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집 앞에서 할머니가 식칼로
도마를 긁어댄다
부스스 도마에서 마른 비늘이 떨어진다
물속을 거칠게 차오르며 헤엄치던
저것의 어느 한 세월은 얼마나 찬란했을 것이냐
한 세월을 살아놓고도
나는 사랑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너를 욕심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후회스럽다
날은 흐린데 벽에 붙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푸덕푸덕 떨어댄다
춥다,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나는 춥다
이별이 슬픈 것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불편하지 않게 잘 산다는 것
나의 몸이 안온하다고
세월의 깃털로
어찌 너를 가릴 수 있을 것인가
너에게 숨길 수 있는 것이 과연 뭘까
그래 미안해
솥뚜껑에서 푹푹 뿜어나오는 김이 너무 맵다.
매운 것이 국물만큼이나 참 좋은 것은
내 몸의 습기와 열기 때문이리라.
맵고 거칠었던 나의 어느 세월 한 토막은 과연
찬란했던 것일까.
여전히 정말
나는 불온한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둠 짙어가는 밤거리를
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렸다
겨울 국밥집에서 / 조영관 / 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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