가 됐고, 한 사람은 복음주의의 상징인물이 된 것부터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종교적 고민을 웅변해 주기 때문이다.


[허연 기자]


출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