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착한 글들

시인 조영관 / 겨울 국밥집에서

slowdream 2008. 2. 29. 17:30

                                                                                                              

 

국밥집 앞에서 할머니가 식칼로

도마를 긁어댄다

부스스 도마에서 마른 비늘이 떨어진다

물속을 거칠게 차오르며 헤엄치던

저것의 어느 한 세월은 얼마나 찬란했을 것이냐



한 세월을 살아놓고도

나는 사랑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고 너를 욕심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 후회스럽다



날은 흐린데 벽에 붙은 플래카드들이

바람에 푸덕푸덕 떨어댄다

춥다,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나는 춥다



이별이 슬픈 것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불편하지 않게 잘 산다는 것

나의 몸이 안온하다고

세월의 깃털로

어찌 너를 가릴 수 있을 것인가


너에게 숨길 수 있는 것이 과연 뭘까


그래 미안해


솥뚜껑에서 푹푹 뿜어나오는 김이 너무 맵다.

매운 것이 국물만큼이나 참 좋은 것은

내 몸의 습기와 열기 때문이리라.

맵고 거칠었던 나의 어느 세월 한 토막은 과연

찬란했던 것일까.



여전히 정말

나는 불온한 것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둠 짙어가는 밤거리를

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렸다

 


겨울 국밥집에서 / 조영관 / 시집 <먼지가 부르는 차돌멩이의 노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