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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벌에 수백만원’ 천태만상 승복

slowdream 2008. 5. 24. 03:32
 

‘한 벌에 수백만원’ 천태만상 승복


승복도 빈익빈부익부…고가 승복 승단세속화 부추겨



무소유와 욕망의 제거를 실천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불교는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자에게 청빈한 삶을 강조해 왔다. 이런 까닭에 의복에 있어서도 화장장이나 무덤가에서 주운 헝겊에 가장 구하기 쉬운 물감으로 염색해 만든 분소의(糞掃衣)를 착용하도록 했다. 이는 쓸모없는 천으로 몸을 덮어 수행자 스스로 부처님의 대자대비 가르침을 실천하고 세간의 온갖 굴욕과 유혹을 참아 이겨내겠다는 인욕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누더기 옷’도 패션으로 전락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승단이 지나치게 세속화되면서 출가수행자가 착용하는 승복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고급 원단의 고가 승복이 등장하는가 하면 회색, 검정색,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상의 승복이 등장, 패션화되고 있다.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시중에서 거래되고 있는 승복의 경우 싼 것은 10만 원대부터 비싼 것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스님들이 여름철에 선호하는 삼베로 제작된 승복은 최고 200~300만 원을 훌쩍 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겨울철에 주로 입는 누비도 수작업을 통해 제작된 승복의 경우 최고 300만 원대까지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승복 값이 천차만별을 보이면서 가난한 스님의 경우 비교적 저렴한 기성품을 입는 반면 돈 많은 스님들은 값 비싼 고급 승복을 착용해 승복에도 ‘빈익빈부익부’현상이 만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출가수행자의 청빈한 삶과 인욕의 징표처럼 여겨지던 승복이 지나치게 고급화됐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승단의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송광사 율원장 도일 스님은 “출가수행자의 청빈함을 상징하던 승복이 최근에는 스님들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이는 스님들 스스로 출가수행자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이어 “특히 스님들에게 고가의 승복을 공양하는 것이 더 많은 복을 짓는 행위라는 신도들의 그릇된 인식도 문제”라며 “스님들에게 승복을 보시하는 것은 복덕을 짓는 행위임에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고가의 상품을 공양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승복에 대한 통일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아 회색, 검정색, 오렌지색 등 다양한 색상이 등장하는가하면 디자인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심지어 낡은 승복에 천을 덧대 군데군데 기어 입음으로써 출가수행자의 청빈함을 상징했던 ‘누더기 옷’이 유행이 되면서 수십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승단이 통일성과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모든 출가수행자가 동일한 원단과 디자인, 색상을 갖춘 승복으로 통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원래 승복은 가사로 한정해야 하는 것임에도 한국불교계에서는 중국불교의 영향을 받아 한복에 회색을 염색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에 와서 한국승단의 모든 스님들에게 가사만을 착용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율장의 정신만큼은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의제를 제정해 모든 출가수행자들이 저렴한 천과 옷감을 사용해 동일한 승복을 입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가 승복, 승단세속화 부추겨


율장에 의하면 부처님은 출가수행자에게 사치스러운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시켜 왔다. 특히 신도들의 보시에 의해 얻은 새 천의 경우에도 낡은 천으로 덧대 기워 입도록 했으며 오래 사용해 기운 조각이 25조가 넘으면 새로운 가사를 입도록 했다.


이처럼 출가수행자들에게 가사에 대한 세밀한 규정을 제정했던 근본 이유는 낡은 가사를 수함으로써 스스로 세속의 물질적 욕구를 제거하고 무소유를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최근 일부 스님들이 값 비싼 고급 승복을 착용하는 것은 부처님이 제정한 율장 정신에 크게 벗어난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1999년 「남전 율장의 가사 계율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원광대 박일록 교수는 “율장에 보이는 가사에 대한 계율은 출가수행자가 분소의를 걸치고 저자에 나가 걸식을 함으로써 스스로 무욕과 청빈함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함이었다”며 “특히 분소의를 착용하는 것은 자만과 교만을 버리고 스스로 무아의 열반으로 가는 수행의 방편이었다”고 강조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출처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