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과 입을 사용하지 않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백장선사께서 “목도 입도 쓰지 않고 말할 수 있느냐?”고 납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위산영우는 “오히려 스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하였고, 오봉상관은 “스님께서 먼저 목도 입도 모두 없애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운암담성은 “스님께서 이미 목과 입을 모두 없애 버리신 줄 알았는데 아직 목과 입이 남아 있습니까?”라고 대꾸하였습니다.
운문선사는 “평지에 죽은 사람이 무수하다. 가시덤불을 지나가는 자라야 좋은 솜씨이다”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백장을 비롯한 모든 종사들은 가시덤불 같은 선문답으로써 사람을 시험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언어로는 납자들을 제대로 시험해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안목이 열린 공부인이라면 그 말의 낙처(落處)를 제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알고 보면 쉽습니다. 물음 속에 한 가닥 길이 있음을 안다면 칼끝도 상하지 않고 또 손끝도 절대로 다치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납자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뿐이지 절대로 사구(死句)로 헤아리지 않습니다. 종사가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 못과 쐐기를 뽑아주는 이치가 있음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백장선사가 “목도 입도 쓰지 않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은 것에 대하여 대답한 이 대종장들의 말씀은 각각 깊고 얕은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어쨌거나 나름대로 모두가 자기분상에서 한 소식을 담아낸 것들입니다. 하지만 ‘목구멍과 입술을 닫아버리고 한마디 하라’는 백장의 말씀에 무슨 차례가 있겠습니까? 이미 목구멍과 입술을 다물었다면 또다시 무슨 일을 밝힐게 있었겠습니까?
나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기에 어떻게 하든지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서 살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그 해결방법은 오로지 화두타파 외는 별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산승은 항상 간절한 노파심으로 이 법문을 자주 해왔고 또 후학들에게도 두세번 거듭 일러 왔던 것입니다. 이번 무자년 하안거에도 이 ‘병각인후(倂却咽喉)’공안타파를 위하여 용맹심으로 참구해주길 결제에 들어가며 다시 한 번 당부하는 바입니다.
건곤일통물요와(乾坤一統勿譊訛)어늘
정족삼분사유다(鼎足三分事愈多)라
뇌득백장능파정(賴得百丈能把定)하여
불교용이동간과(不敎容易動干戈)로다
건곤이 하나로 통합될 때 시비가 없더니
솔발같이 셋으로 나뉘니 일이 더욱 많아졌네.
다행이 백장이 있어 잘 가라앉혔으니
쉽사리 창과 칼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네.
불기 2552(2008)년 하안거 결제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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