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태어나는 자리](20)
이별-돌아오라 차마 말 못하는 보내는 이여
모래밭에 말 세우고 배 오기를 기다리는데
한 줄기 안개 물결 만고에 시름겹네
산들이 평지 되고 모든 물 마른다면
이 세상 이별 사연 그제야 그치리라.
沙汀立馬待回舟, 一帶煙波萬古愁.
直得山平兼水渴, 人間離別始應休.
최치원(857~?)이 당나라에 머물 때 우강(芋江) 가에 있는 역정(驛亭) 기둥에 적은 시이다. 말을 타고 배를 마중하러 나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배가 오지 않는다. 하릴없이 기다리다가 인간 세상의 설운 이별 사연들이 떠올랐다. 문득 고국과 부모 형제에 대한 그리움이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우강은 푸젠성(福建省)에 있다는데, 최치원이 언제 왜 이곳에 갔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880년 전후 황소의 난이 한창일 때 최치원이 고병(高騈)의 종사관으로 있으면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우강 가 모래밭을 서성거리던 말의 발자국은 사라졌지만, 그의 말처럼 지금도 이별 사연은 그침이 없다.
1713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기로 한 유척기(兪拓基·1691~1767)는 이덕수(李德壽·1673~1744)를 찾아가 말했다. “제가 멀리 떠나게 되니 친구들은 모두 저를 전송하는데, 어르신께서도 전송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덕수가 말했다. “옛사람들은 술을 따라주며 전송하였으니 이제 나도 술로 자네를 전송할까?” 유척기는 술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시도 숭상하는 바가 아니라며 마다했다. “옛사람은 문장을 지어주어 떠나는 사람에게 주었으니 이제 나도 그대에게 글을 지어 줄까?” 하자 유척기는 꼭 원하는 바라고 하였다. 이에 이덕수는 독서와 문장의 법을 담은 글을 지어주었다. (이덕수, ‘贈兪生拓基序’)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를 묻고 떠나려 하자, 노자는 전송하며 ‘내가 듣건대 부귀한 사람은 재물로 전송하고 어진 이는 말로써 보낸다고 하오’(吾聞富貴者送人以財, 仁人者送人以言)라 했다.(‘사기’) 자로(子路)가 길을 떠나기에 앞서 공자에게 인사를 하자 공자는 ‘네게 수레를 줄까, 아니면 말을 해줄까?’(贈汝以車乎, 以言乎)라고 했다.(‘說苑’) 누군가 먼 길을 떠날 때, 술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래고 격려와 당부의 말을 해주는 것은 오랜 풍속이다. 때로는 목이 메거나 차마 그 자리에 있지를 못해, 쪽지에 이별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것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별 사연 중에서 가장 애절하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건 역시 남녀 간의 그것이다.
비 개인 긴 둑 위에 풀빛이 짙어올 제
님 보내는 남포에 슬픈 노래 울리누나
대동강 저 물결은 언제나 마를 건가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더해주니.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南浦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
- 정지상, ‘送人’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 봄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 홍랑
…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 김소월, ‘진달래꽃
조선의 문인들은 고려 적 시 중에서 정지상의 ‘송인’(送人)을 엄지로 쳤고, 홍랑의 시조는 오랜 세월 절창으로 사랑받았으며,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시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모두 여성의 목소리로 불린 이별노래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펑펑 눈물을 쏟고, 묏버들을 꺾어 주고, 진달래꽃을 뿌리는 행위는 모두 이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심정의 표현이다. 오랜 세월 여성 화자의 이별 노래가 많았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사회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사연도 있다. 천여년 전 신라의 김교각 스님(696~794)은 산문에서 동자를 내려보내며 시 한 수를 지어 주었다.
공문이 적막하니 넌 집을 그리워했지 / 운방(雲房)에 인사하고 구화산(九華山)을 내려가렴 / 동무들과 죽마 타고 놀고픈 맘에 / 절집에서 불법 공부 뒷전이었지 / 시내에서 물 긷다가 달 부름도 그만이고 / 차 다리다 꽃 희롱할 그런 일도 없을 게다 / 잘 가거라, 자꾸 훌쩍이지 말고 / 노승에겐 안개와 노을이 있지 않으냐. - ‘送童子下山’
아이는 왜 물을 긷다가 달을 불렀고, 차를 달이다가 꽃을 희롱했을까? 고향의 어머니와 가족이 그리웠던 것이다. 스님은 아이를 가족의 품에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법(法)이니 이(理)니 하는 건 모두 부질없다. 그걸 모두 감싸고 있는 건 정(情)이며, 아이에게 최상의 법이란 바로 어미의 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는 막상 내려가며 그간의 정 때문에 눈물을 훔친다. 이를 본 노승의 마음 또한 적잖이 흔들렸다. 노승은 못내 울며 떠난 아이를 마음에서 지우지 못한 것이다. 스님은 울지 말라고 했지만, 그 광경을 떠올릴수록 자꾸 눈에 물이 어린다.
물은 모두 달빛을 머금어 있고 / 구름을 아니 두른 산이 없단다 / 겹겹이 둘러싸인 산수의 맛을 / 널 보내며 두세 번 거듭 말하네.(有水皆含月, 無山不帶雲. 重重山水趣, 送爾再三云.)
조선후기 최눌(1717~1790) 스님이 산문을 나서는 사미에게 준 시이다. 그는 왜 산중의 아름다움을 누누이 얘기할까? 돌아오지 않을까 저어하기 때문이다. 왜 “꼭 돌아오렴!”이라고 말하지 못할까? 강요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속내 말은 다 못하고 혼자 마음을 끓이는 것이다. 여기서 “있으랴 하면 제 구태여 가랴마는 /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는 황진이의 시조가 떠오르는 것은 생뚱맞은 일인가?
1570년 3월 이황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할 제 한양의 친우들이 전별시를 지었다. 그중에서 박순(1523~1589)의 아래 시가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렸다.
고향 생각 고리처럼 끊이지 않아 / 단기로 오늘 아침 성문을 나서시네 / 추위는 죽령 매화 피지 않게 잡아두니 / 노선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라네. (鄕心不斷若連環, 一騎今朝出漢關. 寒勒嶺梅春未放, 留花應待老仙還.)
한양에서 안동에 가기 위해서는 죽령이든 조령이든 한번은 소백산맥을 넘어야 한다. 28자 안에 이런 저런 마음을 담아야 하니 여러 말 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 죽령의 매화를 불러왔다. 퇴계가 돌아오는 때에 맞춰 꽃망울이 틔도록 하려고 늦추위가 매화를 억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도 절기를 어겨가며 퇴계를 맞이한다고 하니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보내는 사람도 떠나는 사람도 마음이 흡족했으리라.
이런 이별도 있다. 1579년 겨울 무렵, 함경도 고산의 찰방을 지내던 임제(1549~1587)는 강원도 원산에서 누군가와 헤어지며 시 한수를 지었다.
북국 사람 일어나고 남쪽 사람 돌아가는데 / 망해루 앞 고적 소리 발길을 재촉하네 / 백 잔 술에 말에 올라 황금 채찍 휘두르니 / 석 자 쌓인 관산 눈도 조금도 두렵잖네. (北人將發南人歸, 望海樓前催鼓笛. 百杯上馬揮金鞭, 不關山三丈雪.)
망해루 위 이별주가 다해가는데 어디선가 군막의 북과 나팔 소리 급히 울려 퍼진다. 잘 가게, 한 마디 남겨놓고 말에 뛰어 올라 채찍을 휘두르니, 준마는 설산 사이를 바람처럼 내달린다. 당시 북국의 찬바람이 귓전을 스치는 듯하다. 술자리를 떨치고 일어남도, 그리고 돌아서 내달림도 거침이 없다. 긴장감 넘치는 변방에서 이별의 슬픔에 젖음은 감정의 사치인 것이다. 색다른 맛이 아닌가!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한다. 인간은 어머니의 모태를 벗어나며 분리를 체험하고, 이때 생긴 외상은 평생 불안을 조성한다고. 탄생은 곧 분리의 아픔인 셈이다. 그 이후에도 우리의 삶은 헤어짐의 연속이다. 최치원은 정든 사람을 두고 평양을 떠나며 지은 시에서 “서로 만나 이틀 묵고 또 다시 헤어지니 / 갈림길 속 갈림길 시름겹게 바라보네”(相逢信宿又分離, 愁見岐中更有岐)라고 탄식했다. 자주 마음을 줄수록 이별도 잦고, 사랑이 깊을수록 헤어짐의 상처 또한 깊게 마련이다. 세상에 갈라지지 않는 길이 어디 있으며, 그러니 이별의 사연이 그칠 날이 언제이랴!
잡고 있던 두 손을 못내 놓지 못하거나, 그의 등이 사라진 자리에서 차마 눈길을 거두지 못할 때, 가슴에 맺히는 눈물에서 문학이 태어난다. 심상한 말로는 차마 헤어지지 못한다. 문학이란, 차라리 말문이 막혀 울먹이는 마음이다. 술에 취해 꿈결에서 헤어지고픈 마음이다. 아니면 그의 발길 앞에 달빛을 모아주거나, 꽃을 뿌려주는 마음이다. 만해는 노래했다.
“이별은 미의 창조입니다.” - ‘이별은 美의 창조’
<이승수 | 경희대 연구교수>
출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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