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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주교 서품 받는 김근상 신부

slowdream 2008. 5. 29. 18:39
 


[산중한담] 대한성공회 주교 서품 받는 김근상 신부


배우 경력…자유 강조 ‘괴짜 교구장’

내년부터 “못생긴 나무가 숲 지켜”

“동성애 문제 회피 비겁한 짓” 소신

 

 

성공회 안에서 ‘괴짜’로 알려진 김근상(56·사진) 신부가 주교에 오른다. 내년부터 서울교구를 책임지게 될 김 신부는 서울교구장 착좌에 앞서 오는 22일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주교 서품을 받는다.


서품식을 앞두고 13일 주교좌성당 옆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키는 법”이라며 첫마디부터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공부도 못했고, 품성이 고운 것도 아닌 사람이 주교로 뽑힌 것은 ‘성공회 신부들과 신자들이 우리와 잘 어울릴 사람이 누구냐’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는 우리나라에서 교세는 강하지 않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주도적인 몫을 하면서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한 교단이다.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과 박경조 대주교 등 서울교구 주교들은 스타 주교로서 시대를 선도해가기도 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성자적 풍모의 기존 주교들과 달리 자유스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젊은 시절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쳤고, 연극 기획과 연출을 맡는가 하면 직접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요즘도 노래방에 가면 이승재의 <눈동자>나 칸소네 <리멘시타>를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으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으며, ‘진부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을 싫어해서 후배들에게 늘 “이혼해도 좋고, 실수해도 좋으니, 아무 것도 안하는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부추길 만큼 그는 ‘일 저지르기’를 즐긴다.


그래서 내년 1월부터 박경조 주교의 뒤를 이어 서울교구장 자리를 맡게 될 그가 어떤 서울교구를 만들어갈지 더욱 주목된다. 그는 개성과 자유를 최대한 존중한다. 교회가 한 가지 색깔로 채색되는 것에도 반대한다. 극우부터 극좌까지 함께 모이면서도 상대에게 자기 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성공회의 매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성공회는 동성애나 여성사제 허용 문제 등 가톨릭이 금기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진보적이다. “동성애 문제에 어떤 원칙을 견지하겠느냐”는 질문에 김 신부는 “아직 뚜렷한 견해는 없지만, 어떤 쪽의 결론이든 합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본다”고 나름의 소신을 피력했다.


김 신부는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성공회 신부였다. 특히 외할아버지 이원창 신부는 6·25때 피난을 거부하고 평양에서 교회를 지키다 순교했다. 외할아버지가 북한군에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과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통일운동과 북한돕기에 앞장섰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동포여서가 아니라 그들도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잡고 도와야 할 인간들이 아니냐”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살면서도 몇 배나 더 가진 사람보다 ‘행복하게’ 살아온 김 신부는 후배 신부들에게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같은 후진국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권유하고 싶다”면서 “지금도 지구상에서 100명 중 89명이 끼니마다 먹을 것을 걱정하는 현장 속에서 함께 하다보면 우리들이 얼마나 ‘사치스런 고민들’ 속에 빠져서 사는지 절감할 것”이라며 툭 튀어나온 앞니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출처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